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너의 첫 사회생활,그 떨리는 등원길의 기억

by 다시 자라는 어른

1. 작은 가방에 담긴 거대한 시작

아이의 몸집보다 더 큰 어린이집 가방이 거실 한복판에 놓였다. 그 가방 안에는 여벌 옷 한 벌, 물컵, 그리고 집 안의 익숙한 향기가 밴 애착 인형 하나가 들어 있었다. 고작 그 정도의 장비로 아이는 이제 '가정'이라는 안전한 요새를 벗어나 '사회'라는 거대한 정글로 향하려 한다.


아이에게는 그저 새로운 놀이터에 가는 날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이가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독립된 주체로서 타인과 섞여야 하는 '첫 사회생활'의 개막식처럼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숟가락질이 서툴다며 내가 떠먹여 주던 아이가, 이제는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몫을 해내야 한다니. 대견함보다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걱정이 앞섰다.


2. 문 앞에서의 짧고 긴 이별

드디어 어린이집 입구. 알록달록한 그림들로 채워진 그 문은 마치 마법의 성 입구처럼 낯설게 서 있었다. 아이의 손을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선생님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다가, 이내 내가 자신의 손을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엄마(아빠), 어디 가?"


불안함이 서린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서는 길,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내 등에 꽂혔다. '조금 더 끼고 있을까?', '아직 너무 어린 건 아닐까?' 수만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나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것이 우리가 치러야 할 첫 번째 이별의 통과제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3.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아이

아이를 맡기고 돌아온 집은 이상하리만큼 넓고 고요했다. 평소 같으면 장난감 소리로 시끄러웠을 거실에 앉아 시계만 쳐다보았다. 지금쯤 간식은 잘 먹었을까, 혹시 구석에서 혼자 울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오후에 다시 만난 아이의 얼굴은 내 예상과 달랐다. 눈가는 조금 부어 있었지만, 아이는 제 몸만 한 가방을 씩씩하게 메고 나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 오늘 친구랑 기차 놀이 했어!"


아이는 내가 없는 곳에서도 숨을 쉬고, 웃고, 관계를 맺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무너질 것 같았던 아이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나는 그저 그 뿌리가 잘 내릴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정원사일 뿐이었다.


4. 우리의 세계가 넓어지는 방법

첫 등원을 마친 아이를 꽉 껴안았을 때, 아이의 옷에서 낯선 종이 접기 냄새와 다른 친구의 웃음소리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세계가 이만큼 확장되었구나, 그리고 그 확장된 세계만큼 나의 세계도 함께 넓어지고 있구나.

등원길의 떨림은 아이의 몫이 아니라,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했던 나의 몫이었는지 모른다. 아이는 이미 씩씩하게 첫 페이지를 넘겼는데, 나만 그전 페이지를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아이의 등을 밀어주며 속삭인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단다. 가서 마음껏 놀고,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오렴."


우리는 그렇게 매일 아침 조금씩 멀어지며, 서로에게 돌아올 저녁을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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