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너의 잠든 얼굴에 써 내려가는 뒤늦은 반성문

by 다시 자라는 어른

1.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정적

온 집안을 뒤흔들던 소란이 잦아들었다. 거실 바닥에는 주인을 잃은 로봇 장난감과 뚜껑 열린 크레파스들이 전쟁의 잔해처럼 널브러져 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아수라장 속에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화산이었다.


"그만 좀 해! 엄마(아빠)가 몇 번을 말했어!"


아이의 작은 어깨가 움찔할 정도로 날카로웠던 내 목소리가 여전히 공기 중에 맴도는 것 같다. 겁먹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잠든 아이. 폭풍이 지나간 자리엔 무거운 정적과 함께 차가운 후회만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2. 고요 속에 마주한 무방비한 사랑

살며시 방문을 열고 아이의 머리맡에 앉는다. 조금 전까지 나를 그토록 지치게 했던 에너지는 간데없고, 오직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눈가에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

세상에서 가장 무방비한 자세로 잠든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이 아이는 오늘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매달렸을 뿐인데, 나는 왜 그 순수한 에너지를 '방해'라고 정의했을까. 내 피곤함이라는 잣대로 아이의 호기심을 '장난'이라 치부하고, 내 여유 없음이라는 핑계로 아이의 서툰 손길을 '말썽'이라 낙인찍었다.


3. 종이 없는 반성문

아이의 오동통한 손등 위에 가만히 손을 얹어본다. 잠결에도 내 온기를 느꼈는지 아이가 작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 가슴이 미어진다.


'미안해. 너는 그저 자라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네가 빨리 어른처럼 굴기를 바랐나 봐.' '미안해. 네가 세상에서 제일 믿는 사람이 나인데, 나는 너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아이의 잠든 얼굴 위에 소리 없는 반성문을 써 내려간다. 낮 동안 쌓였던 나의 짜증은 사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부족함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아이는 나를 단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는데, 나는 너무나 쉽게 아이를 내 감정의 배출구로 삼아버렸다.


4. 내일 아침, 다시 시작될 고백

잠든 아이를 보는 시간은 부모가 가장 낮아지는 시간이다. 동시에 내일은 더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결심하는 다짐의 시간이기도 하다.


내일 아침 아이가 눈을 뜨면, 어제의 날카로운 목소리 대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웃음을 먼저 보여주리라 다짐한다. "잘 잤니?"라는 인사 뒤에 어제의 미안함을 꾹꾹 눌러 담은 진심 어린 포옹을 건넬 것이다.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오늘도 아이는 나를 용서하며 꿈을 꾸고, 나는 그 용서에 기대어 겨우 부모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작가의 이전글EP6.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마(아빠)'라는 오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