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 젖어드는 배려
국어사전에는 배려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하는 마음이 좋다. 하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는 도움은 부작용을 낳는다. ‘배려’라는 단어가 어쩔 때는 선이 될 수도 있고, 어쩔 때는 악이 될 수 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평범한 생활 속의 배려가 사실 가장 좋은 배려이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이 배려가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배려가 필요한지 먼저 물어보고 진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부모들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가 당신들이 정말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정말 그 아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부모이기 때문에 당신한테 갔다.’ 그 말도 사실 조금 부담이 된다.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들도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다.,
‘왜 이 아이가 나에게 왔을까? 나에게 와서 왜 나를 힘들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든다. 힘들어 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래 말이 오히려 더 힘이 된다.
“그 아이 때문에 여러분이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배려를 다시 한 번, 다른 의미의 배려로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일명 동정적인 배려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배려. 그리고 팔이 한쪽 없는 사람들 또는 다리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 그냥 물 흐르듯이 ‘우리 사회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지나가듯이 보시는 것이 가장 큰 배려이다.
뚫어져라 보시면 굉장히 부담이 된다. 그래서 배려에 대해서 물 흐르듯이 생활 속에서 젖어드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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