너의 모든 것이 내 시야 안에 갇혀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내 가슴 높이에도 미치지 못하던 너는 언제나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너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그때의 나는 네가 넘어질까 봐 한 걸음 앞서 길을 닦았고, 네가 마주할 바람을 대신 맞으려 네 앞에 장벽처럼 서 있었다. 나에게 사랑이란 언제나 너와 얼굴을 마주하고, 너의 앞길을 인도하는 '앞모습의 시간'이었다.
어느덧 너는 내 손을 놓고 저만치 앞서 달려가기 시작한다. 이제 나에게 익숙해진 것은 환하게 웃는 너의 얼굴보다, 씩씩하게 움직이는 너의 뒷모습이다. 유치원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설 때,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향해 달려갈 때, 그리고 방 안에서 무언가에 열중하느라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를 때.
처음에는 그 뒷모습이 못내 서운했다. 나를 찾지 않는 너의 등이 마치 거절의 신호처럼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그 등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저 뒷모습이야말로 네가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용기의 증거라는 것을. 나를 등지고 서 있다는 것은, 이제 네 눈앞에 내가 아닌 '더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뜻이었다.
뒷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은 앞모습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큰 인내를 필요로 한다. 아이가 휘청거려도 달려가 붙잡고 싶은 본능을 억눌러야 하고, 아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 같아도 스스로 방향을 틀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은 '간섭'이 아니라 '신뢰'여야 한다. 네가 언제든 뒤돌아봤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배워야 할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었다. 나는 이제 너의 등을 떠미는 사람이 아니라, 네가 나아가는 길 뒤에서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법을 익히고 있다.
언젠가 너는 지금보다 훨씬 더 먼 곳으로 너의 뒷모습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내가 슬픔 대신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나는 지금부터 너의 뒷모습과 친해지려 한다.
"잘 가, 아빠(엄마)가 뒤에서 보고 있을게."
멀어지는 너의 뒷모습을 향해 마음속으로 작게 손을 흔든다. 네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다. 돌아보지 않을 만큼 네 앞의 세상이 눈부시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오늘도 너의 작고 단단한 등이 만드는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을 조용히 눈에 담는다. 뒷모습마저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