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연주가

열정으로 빛나는 사람들,

by 라니

10월의 가을날, 작년 가을 나뭇잎이 노랗게 익어 거리에 우스스 내려앉은 날, 나는 독일 뒤셀도르프의 시내 골목을 거닐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노신사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쇼핑 골목의 중앙에 자리 잡고, 앞을 거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그의 눈은 지긋하고 따스해 보였다. 쇼핑을 하고 상점을 나온 이십 대 소녀들의 눈빛보다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의 눈빛은 더 행복하고 그윽해 보였다.


이집트에서 온 승무원 친구, 비비안이 그녀의 갓난아이의 기저귀와 몇몇 가재도구를 사러 약국에 들어간 사이, 나는 반대편 상점 난간에 엉덩이를 기대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시때때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구경하며 가을을 만끽했다.



가을날, 그는 누구보다도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나는 부러웠다.

가슴이 설레고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대륙을 건너, 아부다비에 살림살이를 풀고 비행을 다니지만, 승무원이 되고 비행을 다니는 것에서 오는 한계가 있었다. 세상의 이 곳 저곳을 날아다니고, 제 집 드나들 듯 호화스러운 호텔에 머무르며 슬리퍼 차림으로 세수도 안 한 채, 호텔의 조식을 드나들기도 했다.

한 도시에 도착해 머무는 시간은 짧게는 24시간 길게는 3일 정도도 있지만, 대략 하루나 하루 반나절의 시간이었다.




빼곡한 비행 스케줄 사이에서 내 몸을 챙겨야 했고, 그 안에서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나의 욕구도 충족시키며 열심히 수많은 이름 모를 도시들의 작은 골목길을 걸어 다니면서, 뭔가 더 설레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던 때였다.


그런 찰나에 만나게 된 독일의 바이올린 켜는 아저씨의 얼굴은, 빛이 났다.

그런 그가 행복해 보였고, 호화로운 집을 가진 그 누구보다도 골목길 한편에 자리를 틀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에서, 그런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연주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를 입학하기 며칠 전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동네 미용실에 가셨다. 공부하는 소녀라는 인상이 영락없는 교복의 단발머리 소녀 그리고 안경점에 가서 안경도 처음으로 맞추었다. 더 이상 엄마는 매일 아침 나의 머리를 양 갈래로 나눠 디스코 머리를 땋아 주시지 않으셨다. 머리가 짧으니 이제 그럴 머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다니던 피아노 학원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당연시 그만둬야 하는 줄 알았다. 언니와 나는 같은 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그림과 만들기에 더 흥미를 느꼈던 언니는 도중에 그만두고, 나는 혼자 피아노를 다녔었다. 피아노 치는 것이 제일 재밌었던 초등학교 시절, 영문도 모른 채 그만두었던 피아노와 20대 중반이 되어 다시 만났었다. 언니의 결혼식 축가를 빌미로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이 붐비기 전, 연습을 하러 다녔었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본다. 삶의 안정적이라는 것의 기준은 모호하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안정적이라 말할 수 없으며, 결혼을 했다고 안정적인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삶의 안정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욕망들을 누르지 않고 행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쌓아 나가는 일이 아닐까.

바이올린을 켜던 그 노신사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기품 있고, 안정감이 품어 나왔다.

가을이 되니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