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우리는 매일 서로의 첫 페이지를 넘긴다

by 다시 자라는 어른

1. 어제의 파본(破本)을 덮으며

어제는 엉망이었다. 서툰 감정 조절로 아이의 마음에 얼룩을 남겼고, 피곤이라는 핑계로 아이가 건네는 대화의 흐름을 뚝뚝 끊어먹었다. 밤새 잠든 아이 곁에서 어제의 일기장을 복기하며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부모는 참 보잘것없는 초고(草稿)구나.'


하지만 육아라는 신비로운 세계의 가장 큰 축복은, 매일 아침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새로운 페이지가 우리 앞에 놓인다는 사실이다. 어제의 실수와 눈물은 이미 뒷장으로 넘어갔다. 햇살이 창가를 두드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깨끗한 첫 페이지 위에 마주 앉는다.


2. 매일 아침 발견하는 새로운 문장

아이의 아침은 놀랍도록 싱그럽다. 어제의 서러웠던 울음도, 나의 날카로웠던 훈육도 아이의 기억 속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이 사라져 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이가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잘 잤어요?"라고 웃어줄 때, 나는 그 순수한 용서 앞에 다시 한번 무릎을 꿇는다.


아이의 하루는 매일이 신간(新刊)이다. 어제는 몰랐던 단어를 사용하고, 어제는 닿지 않던 선반 위 물건에 손을 뻗는다. "이건 왜 그래요?"라며 묻는 질문 속에는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진 호기심의 문장들이 담겨 있다. 나는 그 문장들을 놓칠세라 마음의 밑줄을 그으며 읽어 내려간다. 아이라는 책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연재물이다.


3. 함께 써 내려가는 서사

우리의 관계는 완성된 고전 문학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고쳐 쓰고 덧붙이는 공동 집필의 과정에 가깝다. 내가 한 줄의 다정함을 쓰면, 아이는 한 줄의 신뢰를 덧붙인다. 내가 한 줄의 인내를 적어 넣으면, 아이는 열 줄의 웃음으로 그 여백을 채워준다.


때로는 오타가 나고 비문이 섞이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서로의 눈을 맞추고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문맥은 충분히 전달되니까. 우리는 서로를 읽으며 비로소 나라는 인간의 목차를 완성해 나간다. 아이는 나를 '부모'라는 챕터에 입문시켰고, 나는 아이를 '세상'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4. 내일이라는 다음 권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수많은 단어와 표정으로 한 페이지를 꽉 채웠다. 아이의 입가에 묻은 밥풀, 무릎에 묻은 흙먼지, 그리고 잠들기 전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비밀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우리 가족만의 두툼한 역사가 된다.


불을 끄고 누워 아이의 평온한 얼굴을 본다. 오늘 읽어준 페이지가 아이의 마음속에 따뜻한 삽화로 남기를 바란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는 또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의 첫 페이지를 넘길 것이다.


"안녕?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매일 아침, 서로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첫 장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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