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충분하다

by 다시 자라는 어른

1. ‘잘해야 한다’는 세상의 주문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성취’의 목록 속에 던져진다. 뒤집기를 언제 했는지, 걸음마는 남들보다 빠른지, 단어는 몇 개나 외우는지. 부모들의 대화 속에는 은근한 순위표가 매겨지고, 아이의 발달 단계는 곧 부모의 성적표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 같으면 조바심이 났고, 무언가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길 은밀히 기대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그 지독하고도 당연한 논리가 어느새 내 아이를 바라보는 렌즈에도 끼어들고 있었다.



2. 조건 없는 존재의 눈부심

어느 날 오후, 거실 한복판에 대자로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아이를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에 열중하지도 않은 채, 그저 숨을 쉬며 자신의 존재감을 평화롭게 뻗어내고 있는 모습. 문득 그 장면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아이는 내게 기쁨을 주기 위해 태어난 광대도 아니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대리인도 아니다. 아이는 그저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아이가 시험에서 백 점을 맞아서도 아니고, 피아노를 잘 쳐서도 아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고, 나를 보며 배시시 웃고, 건강하게 숨 쉬고 있다는 그 본연의 사실 하나만으로 아이는 이미 나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3. '두잉(Doing)'보다 소중한 '빙(Being)'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Doing)'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나는 '존재하는 것(Being)'의 위대함을 배운다. 아이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아이의 성취가 아니라, 아이의 존재가 내 곁에 머문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아무런 성과를 내지 않아도, 가끔은 실수를 하고 떼를 써도, 너는 여전히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 아니, 자격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을 만큼 너는 이미 온전하다는 것. 그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어 시작한 생각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위로로 돌아왔다. "나 또한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였구나"라는 깨달음 말이다.



4. 너라는 존재의 무게를 믿으며

아이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속삭여본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그냥 너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분히 눈부시니까."


세상은 앞으로 너에게 끊임없이 쓸모를 증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집 안에서만큼은, 나의 품 안에서만큼은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평화를 누렸으면 좋겠다. 너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매일의 기적이고, 완성된 정답이니까.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오늘은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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