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 손가락을 꽉 쥐어야만 걸음을 떼던 아이였다. 내 바지춤을 생명줄처럼 붙들고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숨던 작은 아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현관문을 나서며 내미는 내 손을 슬쩍 피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래. 혼자 갈 수 있어."
아이가 내뱉은 그 한마디는 성장의 선언문이었다. 계단을 오를 때도,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도 아이는 이제 내 도움 없이 자신의 두 발로 지면을 딛고 서려 한다. 아이의 시선이 점차 높아지고, 정수리만 보이던 시야에서 어느덧 내 가슴팍까지 키가 자랐음을 실감할 때, 대견함과 동시에 낯선 서운함이 가슴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이가 혼자 방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지고, 친구들과의 비밀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거실은 고요해진다. 아이의 키가 한 뼘 자라는 동안, 아이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 생겨났다.
예전에는 아이의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었다. 무엇을 먹고, 무엇에 울고, 무슨 꿈을 꾸는지 손바닥 보듯 훤했다. 하지만 이제 아이의 세계에는 내가 모르는 영토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마음속에 나만의 열쇠로 열 수 없는 방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나는 비로소 부모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멀어지는 법을 배우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서운함에 잠겨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마음의 거리가 자라는 것은 우리가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품기 위해 제 자리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아이가 내 손을 놓은 것은 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팔로 세상을 안아보기 위한 준비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멀어지는 아이를 붙잡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언제든 뒤돌아봤을 때 그 자리에 서 있는 든든한 풍경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키가 자란 만큼 벌어진 그 틈 사이로, 아이는 비로소 '자신만의 우주'를 채워 넣고 있었다.
사랑에도 적당한 초점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아이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고, 너무 멀면 아이의 떨림을 감지할 수 없다. 나는 이제 아이의 손을 꽉 쥐는 대신, 아이의 등 뒤로 흐르는 따뜻한 시선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연습한다.
"잘 다녀와. 여기서 기다릴게."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응원을 보낸다. 아이의 키가 자라고 마음의 거리가 넓어지는 만큼, 우리의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중으로 깊어질 것이다. 비록 내 손은 조금 허전해졌을지라도, 스스로 걷는 아이의 씩씩한 발걸음 소리가 오늘따라 참 기분 좋게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