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아카이브 #3
AI가 문장을 만들어주고,
영상은 감각을 현란하게 휘두르며 사고를 잠들게 만든다.
자극은 넘치지만, 생각할 시간은 사라진다.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읽고 있는가—아니면 흘려보내고 있는가?”
읽기는 단순한 정보 입력이 아니다.
읽는 동안 인간은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기존 지식과 연결하며 새로운 사고를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확장한다.
읽기는 능동적 사고작용이며, 생각을 키우는 시간이다.
우리가 읽을 때 뇌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한다.
이것이 바로 메타인지이다.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글이 길고 복잡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사유의 근육을 사용한다.
그래서 정독, 반복 읽기, 깊이 읽기가 중요하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정독(精讀)–숙독(熟讀)–온독(溫讀)이라는 읽기 단계를 강조한 이유도 이와 같다.
시대는 달라져도 읽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읽기는 학문의 수단을 넘어, 읽는 과정 자체가 도를 닦는 수양이며 곧 인간을 완성하는 길이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온독(溫讀)이라는 개념은
충남교육청이 개발한 ‘AI 기반 맞춤형 문해력 성장 플랫폼’ 이름으로 다시 등장했다.
전통의 “다시 읽음”이 AI 기술과 결합해 학습자의 문해력 향상을 지원하는 교육 플랫폼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는 독서의 방식은 달라져도
깊이 읽기의 필요성과 인간 중심의 학습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깊이 읽기는 전통의 유산이자,
AI 시대를 살아갈 인간에게 더욱 필요한 사유의 근육을 기르는 방식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생각하는 힘은 읽기에서 시작된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이고,
읽기는 그 생각과의 만남이다.
나의 사유는
타인의 언어를 거쳐 확장된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질문하게 된다.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하는가?
왜?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 질문이 비판적 사고력을 만든다.
책을 읽는 동안 저저와의 끊임었는 대화를 통해
수용과 비판, 공감을 해나가는 과정은
AI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인간만의 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이다.
“읽기”가 생각을 들여오는 행위라면
“쓰기”는 생각을 꺼내는 행위다.
글로 쓰든,
말로 하든,
이미지·영상·음악으로 표현하든,
표현은 생각이 밖으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표현하지 않은 생각은
흩어지고 사라진다.
표현은 기억을 붙잡고 의미를 명확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AI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AI가 대신 만들어주는 결과물 속에서
내 생각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표현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이것도 AI 시대 숙제의 하나이다.
읽기는 생각의 재료이자 과정이다.
그러나 읽기에만 머무르면 지식은 내 안에서 멈춰 선다.
반대로 표현만 한다면 근거 없는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
읽고 이해한 내용을 표현하는 순간,
지식은 공유되고 확장되며 재창조된다.
표현의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읽고,
읽었던 것을 자기 언어로 소화하며,
표현의 순간, 우리는 타인을 대화로 초대하게 되고
그 대화 속에서 읽기와 쓰기는 서로를 확장하며 더 깊어진다.
결국 읽기의 사회화는 표현에서 시작된다.
읽기와 쓰기(표현)가 만나야
생각은 살아 움직이고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다.
읽고 → 사유하고 → 표현하는 순환이
인간의 지적 주도권을 지켜낸다.
AI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주어진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읽기와 표현은 함께 가야 한다.
읽기: 사고의 입력
표현: 사고의 외현화
순환: 창조의 탄생
우리는 AI와 함께 생각하고, 질문하고,
세상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
AI는 이 과정을 돕는 도구일뿐,
인간의 고유한 생각과 그에 맞는 표현 방식까지 대신해 줄 수 없다.
기술은 인간의 기능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읽기는 인간의 내면을 확장할 수 있다.
기술만 확장되고 내면이 확장되지 않으면, 우리는 균형을 잃는다.
만약 기술만 확장된다면, 결국 인간은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인가, 기계의 주인이 될 것인가 -
그 갈림길은 인간의 사유 능력과
기술을 다루는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달려 있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연결하고, 다시 쓰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기술을 도구로 삼고,
자신의 내면을 주체로 세운다.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정답을 찾기보다 질문할 줄 아는 능력,
세상을 읽고 내 언어로 다시 쓰는 능력,
그 모든 씨앗은
지금 우리가 읽는 문장 하나에서 시작된다.
결국, 읽기와 표현은 기술에 종속되지 않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주도권이다.
읽는 인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읽기는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니까요.
AI 시대의 진정한 혁신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다시 ‘읽는 존재’로 서는가에 달려 있다.
나는 여전히 책을 펼친다.
문장 속에서 사유의 불씨를 찾고,
그 불씨로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 그려본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읽고, 계속 쓰며,
AI 시대의 인간을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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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 예고 - 리터러시 아카이브 #4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깊이 읽을 수 있는가?”
정독·숙독·온독과 메타인지,
그리고 문장 속에서 사유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해성 김수경(海星 金水卿)/리터러시아 수경(literasia Sookyoung, Kim)
해성(海星)은 마리스텔라(maiesrella)라는 가톨릭본명을 한자로 쓴 것으로, 마리스텔라가 바다의 별이라는 의미처럼 별처럼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는 존재를 지향하고자 한다. ‘리터러시아(Literasia)는 Literacy 와 Asia 의 결합어로, 지식의 민주화와 배움의 권리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