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아카이브 #18
도서관과 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아이들과 청소년을 만나며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점이 있다.
읽기 능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기술이 아니라
성장 과정 속에서 변화하는 인지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유아에게 읽기는 이야기와 언어의 리듬을 경험하는 일이고,
초등학생에게 읽기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청소년에게 읽기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을 해석하는 경험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읽기를 독해 기술 중심으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일정 수준의 독해력에 도달하면 읽기 교육이 끝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관찰되는 읽기의 성장 과정은 조금 다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읽기 → 이해 → 질문 → 토론 → 표현
의 과정으로 점차 확장해 간다.
읽기는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표현으로 이어지며,
표현은 다시 새로운 읽기를 만든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융합 리터러시라고 부른다.
AI 시대의 리터러시는 단순한 독해 능력이 아니라,
읽기·이해·표현이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리터러시 교육 역시
생애주기와 발달 단계에 맞는 목표와 방법을 가져야 한다.
읽기 능력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영유아기에는 그림책 읽기와 이야기 경험,
부모와의 대화 속에서
초기 문해 경험(emergent literacy)이 형성된다.
이 시기 일부 아이들은 한글을 일찍 해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본격적인 읽기 발달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 이루어진다.
학교 교육과 함께 글자를 해독하고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 시작되면서
읽기 능력은 점차 체계적으로 성장한다.
읽기의 성장 과정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단순히 읽기 능력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읽기의 목적과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초등 저학년에서는
문장을 정확하게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기초 읽기가 중심이 된다.
초등 중학년에 이르면
텍스트에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해석하는
이해 중심 읽기가 시작된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나 인물을
중심으로 읽기를 확장하는
탐구 읽기 단계로 들어선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이르면
읽기는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이 단계에서 읽기는 곧 정체성 읽기로 이어진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유아기 : 초기 문해 경험
초등 저학년 : 기초 읽기
초등 중학년 : 질문과 이해의 읽기
초등 고학년 : 탐구 읽기
청소년기 : 정체성 읽기
이러한 변화는 읽기 능력의 확장이 아니라
읽기의 목적이 성장 과정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리터러시 교육은 크게 두 수준으로 구성된다.
초급 : 기초 문해력
읽기와 이해 중심 교육
심화 : 융합 표현 문해력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표현하는 교육
이 두 단계는 발달 단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의 리터러시는
소리와 정서 경험에서 시작된다.
초급
동화 읽어주기
언어 리듬 경험
그림책 감각 경험
심화
이야기 상호작용
몸짓·소리 반응
부모와의 대화 활동
유아기의 읽기는
이야기 경험과 상상력 형성의 과정이다.
초급
그림책 읽기
이야기 이해 활동
기본 어휘 경험
심화
이야기 재구성
역할 놀이
그림·말로 이야기 표현
이 시기는 기초 문해력이 형성되는 단계이다.
초급
기초 읽기 활동
어휘 확장 활동
문장 이해 활동
심화
이야기 요약하기
질문 만들기
간단한 글쓰기
읽기는 점점 질문과 이해 중심 활동으로 확장된다.
초급
독해력 강화 활동
어휘 확장 활동
문장 구조 이해
심화
하브루타 질문 만들기
토론 활동
의견 표현 활동
이 시기에는 긴 호흡의 글 읽기가 가능해진다.
학생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나 인물을
중심으로 읽기를 확장하기 시작하며
읽기는 단순한 독서 활동을 넘어
탐구 읽기 단계로 발전한다.
초급
장편 동화 또는 청소년 소설 읽기
긴 글 읽기 경험
심화
관심 주제 탐구 읽기
인물 탐구 독서
독서 발표
탐구 글쓰기
청소년기에 이르면 읽기는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또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탐색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인간의 삶을 다룬 장편 서사나
성장과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는
청소년기의 정서와 깊이 연결된다.
초급
성인 수준 읽기로의 발달
장편소설 읽기
인물 중심 서사 읽기
심화
토론
글쓰기
매체 표현
이 단계에서는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소리, 영상과 같은 다양한 매체 표현 활동도 가능하다.
앞선 글(#15)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읽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활동 역시
청소년기 융합 리터러시 교육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리터러시 교육 모델을
실제로 적용했던 프로그램은
2025년 상반기에
대구 북부시립도서관에서 진행되었다.
대상은 초등학교 4~5학년이며
프로그램은 12주 과정으로 운영되었다.
읽기 텍스트는
《헬렌 켈러 자서전》 중 「내가 살아온 이야기」였다.
① 읽기 활동
반복 읽기(3회 이상)
어휘 활동
초성 게임
단어와 뜻 연결하기
② 독해 활동
챕터 요약하기
줄거리 쓰기
문장 순서 바로잡기
하브루타 질문 만들기
③ 표현 활동
질문에 대한 답변
짝 토론
그룹 토론
발표
수업 소감 쓰기
느낀 점 쓰기
이 프로그램에서는 읽기 도구와
읽기 방식에 대한 작은 실험도 이루어졌다.
2024년에는 종이책 읽기와
디지털 읽기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두 개의 읽기 집단을 구성하였다.
한 집단은 종이책으로
『장복이, 창대와 함께 하는 열하일기』를 읽었고,
다른 집단은 태블릿에 저장된 동일한 텍스트를
슈퍼북(Superbook) 형태로 읽었다.
슈퍼북은 전자책 기반 읽기 도구로
Word Player 기능과
덜컥이(Auto Pop-up Notes)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Word Player는 단어 단위로 텍스트를
제시하여 읽기 집중을 돕는 기능이며,
덜컥이는 다소 어려운 단어가 미리 내장되어 있어
그 단어가 나오면 하이퍼텍스트 기능과 유사하게
뜻이나 설명이 나타나는 어휘사전 보조 기능이다.
일부 학생들은 이러한 기능을 흥미롭게 활용했지만
몇몇 학생들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기도 했다.
워드플레이어 기능은 대부분 신기하게 여겼지만
속도가 다소 빠르거나 느려
자신의 읽는 속도와 맞지 않다고 느끼는 학생도 있었고,
종이책이나 일반 전자책처럼
평면 텍스트로 읽는 방식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또한 덜컥이 기능은 문장을 읽는 중에 특정 단어가 나타나면서
바로 아래에 그 뜻이나 설명이 제시되기 때문에
읽는 흐름이 끊겨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만 워드플레이어와 덜컥이 기능은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읽도록 지도하였다.
한편 슈퍼북으로 반복 읽기를 할 경우 덜컥이 기능을 켜 두면
동일한 단어와 그 의미를 여러 번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어휘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② 시선추적 기반 읽기 분석
시선추적(Eye-tracking) 기술은 독자가 텍스트를 읽을 때
시선이 어디에서 머무는지, 어떤 부분에서 다시 되돌아 읽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정독 여부와 읽기 속도, 역행 읽기, 시선의 머무름 등을
확인할 수 있어 학생들의 읽기 유창성과 어휘 이해 과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시선추적 장비는 비용이 높고 측정 환경과
데이터 분석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교육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기에는
일정한 제약이 있다.
프로그램 평가는 사전·사후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평가 항목은 어휘력, 독해력, 읽기 유창성이었으며,
어휘력과 독해력은 책 내용에서 문제를 추출하여
문제를 만들어 평가하였다.
또한 시선추적(Eye-tracking) 장비를 활용하여
정독 여부와 읽기 속도, 역행 읽기, 시선의 머무름 등을
분석함으로써 읽기 유창성, 어휘 이해 과정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 사이에는 개인차도 있었다.
이미 헬렌 켈러 자서전을 읽어본 학생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끝난 뒤
어휘력과 독해력, 읽기 유창성 등에서 전반적인 향상이 나타났다.
이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읽기 교육이 단순한 독해 훈련이 아니라
읽기·이해·표현이 서로 연결된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2년에 걸친 독서기반 문해력 프로그램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읽기 매체 자체보다 읽기 방법과 표현 활동이
읽기 흥미와 문해력 형성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었다.
물론 뇌과학에 기반한 디지털 읽기 매체가
교육 현장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활용될 만큼
보편화된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결국 읽기의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읽기 경험의 설계에 있었다.
읽기 경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독서는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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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 아카이브 #19
생애 후반 리터러시 교육 모델
― 청년기에서 노년기까지
를 통해
성인의 삶 속에서 리터러시가 어떻게
경험을 해석하고 삶을 재구성하는 힘이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