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미스터리를 '당연함'이라는 서랍 속에 집어넣고 문을 잠그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늘은 왜 파란지, 개미는 어디로 가는지, 왜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하는지. 우리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원래 그렇다는 정답의 관성으로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걷는 길은 매 순간이 질문의 폭격이다. 아이는 내 서랍의 잠긴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힌다. "아빠, 구름은 왜 떨어지지 않아?" "엄마, 개미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까?"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이 사소하고도 무거운 질문들은, 굳어 있던 나의 뇌 회로를 일순간 정지시킨다.
어느 오후, 유난히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던 아이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아빠, 해님은 밤이 되면 어디서 자? 해님도 이불을 덮어?"
처음엔 "해는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거야"라는 과학적인 답변을 하려다 멈췄다. 아이의 눈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세상의 다정함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글쎄, 아마 바다 밑에 아주 커다란 구름 이불을 펴놓고 자지 않을까? 내일 아침에 다시 힘차게 뜨려면 해님도 푹 쉬어야 하니까."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이는 세상의 메커니즘을 묻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다는 것을. 아이의 질문은 나를 백과사전이 아닌,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자로 변모시켰다.
아이의 질문은 때로 서늘할 만큼 날카롭다. "엄마, 사랑은 어떤 냄새가 나?" "아빠, 행복은 언제 끝나는 거야?"
이런 질문들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인다. '사랑은 네가 갓 씻고 나왔을 때 나는 비누 냄새 같아'라거나, '행복은 끝나는 게 아니라 잠시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라고 대답하며, 정작 위로를 받는 건 나 자신이다.
아이에게 답을 주기 위해 골몰하는 시간 동안, 나는 잊고 지냈던 감정의 결을 더듬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금 정립하게 된다. 아이는 나를 가르치는 가장 작고 위대한 스승이다.
브런치의 빈 화면을 마주할 때보다, 아이의 질문을 마주할 때 나는 더 깊은 글을 쓴다. 아이가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내 마음이라는 호수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이는 묻는다. "아빠, 내일은 왜 아직 안 와?" 나는 웃으며 답한다. "우리가 오늘을 아주 행복하게 보내야, 내일이 질투하지 않고 기쁘게 찾아오거든."
아이의 질문이 멈추지 않는 한, 나의 사유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너라는 작은 철학자가 내 곁에 있는 한, 나의 평범한 일상은 매일매일이 눈부신 탐구의 현장이 된다. 사소한 질문으로 나를 깨워줘서 고맙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금 더 깊고 넓은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