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승무원이 되기까지.

오늘도 어디론가 향하는 구름 속 비행기에게.

by 라니

하늘에서 내려온 지 5개월이 되었다.

10년 전, 내 마음이 원하고 갈망하던 그 꿈을 찾아 헤매이던 때에도 나는 할 수 있다는 희망 한 단어로 버틸 수 있었다. 조용함 속에서 혼자 있을 때 내게 찾아와서는, 그 누구의 존재보다 강하게 내 곁을 지켜주던 믿음이라는 존재.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터전을 잡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할 때, 나는 승무원 최종 시험에 낙방하고 3일을 아니 한 달은 족히 이불 속에서 눈물이 콧물이 되도록 울곤 했었다. 실연의 아픔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교양으로 들었던 심리학 수업에서 배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설에서 자아실현의 욕구가 가장 높은 단계임을 뼈 속 깊이 실감하던 때였다.

될 듯 닿을 듯, 최종 시험에 떨어지고도 나와의 싸움은 이어져 갔고, 주위 사람들은 어서 하루 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잡으라고 다그치듯 조언아닌 조언을 해 주었지만, 한 번 한다면 해내고 마는 성격의 나는 그 누구의 조언보다도 내 마음의 소리에 손을 잡아 주었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그 것은 내 꿈을 실현시켜 그 삶을 살아보는 것이였다.


안정된 직업을 뛰쳐 나와 승무원 시험을 보러 다니기 위해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온갖 파트타임을 하며 꿈을 안고 살아가기를 2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시험도 많지 않고 지쳤던 나는 , 시집가서 마음 힘들 때 친정집 찾는 심정으로 부모님 집으로 내려와 6개월을 살았다.


지방으로 내려온 나를 친구들은 이제 포기하고 정착하나 보라고 생각했다고 후에 말해 주었다.

그 해 여름 지금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고 일기장에 꾹꾹 써내려가며 상단에 적어놓았던 그 짧은 문장.

"이번 여름안에 꼭 이룬다."


마음 속 그 희망 한주먹으로 나는 비행기표를 끊고 열흘뒤 난생 처음 유럽이라는 땅을 밟았다. 나홀로!

기내용 트렁크 안 몇몇의 여름 옷가지들 사이로 검정 치마를 곱게 접어 담고서.


여름 휴가라는 명목으로 주어진 약 열흘의 첫 유럽 여행.

말로만 들었던 로맨틱한 도시 프랑스 파리.

가우디와 구엘 공원의 여유가 싱그러웠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포르투갈 리스본.

2002년 6월 고3이였던 내 마음을 후벼팠던 나라 포르투갈. 자습 시간에 온통 월드컵 생각뿐이였던 그 시절. 책상 달력에 적어놓은 경기 중 제일 기억에 남았던 포르투갈 전. 그 때 난생 처음 들어 본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서른 살 여름, 혼자 떠난 여행. 여행 마지막 날 본 포르투갈에서의 승무원 면접





여고 3학년 학생이던 내게 수능 공부라는 어두웠던 나날 들의 큰 기쁨이 되었던 2002월드컵, 포르투갈 전의 기억. 10년이 지나 나는 그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이끌리듯 홀로 노란 트램에 몸을 맡긴 채, 좁은 골목 길 안 자동차와 트램이 길목 하나를 놓고 달리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처음 유럽에 와서 꿈 같던 여행이 끝나갈 무렵, 검정 치마를 갈아 입고 지하철을 타고 리스본 시내에 있는 쉐라톤 호텔을 찾아갔다. (내가 가려는 외국계 항공사는 그 때 유럽에서 채용이 종종 있었다.)


1년 넘게 입지 않아 밑단이 떨어진 것도 모르고 가져온 검청 치마. 호텔 데스크에서 만난 햇볕에 그을렸지만 누구보다 빛나던 웃음을 건네준 직원이 뜯어진 치마 밑단을 박으라고 스테이플러를 건네주었다. 2층 시험장에 들어가니 강당 가득히 유럽 응시생들이 앉아 있었다.


검은 단발 머리 한국인.

8시 면접 시작 5분 전에 마지막으로 들어갔지만, 떨림보다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항공사 채용부서에서 온 직원들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응시자 2명씩 짝을 지어 강단에 나가서 짝꿍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포르투갈 현지 내 파트너가 나를 남한이 아닌, South Africa에서 온 소녀라고 설명했음에도 나는 그 친구가 귀여워 미소가 지어졌다.


아침에 호텔 직원이 건네준 친절의 힘 덕분이었을까.

열정 넘치는 포르투갈인들이 에너지 덕분이였을까.

그토록 바라던

20대 내 마음 속에 꿈틀거리던 꿈.

주변의 소음에도 아끼던 꿈.


그렇게 죽지도 제대로 살지도 못하던

서른 살에

나는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어제 저녁을 먹고 멍하니 배란다 창을 내다보고 있을 때

이륙 후 고도를 높이며 떠가는 비행기가 보였다.

내 시야는 그 비행기의 끝을 쫓고 있었다.

구름 속에 가리기 전까지

한참을 쳐다 보았다.


꿈 많은 준비생이던 10년 전 준비생 시절에도

이번 봄, 7년의 비행을 마무리하며 내려온 지금도

나는 비행기를 보면 짠하다.

고향을 떠날 때 터미널에서 버스가 출발해 자취를 감출 때까지

지켜보던 엄마처럼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출 때까지

비행기 꼬리가 하얀 구름 속에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며 배웅한다.


오늘도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를 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