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와 볼인사,

서로 다른 인사 방식,

by 라니

유럽 비행을 다니는 것은 아랍 에미레이츠에 살면서 나의 작은 낙이였다. 가끔 사막에서 마음이 메말라가던 날, 모래 바람이 베란다 유리창에 하얗게 내려앉아 닦을 엄두가 나지 않는 날엔, 나는 유럽의 나라들로 도망치듯 유니폼을 입고 새벽 12시 아부다비를 빠져나갔다.


유난히 새벽 출발이 많았던 유럽의 도시들, 한국의 공항은 공항 법에 따라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은 비행기의 출, 도착을 제한한다고 한다. UAE를 베이스로 있는 항공사에서는 새벽 12시 넘은 새벽 2,3시 비행기 출발이 많다.



비행 초반 이른 새벽도 아닌, 자정 넘어 준비해야 하는 비행들이 처음에는 참 힘에 버거웠다. 밤을 못 새우던 나, 대학생 때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해도 밤 열 시가 되면 꾸벅꾸벅 졸음이 와서 일찍 자리를 뜨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아부다비 밤 12시 비행을 가야 한다니. 카페인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나는 늦은 자정 비행이 있는 날엔, 커피 대신, 카페인이 없는 꽃잎 차를 마시곤 했다. 새벽 1시, 졸린 얼굴과 더 자고 싶어 하는 몸의 리듬을 깨 버린 채, 찬물에 얼굴을 씻어내고 눈썹을 그리고 짙푸른 보라색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면 새벽에도 없던 힘이 불끈 솓았다.


유니폼을 입고, 브리핑 센터에 가니, 새벽 1 시인지도 모르게 아침보다 많은 승무원들이 또각 거리며 각자의 비행이 있는 브리핑 실로 걸어간다. 2층에 올라가면 승무원들의 아지트인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나는 어김없이 재빠르게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카푸치노 마시는 시간을 좋아했다.


자정,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고 1년 전 함께 비행했던 승무원을 만나기라도 하면 반갑다고 부둥켜안고 인사를 건넨다. 파운데이션 묻을까 얼굴에 거리를 둔 채 내 볼에 쪽! 소리를 내며 인사하는 승무원들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한 밤 중에 일어나 비행 가는 것이 적응되듯, 그들의 방식으로 주고받는 인사 방식도 시간이 지남에 자연스러워졌다.



처음 아부다비에 왔을 때 어색했던 것이 이 볼에 하는 인사였다. 현지인들은 아라빅이기에 하지 않지만, 회사의 많은 직원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왔기에 주로 이 볼인사를 자주 하곤 했다. 아침이든, 한 밤중에 유니폼을 입고 만나든, 내 볼에 얼굴을 들이미는데 처음에는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잔뜩 얼어 뒷걸음치던 나를 보며 웃으면서도 그들의 인사는 계속되었고, 나도 적응이 되었던 모양이다.



Bise 볼에 하는 키스로 프렌치 식 인사법

가까운 친구나, 가족, 반가운 사람 등을 만났을 때 다양한 경우에 인사로 볼 뽀뽀를 한다.

단지, 정말 입을 볼에 대지는 않고 얼굴만 살짝 대고 쪽! 소리를 낸다.



최종 면접이 있었던 날, 8시 반 호텔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호텔 2층 로비의 소파에서 10명 정도 되는 지원자들이 최종 면접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어제 만난 아일랜드 친구와 스페인에서 날아왔다는 친구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포르투갈 현지 친구들이었다. 다리를 꼬고 편하게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던 차에 면접관 님이 방에서 나오셔서 우리가 앉은 소파로 걸어오셨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의 외국인 친구들은 여전히 다리를 꼬고 앉아 면접관을 쳐다보았다. 4명의 면접관 중에 걸어 나온 면접관은 동양인 면접관 님이었고, 나도 동양인인지라 자연스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했던 것이다.


최종 인터뷰는 생각했던 것보다 짧게 끝났다. 예전에 1시간 동안 압박 질문을 받았던 것과 달리, 합격할 때는 10분 정도 3가지 정도의 질문을 하고 끝이 났던 것을 보면, 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부터,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멀리 걸어오는 면접관을 보고 인사를 드리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내 여행 이야기를 건네던 순간부터 이미 나는 그 과정 중에 있었으리라.


동양인으로, 외국인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문화 차이와 인종을 뛰어 넘어 전 세계의 열정 있는 승무원들을 채용하는 그 분이 멋져 보였다. 나를 잘 챙겨주심이 느껴져서 감사하다고 꼭 한 번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입사 후 그만두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300명 ~400명 붐비는 손님들 사이에서, 의식처럼 비행 전 재빠르게 에스프레소를 입에 털어넣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수많은 크루들, 그들과 나누던 정겹던 볼인사는 기억 속에 남아있다.

며칠 전, 한국으로 비행을 온 친구는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 예전처럼 편하게 커피를 마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항상 만석이던 붐비던 비행기는 스무 명 남짓되는 손님들의 조용한 움직임만 남았고,

줄지어 기다리던 화장실 앞 손님들은 온데간데없고,

볼인사를 나누던 크루들은 눈으로 인사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