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 놓여 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거나 커피숍에 가는 것을 기본으로 집에 방문한 정수기 점검 직원, 여행을 갈 때 만나는 수많은 접점들에서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 놓여 있다.
홀로 떠난 포르투갈 여행. 리스본에서 묵은 숙소 앞에 작은 현지 식당이 있었다. 4일 동안 머물면서 시내의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리스본을 떠나는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집 옆에 있는 작은 식당 테라스에 앉았다.
포르투갈에서 만난 사람들이 생선 요리가 유명하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미디어에 노출되어 유명한 식당도,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길목에 있는 식당도 아니었던 지라 메뉴판은 포르투갈 현지어로 되어 있었다. 흔한 그림조차 없어 우물쭈물 대는 내가 영어로 생선 요리가 있냐고 물었다.
통통하고 동그란 얼굴의 현지인 종업원 아저씨는 영어로 묻는 내게 포르투갈어로 대답을 해주었다. 무슨 말인지 서로 알 길이 없던 대화들 속에서, 아저씨가 잠시 망설이더니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뒤 넙죽한 양철 바구니에 다섯 마리의 생선을 들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 섰다.
눈부시게 빛나는 8월의 포르투갈 리스본 작은 골목길에서, 날 생선을 들고 내게 하나 골라 보라던 식당 아저씨. 냉장고에서 갓 꺼낸 듯한 생선 다섯 마리를 둥근 철판에 보기 좋게 나열시켜 어떤 것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아저씨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 내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한동안 미소를 짓는 내게, 아저씨가 웃으며 화답을 했다. 퉁퉁한 아이, 늘씬하지만 기다란 아이, 서로 다른 다섯 마리 생선을 몇 초 들여다보다가, 짤막하지만 통통하고 살 많은 생선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서로의 말을 모르지만, 그 안에 배려와 진심이 가득함을 마음이 알고 있었다.
포르투갈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손님인 나와 나의 영어를 알아들을 리 없던 리스본 한 주택가 골목의 식당 아저씨. 아저씨가 내게 보여주려고 들고 나온 생선 다섯 마리는 감동이었다. 희미하게 기억나는 아저씨의 얼굴과 길가에 놓인 나무 책상을 비추던 햇볕 줄기가 떠오른다. 그 골목길 식당에서 느꼈던 따스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유명한 미슐랭 식당에 가서도 누군가는 편안한 식사를 하지 못하기도 하고, 시골 골목의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최고의 식사를 하기도 한다. AI가 서비스 분야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서비스가 인간에 의해 소비되어진다. 서비스 관련된 회사들이 매뉴얼을 만들고 직원 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도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리스본에서 만난 생선 아저씨의 행동은 짜인 각본과 각 잡힌 시나리오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감동적이었고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동동 매달린 나뭇잎처럼, 시간이 지나도 마음 한 구석에 대롱대롱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