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주 어릴 적엔, 아이가 내게 줄 수 있는 고통은 기껏해야 꼬집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물리적인 통증뿐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웃으며 "아빠(엄마) 아파요~"라고 장난스럽게 넘겼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 제법 날카로운 언어를 갖게 되었을 때, 아이는 처음으로 내 마음 가장 깊숙하고 연약한 곳을 향해 정교한 화살을 날렸다.
"엄마(아빠)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미워, 없어졌으면 좋겠어!"
진심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문장은 가슴에 박혀 차갑게 식어버렸다. 온 마음을 다해 헌신했던 시간들이 부정당하는 기분. 아이를 위해 포기했던 나의 꿈과 시간들이 일순간 억울함으로 변해 나를 덮쳤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픈,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비릿한 상처의 시작이었다.
갈등은 불쑥불쑥 찾아왔다. 사춘기의 입구에서, 혹은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고집의 계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날 선 말들을 내던졌다. 아이는 독립하려는 본능으로 나를 밀어냈고, 나는 보호하려는 관성으로 아이를 붙들었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내 마음은 여기저기 긁히고 찢겨 나갔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 상처가 아물 때마다 그 자리에 생기는 '새살'의 두께였다. 격렬한 다툼 끝에 아이가 먼저 내민 서툰 사과, 혹은 자고 있는 내 곁으로 슬그머니 파고드는 아이의 온기. 그런 순간들을 통과할 때마다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갔다. 아픔이 지나간 자리엔 이전보다 더 질기고 단단한 이해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흉터를 감추고 싶은 흔적이라고 말하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의 흉터는 훈장에 가깝다. 흉터가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치열하게 서로를 마주했다는 증거이며, 그 아픔을 함께 견뎌냈다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싸우지 않은 관계보다, 수없이 상처 입히고도 다시 화해한 관계가 더 무서운 힘을 갖는다. 아이가 내게 준 상처는 나를 무너뜨리는 독이 아니라, 내가 더 넓은 가슴으로 아이를 품을 수 있게 만드는 예방주사였다. 상처가 났던 자리는 딱딱해지고 무뎌지며, 이제는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의 굳은살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아이와의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낼 생채기들이 결국은 우리를 더 깊이 연결해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사랑은 매끄러운 유리알 같은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흠집과 흉터가 모여 만들어진 투박하고 견고한 조각품이다.
아이가 준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팠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메운 안도감이 나를 웃게 한다.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받지도 않았을 이 상처들이, 역설적으로 내가 너를 얼마나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증명해 준다. 우리는 오늘도 서로에게 작은 흉터를 남기고, 또 그 흉터를 어루만지며 기적 같은 사랑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