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언제나 특유의 냄새로 기억된다. 소독약의 서늘함과 아이들의 울음 섞인 공기. 예방접종을 위해 찾은 소아과는 평소보다 더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품 안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 안겨 쌔근쌔근 숨을 내뱉고 있었다.
대기 명단에 적힌 아이의 이름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꼭 맞아야 하는 걸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질병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아무런 방어 기제도 없는 연약한 살결에 날카로운 바늘이 파고들 걸 생각하니 내가 대신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아이의 허벅지를 드러냈다. 기저귀 위로 드러난 포동포동하고 하얀 다리. 의사 선생님이 알코올 솜으로 차갑게 문지르는 순간, 아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 따끔해요."
찰나였다. 은색 바늘이 아이의 살을 뚫고 지나갔다. 1초, 2초... 정적 뒤에 터져 나온 아이의 비명은 앞서 들었던 그 어떤 울음보다도 날카롭고 서러웠다. 아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궈진 석쇠처럼 붉게 달아올랐고, 작은 주먹은 허공을 휘저으며 나를 찾았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꼭 감싸 안으며 연신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작 3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영겁처럼 느껴지는 고통의 전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울다 지쳐 잠들었지만 나는 운전대를 잡은 손목에 힘을 뺄 수 없었다. 아이의 열을 체크하며 깨달았다. 오늘 예방접종을 맞은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이의 비명을 견뎌내고, 차가운 바늘을 직시해야 했던 그 순간은 나에게도 '부모'라는 이름의 예방접종이었다. 사랑하는 존재가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아픔을 지켜보는 법, 그리고 그 아픔 뒤에 올 건강한 내일을 믿으며 흔들리지 않는 법. 부모는 그렇게 아이의 고통을 함께 통과하며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가는 존재였다.
아이의 몸속에서는 지금 낯선 항원들이 싸우며 면역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도 '단순한 애정'이 '단단한 책임감'으로 바뀌는 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날 밤, 아이는 약간의 미열을 앓았다. 나는 젖은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아주며 다짐했다. 앞으로 네가 마주할 수많은 '따끔한 순간'들 앞에서, 나는 도망치는 대신 네 곁에서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되어주겠노라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아프고, 함께 강해진다. 아이의 허벅지에 남은 작은 밴드 자국은 우리가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지며 치러낸 첫 번째 훈장이었다.
내일 아침, 열이 내리고 다시 환하게 웃을 너를 기다리며 나 또한 부모로서 한 뼘 더 자란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