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내가 이 관계의 유일한 '주는 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 먹이고, 입히고,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니 당연히 내가 너의 보호자이자 스승이라고 믿었다. 너의 서툰 걸음마를 교정해주고, 세상의 규칙을 훈육하며 나는 늘 너보다 한 계단 높은 곳에서 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너의 세계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삶이 나를 할퀴고 간 어느 저녁, 그 오만한 확신은 여지없이 깨졌다. 밖에서 얻은 상처를 집까지 끌고 들어온 날, 나는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 누군가에게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그때였다. 조용히 다가온 네가 내 무릎 위에 너의 작은 손을 얹었다. 평소라면 "아빠(엄마), 놀아줘!"라고 보챘을 네가, 그날은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안다는 듯한 깊은 눈빛으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아직 발음조차 완벽하지 않은 그 짧은 문장이 내 가슴의 빗장을 단번에 풀어헤쳤다. 내가 너에게 주었던 그 어떤 거창한 조언보다, 네가 건넨 투박한 위로가 훨씬 더 강력한 치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순간, 누가 누구를 돌보고 있는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내 앞에서 나를 다독이는 너는 더 이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지친 영혼을 품어주는 거대한 존재처럼 보였다.
우리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훈계하고 용서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만큼 부모를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존재도 없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도,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어겨도, 너는 단 몇 분 뒤에 아무런 뒤끝 없이 달려와 내 목을 껴안는다.
"사랑해."
그 무조건적인 수용 앞에서 나는 종종 부끄러워진다. 계산하고, 재고, 서운함을 쌓아두는 어른의 사랑보다 너의 사랑이 훨씬 더 고결하고 성숙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네가 나를 키우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은밀한 스승이 아닐까, 혹은 전생에 나를 극진히 아꼈던 나의 부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한다. 너는 나를 '완벽한 부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회복시켜주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이 넓은 사람은 나도, 배우자도 아닌 바로 너라는 사실을. 나는 너에게 세상을 사는 기술을 가르치지만, 너는 나에게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가끔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너는 너만의 순수한 직관으로 내 손을 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네가 내 아이로 태어나주어 고맙다는 말보다, 나의 부족함을 기꺼이 안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다.
오늘 밤, 잠든 너의 얼굴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너의 자식이 된 기분으로 평온을 얻는다. "고마워, 나의 작은 부모님. 덕분에 내가 오늘을 견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