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완벽한 부모보다 곁에있는 부모가 되고 싶어

by 다시 자라는 어른

1. ‘최고’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

부모가 된다는 선언과 동시에 내 어깨 위에는 ‘완벽’이라는 보이지 않는 훈장이 올려졌다. 유기농 식단으로 채워진 식탁, 정서 발달에 좋다는 교구들, 한 번도 화내지 않는 인자한 미소. 나는 아이에게 결점 없는 환경과 무결점의 부모를 선물하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필터링해 깨끗한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은 나를 매 순간 검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완벽을 지향할수록 나는 예민해졌다. 아이가 흘린 우유 한 방울에 계획이 틀어진 것 같아 눈살을 찌푸렸고, 육아 백과사전의 정답에서 벗어난 아이의 행동에 조급함을 느꼈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 애쓰는 동안, 정작 내 눈앞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진짜 표정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로 말이다.



2. 아이가 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닌 '온기'

어느 날, 지독한 감기에 걸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날이 있었다. 식단은커녕 배달 음식을 시켜주고, 놀아주기는커녕 거실 소파에 누워 앓고만 있던 날. 완벽한 부모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날의 나는 빵점짜리였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게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는 불평하는 대신 자신의 작은 담요를 들고 와 내 발치를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내 옆에 꼭 붙어 앉아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단한 이벤트도, 영양가 높은 식사도 없었지만 그날 오후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아이가 원한 건 완벽한 코스 요리를 내놓는 셰프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곁에서 숨 쉬며 체온을 나누는 '엄마(아빠)' 그 자체였다.



3. 결핍이 만든 사랑의 틈새

완벽함은 매끄러운 벽과 같아서 누군가 기댈 틈이 없다. 오히려 조금 허술하고 부족한 모습이 있을 때, 아이는 그 틈을 타고 들어와 나를 도와주거나 위로하며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내가 완벽한 신(神)이 되기를 포기했을 때, 아이는 비로소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서 소통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인생에 오답이 없도록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답을 적었을 때 함께 지우개 똥을 치우며 웃어주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정답만 적힌 시험지 같은 인생보다, 낙서가 가득해도 온기가 배어 있는 일기장 같은 삶을 아이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졌다.


4. 지금, 여기, 너의 곁에

이제 나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다. 대신 '곁에 있는 부모'가 되기로 다짐한다. 아이가 말을 걸 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을 맞추는 것, 아이의 엉뚱한 농담에 진심으로 배를 잡고 웃어주는 것, 슬픈 일이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등을 쓸어주는 것.



화려한 배경이 되어주기보다, 아이가 기댈 수 있는 단단하고 따뜻한 기둥이 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이 시간을 함께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육아는 이미 충분히 위대하니까. 오늘 밤도 잠든 아이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내일도 네 곁에 가장 가까이 있을게. 그것만은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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