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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주 Aug 19. 2022

제주를 찾는 사람들

제주살이

   

제주살이를 위해 자리 잡은 제주시 한경면은 유명한 관광지가 그다지 없다. 이를테면 성산 일출봉이나 섭지코지, 사려니숲, 비자림, 우도 같은 유명 관광지는 제주도의 동쪽에 몰려 있고, 천지연 폭포나 중문 관광단지, 마라도는 남쪽에 있다. 해수욕장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한적하고 조용한 편이다. 한경면의 가장 큰 매력은 한적함과 석양, 곳곳에 숨은 아기자기 보물 같은 카페와 식당이다.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쉬길 원한다면 한경면과 대정읍을 추천한다. 그 매력에 이끌린 건지, 이곳을 찾는 방문객도 제법 있다. 여름휴가 차 제주를 찾은 무명의 방문객들을 떠돌려 본다.  

   

1) 마라도를 찾은 가족


뙤약볕에 마라도를 찾아갔던 날, 같은 배로 들고 났던 가족이 있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딸과 깡마르고 그을린 피부의 아빠, 유난히 희고 마른 엄마가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제주도로 여행 온 보통의 가족이라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사진도 찍고 웃고 떠들기도 할 텐데, 이 가족은 남 보듯 따로 다닌다. 마라도 가는 배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도 마치 각자 자신의 담당인 것처럼 따로 서서 힐끗 서로를 돌아볼 뿐이었다. 딸이 들어오는 배를 보고 ‘아빠!’하고 부르지 않았다면 한 가족으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덤덤했던 가족.

배를 타고 들어가는 30분 동안도 그랬다. 객실이 넉넉하니 마음에 드는 자리에 골라 앉는다지만, 대학생 딸아이는 선실 왼쪽 앞자리에, 엄마는 정반대 오른쪽 끝 편에 앉았다. 낡은 야구모자를 쓴 아빠는 처음엔 딸아이 근처에 앉았다가, 흔들리는 선실을 가로질러 엄마 옆으로 옮겨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릴 때쯤 다시 돌아왔다.

마라도를 돌 때도 무척이나 과묵한 가족답게 말없이 서로 걷다가 이따금씩 사진을 찍었다. 가족들의 표정에는 대자연을 마주한 경이로움보다 덤덤함 만이 보였다. 혹시라도 싸운 것인가? 내막은 알 수는 없지만, 유난히 마음이 쓰였던 건 나도 그들처럼 무덤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처럼 드러나지 않게 숨겨놓은 진심이 저들 가족들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방식으로 방해받지 않고 맘껏 마라도를 즐겼을 것이다.


같은 곳을 본다지만, 표정만으로 모두 알 수는 없다


2) 카페에서 만난 가족


폭염주의보가 몇 일째 이어지는 제주의 여름은 견뎌 낼 재주가 없다. 마침 제주에는 한낮 더위를 피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다. 우리는 바다 보기 좋고 노을 보기는 더 좋다는 카페를 찾아, 커피를 주문하고 각자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딸로 구성된 한 가족이 우리처럼 더위에 쫓겨 들어왔다. 서늘할 정도로 에어컨을 돌리는 카페는 더할 나위 없는 피서지였다. 아빠에게 뜨거운 여름의 제주 여행은 힘 겨웠던 모양이다. 커피 한 모금과 카페 에어컨 바람으로 무더위를 씻어주니, 이 만한 천국도 없겠다 싶었겠지.

한숨 돌리자, 부지런한 딸아이가 다음 코스를 제안했다.

"잠깐 쉬었다 ○○, ○○ 가자"

그러나 아빠는 더위에 지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더운데 어딜 또 가?"

그러자 딸아이가 아빠를 다독였다.

"아빠, 그래도 어렵게 시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재밌게 놀다 가야지"

엄마는 따갑게 눈총을 쏘며 아빠를 노려봤다. 그러나 아빠는 지금 죽음의 위협보다 폭염의 공포에  .

잠깐의 침묵을 두었다가 딸아이가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나셨다. 엄마는 이때를 틈타 아빠를 다그쳤다.

“애가 힘들게 시간 내서 이렇게 챙겨가며 왔는데, 왜 그래?”

아빠는 묵묵부답, 괜히 먼바다만 바라본다. 이때 바다가 정말 기막히게 근사하긴 했다. 잠시 후 돌아온 딸은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속닥속닥 나누더니 카페를 나셨고, 아빠는 조용히 그네들 뒤를 따랐다. 자고로 여행이란 투닥거리고 풀고 하는 것 아닌가.

  

한여름 오아시스 같았던 바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3) 한림공원을 찾은 혼행족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


우연한 기회에 한림공원을 찾았다. 기온은 여전히 높았지만, 습도가 낮아서인지 걸어 다닐만했다. 공원은 생각보다 넓었고 볼거리도 많았는데, 그중 최고는 시원한 동굴 (협재굴과 쌍용굴)이었다. 길지 않은 코스인데 그 안은 서늘할 정도였고, 동굴을 나오면 안경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역시 무더위 속 동굴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다음 코스인 수국 밭을 지나 민속 마을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팔을 한껏 뻗어가며 셀카 모드로 같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젊은 여자분이 다가와 건넨 말.

“사진 찍어드릴까요?”

센스 넘치는 반가운 도움꾼이었다. 그녀는 훌륭한 구도로 근사한 사진을 찍어주고는 쿨하게 떠났다. 둘러보는 코스가 거기서 거기다 보니, 그녀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주 마주쳤다. 아내는 멋지게 사진을 찍어준 그녀가 고마우면서도, 정작 그녀 사진을 찍어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그러다 드디어 근사한 포토존을 발견하더니 뒤에 오던 그녀를 불렀다.

“여기서 제가 사진 찍어 드릴게요.”

그녀는 밝은 얼굴로 감사하다며 뛰어왔다. 잰걸음으로 우릴 향해 걸어오는 그녀에게 아내가 말을 건넸다.

"혼자 여행하면 사진 찍기가 제일 힘들죠?"

멋진 배경 앞에 포즈를 잡으려던 그녀가 대답했다.

“엄마가 혼자 찍은 사진만 보낸다고 쓸쓸해 보인데요.”


제주도 한경면은 혼영을 즐기기에 좋은 지역 같다. 낭만과 감성을 만끽하기에는 차라리 혼자가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만 못한 것 같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집에 있는 엄마와 나누었던 모양이다. 홀로 여행하던 그녀도 다음 휴가는 멋진 사람과 외롭지 않은 여행이 있길 기대해 본다.


그녀가 우리 사진을 찍어 줄 때 이런 시선이었을까? 한림공원 협재 동굴 밖 숲 길



가족은 너무 가깝고 편해서 오히려 함부로 대할 때가 있다. 함께 여행 왔지만 홀로 즐기는 가족도 있고, 늘 사소한 일로 투닥거리기도 하고, 함께 하지 못한 이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하는 모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는 근사한 일상이었다. 늘 곁에 있어서 소홀하기 쉬운 사람들이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도 한다. 함께 하는 삶에 늘 보이는 모습이라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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