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은 날카로운 금속성이 신경을 긁어내리는 비명 같았다. 평화롭던 거실의 공기를 단번에 찢어발기는 소리. 아이의 울음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
기저귀를 갈아보고, 우유를 물려보고, 온도를 맞춰봐도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그 작은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음은 벽을 타고 흘러 내 고막을 때렸다. 초보 아빠인 나는 그 소리 앞에서 무력했다. "도대체 왜 그래? 뭐가 문제야?"라고 묻는 내 목소리엔 어느덧 짜증과 미안함, 그리고 자괴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결코 어우러질 수 없는 불협화음이었다.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질수록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소음'이 아닌 '언어'로 듣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소리의 결을 더듬었다.
어느 날은 짧고 끊어지는 소리로 배고픔을 알렸고, 어느 날은 칭얼거리는 낮은 저음으로 졸음을 호소했다. 날카롭게 치솟는 소리는 어딘가 불편하다는 긴급 타전이었고, 잦아들 듯 이어지는 소리는 그저 곁에 있어 달라는 응석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소음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비명 속에 리듬이 있었고, 높낮이가 있었으며, 절실한 문장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단 한 순간도 이유 없이 울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 서툰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귀를 막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 나는 이제 당황하며 방 안을 서성이지 않는다. 대신 아이를 가슴팍에 기대어 안고 부드럽게 등을 두드린다.
툭, 툭, 툭. 나의 일정한 손길은 박자가 되고, 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낮은 콧노래는 선율이 된다. 아이의 격정적인 울음소리가 나의 콧노래와 만나 조금씩 중화된다. 거칠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히끅거리던 떨림이 내 심장 박동에 맞춰 안정을 찾아갈 때, 우리 사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이중주가 흐른다.
아이의 울음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소음이 아니라, 나를 불러내는 간절한 초대장이었다.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좀 봐주세요"라는 그 소리에 내가 온 마음으로 응답할 때, 비로소 소음은 노래가 되었다.
이제 아이의 울음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더 어색할 때가 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그 활기찬 고음은 우리 집이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아이가 오늘도 무사히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불협화음이 끼어들고, 때로는 박자가 어긋나기도 하겠지만 괜찮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음역대를 맞춰가며 우리만의 곡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오늘 밤도 아이의 작은 잠꼬대가 화음처럼 얹힌다.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너의 울음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품어 안는 나의 침묵.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한 편의 노래가 되어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