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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r 30. 2022

도시를 굴리는 엔진

필수 노동자와 사회의 품격

지난주 아랍에미리트(UAE)에 다녀왔다. 아내가 교수로 일하는 뉴욕대학교(NYU)는 전 세계 곳곳에 캠퍼스가 있다. 그중에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있는 캠퍼스가 중국 상하이 캠퍼스와 함께 가장 큰데, 아내가 NYU 아부다비 정치학과에서 초청을 받았다. 원래는 줌으로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팬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학교에서 직접 와달라고 부탁했다. 평생 서아시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우리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저기 가보겠냐는 마음에 곧바로 초청을 수락했다. 마침 발표 전 주인 3월 셋째 주가 아내 학사 일정상 봄방학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바이에서 나흘, 아부다비에서 나흘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여기가 여행 에세이를 쓰는 공간도 아니고, 일기장은 더더욱 아니지만, 아랍에미리트 첫 겉핥기 여행에서 눈에 띈 몇몇 장면에서 뉴욕의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아메리카노의 브런치'에 써도 괜찮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화려한 도시를 굴리는 엔진은 무엇인가?'에 관한 단상이다.

부르즈 알 칼리파(Burj al Khalifa)는 지구 상에 현존하는 인간이 쌓아 올린 건축물 가운데 가장 높이가 높다. 두바이의 랜드마크답게 도시 어디에서도 부르즈 알 칼리파가 보인다. 아마 저 멀리 사막에서 보더라도 하늘을 찌를 기세로 삐쭉 솟아 있는 저 건물이 제일 잘 눈에 띌 거다.


두바이는 뉴욕보다 8시간이 빠르다. 여행 경력이 꽤 쌓였지만, 여전히 시차 적응은 어렵다. 나이, 신진대사, 기초 체력이 모두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러리라. 일찍 잠들었다가 한밤중에 깼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여명이 밝아오길래 동틀 때 부르즈 알 칼리파를 보려고 커튼을 걷었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건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일군의 무리가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하러 현장에 나온 건설 노동자들이었다.

그렇다. 두바이에는 부르즈 알 칼리파 말고도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지금도 계속 사방에서 새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다. 온 도시가 여전히 공사 중이다. 그 많은 건물은 누가 짓는가? 건설 노동자들이다. 물론 아랍에미리트 정부와 두바이 왕족의 지원이 없었다면, 유명한 건축회사가 설계와 시공을 맡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결국 철근을 심고 자재를 쌓아 올려 건물을 지은 건 사람이다. 


현장에 나오는 건설 노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아랍에미리트에 사는 사람 가운데 아랍에미리트 국민(Emiratis)은 11%밖에 안 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매년 1억 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받는다. 나머지 89% 외국인 가운데 인도나 파키스탄, 네팔, 아니면 이집트,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노동자들은 상당히 낡은 승합차를 함께 타고 현장에 온다. 승합차 한 대에서 열서너 명의 노동자들이 차례차례 내린다. 3월이지만 한낮에는 제법 더우니 선선할 때 일을 해두려고 일찍 나왔나 보다. 그런데 벌써부터 지쳐 보인다. 그렇게 종일 현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오후에 다시 타고 온 승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어디서 온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두바이 도심의 고급 아파트에 살기에는 벌이가 넉넉지 않을 거다.

새벽바람을 가르던 건설 노동자들의 승합차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차들도 봤다. 두바이 몰에 있는 수많은 볼거리 가운데 하나가 슈퍼카들이 늘어선 VIP 주차장이다. 택시 타는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데 있어서 나도 지나가다 잠깐 봤는데, 자동차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명품들이 늘어서 있었다. 슈퍼카는 주로 왕족이나 귀족들이 타고 다닌다고 한다. 

낡은 승합차와 번쩍번쩍하는 슈퍼카 가운데 어떤 차에 탄 사람들이 두바이를 굴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사실 '둘 다'라고 해야 맞을 거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러모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듯했다. 화려한 슈퍼카가 눈에 더 띄긴 하지만, 어쨌든 슈퍼카에 탄 부자들은 저 멋진 건물을 짓지 않는데 말이다. 건물이 지어지고 나면 그 안을 누비는 데만 익숙한 사람들이 온갖 이목을 독차지한다. 

한 번은 슈퍼카 한 대가 고속도로에서 낡은 승합차를 개조한 통근 버스를 앞질러 갔는데, 그 찰나에 정지화면처럼 버스에 타고 가던 노동자의 표정을 보았다. 종일 일한 탓에 지쳐 보이는 노동자는 무심한 눈빛으로 슈퍼카를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슈퍼카가 워낙 빨리 갈 길을 가는 통에 시야에서 놓쳤는지, 두바이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라 감흥이 없었는지, 아니면 매일 이렇게 힘들게 일해도 저런 비싼 차를 꿈꿀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 기억 속에는 다소 기괴한 장면으로 남았다.


화려한 도시를 굴리는 엔진과도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니 뉴욕의 필수 노동자(essential workers)들이 떠올랐다. 필수 노동자라는 말이 얼마나 복잡 미묘하고, 동시에 지극히 모순적인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여과 없이 드러났다. 

필수 노동자를 정확히 정의하긴 어렵다. 대신 직관적으로 이 사람들 없으면 우리 일상이 무너지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된다. 대중교통을 운전하는 지하철 기관사, 버스 기사, 청소 노동자, 건물 경비원, 식당 종업원,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 화물 기사, 택배 기사 등 나열하자면 한참 더 읊을 수 있다. 소방관, 경찰관도 포함될 거다. 아, 팬데믹이니 당연히 구급대원을 비롯해 의사, 간호사 등 의료 노동자도 빼놓을 수 없겠다. 

2020년 봄, 팬데믹이 발발하자 거대한 도시를 굴리는 영웅과도 같은 필수 노동자들을 향해 칭송이 이어졌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안전에 중요한 장비는 전혀 지급되지 않았고, 방역도 뒷전이었다. 다른 데는 몰라도 내가 목도한 뉴욕의 현실은 분명 그랬다. 필수 노동자들은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를 지키다가 스러져갔다. 

2020년 3월. 뉴욕의 한 대형 병원의 간호사들. 방호복이 없어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쓰고 밀려드는 코로나19 환자를 맞았다.

2020년 3월 초쯤으로 기억한다. 아내와 장을 보러 집 근처 마트에 갔다. 아직 본격적인 봉쇄가 발표되기 전이었고,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던,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이미 뉴욕시 전역에 바이러스가 한창 퍼지고 있었을 걸로 추정되던 때였다. 우리도 가급적 집 밖에 나가지 말고 삼시세끼를 해먹을 요량으로 일주일치 장을 보러 갔었다. 그런데 마트에 온 사람 가운데 못해도 80%는 장보기 대행업체의 주문을 받고 장을 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긱노동자들이었다. 직접 장을 보러 온 우리 같은 용자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까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세상에서 진짜 중요한 필수 노동자는 바로 마트에서 내 주문을 실행에 옮겨 오이와 두부를 담아주던 이들, 이를 배달해주는 기사들인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필요한 보호는 받지 못했다.

위에 올린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쓴 간호사들 사진은 2020년에 처음 본 뒤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사진이다. 실은 뉴욕의 코로나19 관찰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계기도 바로 저 사진이었다. 병원의 간호사, 의사들이 저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저 병원의 CEO는 플로리다의 한적한 바닷가에 있는 자신의 저택 벙커에서 원격 근무를 하고 있었다.

2020년 5월 뉴욕타임스 기사에 실린 지도다. 동그라미의 크기는 우편물을 받을 집 주소 변경을 신청한 사람들의 숫자에 비례한다. 큰 동그라미가 겹쳐진 맨하탄과 브루클린 일대에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그래서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를 곧장 떠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산다. 두바이 도심처럼. 두바이의 마천루를 수놓는 건물을 짓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뉴욕을 굴러가게 하던 필수 노동자들은 대부분 맨하탄과 브루클린 바깥에 살았다. 그들은 팬데믹을 피해 한적한 시골의 별장에 가 있을 여력이 없다. 당장 하루라도 일을 못하면 월세와 생활비, 자녀 교육비 가운데 어디든 구멍이 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노동은 재택근무가 어려운 유형의 일이었고, 방호복은커녕 마스크도 구하기 어려운데 코로나19에 걸리기라도 하면 병원비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갑자기 음식 맛이 안 느껴지고, 열이 나기라도 하는 날엔 타이레놀 한 알 먹고 끙끙 앓는 수밖에 없던 게 2020년 봄 뉴욕의 필수 노동자가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도시를 굴리는 엔진, 일상의 영웅, 필수 노동자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부당한 처사였다.


한 사회의 품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공동체를 위해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이 그에 맞는 대우를 받고 있느냐를 아주 높은 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바이의 건설 노동자들이 슈퍼카를 몰고 출퇴근해야 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사실 그들의 연봉이나 노동 환경이 어떤지 겉핥기 여행자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약 반세기 전 오일머니를 좇아 열사의 땅에서 고생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보다는 모든 면에서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가 나았으면 한다. 상황이 5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인류가 진보한다는 명제에 적잖은 회의가 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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