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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주 Jul 19. 2022

마음의 준비

한달살이 준비 -1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모든 일은 이 물음 하나에서 시작했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의심.          


만으로 마흔, “82년생 김지영”과 동갑내기 친구. 아내와 함께 사는 2인 가구. 가진 건 박사 학위 한 장, 그러나 계약직 연구원 신세로 몇 달 뒤면 계약 만료 예정. 주행거리 10만 km를 훌쩍 넘은 중고차와 월세 살이 집 하나가 가진 전부.     


지금껏 잘 살다가 이제 와서 이런 의심이 드는 건, 3년 차 마지막 계약을 하고 든 생계유지의 불안 탓과 그 불안의 뿌리에 이는 ‘이 일이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병. 주변과 비교하고 나만 뒤 처지는 느낌이 든다. 갈림길 앞에서 흔히 하는 말처럼,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지 뭐’의 심정으로 한참을 가봤는데, ‘이 길이 아닌가?’ 하는 느낌.   


쉬어갈까? 정신없이 살다 지쳐 힘에 부칠 때, 한적한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소소한 일상으로 회복하는 시간이 간절해졌다.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계약 종료 10달 전 


나이 스물에 ‘서른이면 멋지게 살 수 있겠지?’ 하는 기대처럼, 초라했던 서른에는 ‘마흔이면 뭐라도 되어 있지 않을까?’ 희망했다. 조금 더 멋지고 근사하게 살 줄 알았다. 멋진 차에 넓은 집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수고와 능력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하는 일,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며 살 줄 알았다. 그런 근사한 삶은 고사하고, 제 한 가족 건사도 힘든 상황이라니! 이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삶을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두 번째 이유는 이 나이에 부끄럽게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다. 지금껏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결정의 순간이면 대부분 후자를 선택했다. 먹고사는 숭고한 일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 ‘하고 싶은 일’을 두고 살았다. 먹고살기만으로도 바쁜 한국 사회에서 두 가지를 모두 하며 살기는 힘들었다. 현실 앞에 숨겨야만 했던, 글쓰기에 집중해 보고 싶었다.     


마지막 이유로, 계약이 끝나는 이번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다시 정신없이 살겠지. 언젠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 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처음 보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달 정도 살면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해 보기로 했다. 


마음의 결심을 세우고 먼저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나의 터무니없는 요청도 아무렇지 않게 ‘그래, 그러자.’ 하고 받아주었다.                



 계약 만료 45일 전. 불안 잠재우기     


몇 년 전 그날은 아는 후배의 모친상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아 장례식장엘 들려 육개장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내일 출근 생각에 '서둘러 돌아가자' 한 게 열한 시를 넘어서였다. 안 그래도 복잡한 도심 초행길에, 야간 운전이었다. 깜박 헛갈려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잠깐 당황하는 사이, 내비게이션이 새로운 경로를 제안했다. 그 덕에 조금 돌아가게 되었다. 


한 달 하고 보름 후면, 3년 차 계약이 끝난다. 지금 직장은 보수와 업무환경이 만족스럽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나의 열정과 노력이 이곳의 성장에 기여하는지, 혹은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다. 나의 수고는 오로지 월급을 받기 위한 퍼포먼스 정도이고, 고용주에게 나를 대신할 누군가는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 직장은 나의 수고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의미 없는 공회전은 3년 차 계약이 끝나는 올여름까지로 충분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불안한 건, 지금 시기에 고민의 시간을 갖는 일이 적절한가이다. 나무가 사방으로 가지를 뻣 듯, 당장의 생활과 미래의 진로에 대한 불안이 흩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이번 여름에는 한 달 살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제주"에서의 삶이 목적이 아닌 “삶”에 대한 고민을 제주에서 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고 싶었다. 마흔이 다 되어서도 젊은 시절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후배의 모친상을 다녀오던 길, 잘못 들어선 덕에 한적한 외곽길을 돌게 되었다. 늦은 밤 까만 하늘 아래 길게 늘어선 도로를 따라 가로등이 늘어져있고, 하늘에는 동그란 보름달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날 달이 눈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밖의 발견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어두운 하늘의 한 줄기 빛을 내려 쏘이는 보름달의 심상이 남아있다. 

         

우리 의도대로 돌아가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돌아가는 길이라도 그 길에 얻는 게 있다면 그게 남는 장사 아닐까? 한번 크게 돌아가 보리라 작심한 이번 한 달 살이에 잃어서 아쉬운 것보다 얻어서 기쁜 것을 더 기대해 본다.          


불안은 사방으로 단단하게 발산한다


 계약 만료 며칠 전 


계약 만료를 며칠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에 지쳐버렸다. 원래 이런 고민에 잘 지치는 타입이다. 지칠 대로 지치면 마음 편하게 포기해 버린다. 이럴 때면 인생 편하게 사는데 도움이 되는 성격이다. 이제 제주 한 달 살이만 생각니, 앞서는 건 걱정이 반 설렘이 반.  


반절의 걱정은 현실 문제들이다. 이를테면, 한 달 살 집과 세간살이는 어떻게 할지, 차는 가져갈까 렌트할까. 짐은 얼마나? 생활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등등. 대부분의 걱정거리는 알아보고 준비하면 해결되는 것들이다. 이런 종류의 걱정거리는 보통 나보다 계획 세우기에 능숙한 아내의 몫이 되곤 한다. 나 나름 찾아보고 계획한 것들은 그녀에게 대충 하고 놀 궁리하는 초등학생의 숙제 같아 보일 것이다. 혼나기 전에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다행히 미리 결정한 덕에 준비할 시간이 넉넉했다.     


나머지 반절의 설렘은 이런 것들이다. 제주살이 한 달 동안 무얼 하고 보낼까? 먼 남쪽 땅까지 가서 알차게 시간 보낼 궁리 거리들이다. 반려인은 벌써 몇 개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었다.     


"땅콩 먹으러 우도에 가야 하고, 한라산도 오르고, 오름도 가자!"  


나 역시 나름대로 할 일을 고민했다. 이전까지 해오던 것들 말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기로. 손편지를 쓰자. 엽서도 좋다. 일기도 쓰자. 매일은 부담되니, 이삼일에 한 번을 쓰기로 하자. 사진도 찍고, 늦잠도 자자. 바다 보고 멍~ 하늘 보고 멍~ 배고파지면 끼니를 때우자. 잘해 먹지 말고, 때우기로 하자. 부지런하지 말자. 실패하려 노력하자. 피어오르는 구름 보고 감탄하자. 넘어가는 낙조가 좋은 날이면 꼭 소주 한 잔 하자. 별이 예쁜 밤이 오면 세어보자. 어느 시인처럼 별 세며 추억하자. 비 오는 밤이면 빗소리 가락 맞춰 노래하자. 그 모든 걸 함께하자. 한 달은 충분히 길다.   


 뒷걸음질 치듯 더디게 이어온 삶에서 최근 들어 내딛는 한 발 한 발 의심 들기 시작했다. 내 삶은 맞는 걸까? 한달살이가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최신 유행 소식을 소개하는 잡지처럼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지나면 집구석 어딘가 처박히는 잡지처럼, 가볍게 소비되고 버려질지라도, 정신없이 살다 지쳐 힘에 부칠 때, 한적한 바다나 조용한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소소한 일상으로 회복하는 시간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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