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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주 Aug 21. 2022

제주의 슬픔

제주살이 - 제주 4.3의 흔적들

제주도는 해안이나 담장을 따라 선인장이 많지만,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해안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인장 자생지로 특히 유명하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선인장 마을이란다. 제주 올레길 14코스 이기도 한 이 산책로는 슬슬 걸어 다니며 둘러보기 좋다. 사막의 상징인 선인장이 바다를 따라 자라고 있는 모습은 제주에서 볼 수 있는 묘한 장면이다.


선인장 마을 한경리 지도가 그려진 벽화


적도를 기준으로 북태평양에는 멕시코에서 필리핀 쪽으로 흐르는 북적도 해류, 타이완 동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가는 쿠로시오 해류, 일본을 거치며 차가워진 해류가 미국 서부 해안으로 흘러가는 북태평양 해류와 미 서부 해안을 타고 멕시코로 흘러가는 캘리포니아 해류가 돌며 거대한 북태평양 해류 소용돌이를 만든다. 멕시코의 국민 식재료인 손바닥 선인장 '노빨(Nopal)'은 이 해류를 타고 돌다가 제주도 한림읍 월령리 해안가에 정착해 자생한 거라 한다. 거대한 흐름을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우연한 계기로 흘러왔다니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이다.


거대한 바다의 물결은 선인장 군락지처럼 신비로운 사건으로 이어졌지만,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마음 아픔 사건을 만들기도 했다손바닥 선인장 군락지 시작점 가까이에는 무명천 할머니 삶터가 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물질하고 농사일 돕던 평범했던 그녀가 어째서 이리도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하얀 무명천으로 모두 감추지 못할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을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죄송스럽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녀로 대변되는 4.3 사건의 수많은 희생자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삼가 위로의 말을 전한다.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진 진아영 할머니 삶터


4.3 평화재단에서 배포하는 자료집에 따르면, 4.3은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된 나라를 염원하던 제주도민의 열망의 표현"이면서, 한편으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국민의 생명권이 무참히 유린된 역사"로 표현했다. 제주도 곳곳에 이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곳저곳을 지나면서 발견한 위령비는 수십 년 전 제주에 있었던 참혹한 상처의 흔적을 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그때의 상흔은 지금도 남아 제주도민의 삶 속에 남아있는 듯하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제주4.3 안덕 평화공원 (왼쪽)과 대정읍 무릉리에 있는 위령비 (오른쪽)


끔찍했던 사건 후, 상처를 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흔적들 역시 찾을 수 있다. 대대적인 학살이 있을 당시, 주제도 해안선을 기준으로 5km 이상 중산간 지역을 적성 구역으로 선포했다.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해안 지역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들은 그저 농사짓고 고기 잡던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고향을 지키고 남았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만 했다. 모든 사태가 끝나고 마을로 돌아오거나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다시 삶터를 일구어야만 했다. 당시 정부는 이들이 자리 잡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농업용수를 위한 작은 연못 조차도 주민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갔다고 한다. 한경면 조수리에 있는 한양동연못이 그랬다. 


한경면 조수리의 한양동연못


제주도는 무자비하게 살육이 자행되던 '광기의 시대'를 지나고 긴 회복의 시간을 거쳐 지금의 제주로 살아났다. 어쩌면 이 시절 제주가 겪어온 상처와 회복의 경험 덕분에 치열한 삶에 지친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담담한 위로와 따뜻한 회복의 기회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 속에 아파하던 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원했던 아니던, 그 모두를 안고 가는 것이 '산다'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제주에서 받은 위로만큼 우리도 나눌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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