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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r 16. 2022

배운 사람이란

붉은 바다 해구에서 온 푸른 섬 주민 타라 웨스트오버 대담을 듣고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이 맥락 없이 뚝 끊겼다. 붉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푸른 섬들에 관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오늘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협상은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푸틴은 계속 민간인 거주 지역을 골라 폭격을 퍼붓고 있다. 푸틴과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꼼꼼히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우리 모두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이제 나는 내 할 일, 내가 하던 이야기도 마저 해보려 한다.

2016년 대선 투표 결과에 따라 색칠한 지도다. 2022년 중간선거도 큰 틀에선 비슷한 색이 칠해질 것이다. 그래픽=뉴욕타임스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의 여정에 중요한 길잡이가 될 지도다.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도시에 사는 사람과 시골에 사는 사람,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대학 교육 이상을 받은 사람과 최종 학력이 고등학교 이하인 사람, 여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집에 총이 있는 사람과 총이 없는 사람, 독실한 종교인과 종교가 없는 세속적인 삶을 선호하는 사람. 모두 조금씩 결은 다르지만, 붉은 바다와 푸른 섬의 미국인을 묘사할 수 있는 표현은 이렇게 다양하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서로 오해의 골이 무척 깊다는 데 있다. 온 세상을 하나로 연결해준다던 소셜미디어는 오히려 소통의 장을 앗아가 버렸다. 각자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하는 지금의 소셜미디어에 건강한 '소셜' 기능도, '미디어'의 역할도 기대하기 어렵다. 

실은 나도 객관적인 위치에서 양쪽을 조망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지적인 관찰자 시점에 설 만한 능력도 당연히 없고. 그러니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이 그렇듯 붉은 바다는 내게 달의 뒷면처럼 낯설고, 막연히 두렵기도 한 곳이다.

서로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려면, 양쪽을 다 잘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러다 "배움의 발견(Educated)"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가 생각났다. 타라는 아이다호주에 있는 산골 마을 출신이다. 행정구역상 클리프튼(Clifton)이라는 동네 출신이라는데, 어제 소개한 붉은 바다/푸른 섬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인구 300~400명을 왔다 갔다 하는 클리프튼에서 2016년 트럼프 후보는 173표(67%)를 득표했다. 클린턴 후보는 15표(5.8%)를 받는 데 그쳤다. 심지어 이반 맥멀린이라는 제3 후보가 56표(22%)를 받아 2등이었다. 타라는 매우 보수적인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정부가 언제 자신들을 잡으러 올지 모른다며, 평생 혼자만의 전쟁을 준비하던 타라의 아버지는 생존주의자(survivalist)로 불린다.

그런 타라 웨스트오버는 아버지가 "사악한 악마와 같은 정부가 조종하는 기관"이라고 치를 떨던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며, 지금은 '악마와 동의어인 빨갱이들의 소굴인'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가 있는 케임브리지에서는 트럼프가 5% 이상 득표한 투표소를 찾기 힘들 정도다.

지난 2020년 미국 대선, 하버드대학교가 있는 투표소에서는 유권자의 94%가 바이든을 찍었다.

한 번뿐인 인생에 타라는 말 그대로 '극과 극'을 오간 셈이다. 그만큼 이 문제에 통찰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미쳐서 전에 봤던 대담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2019년 아스펜 인스티튜트(Aspen Institute)라는 싱크탱크가 주최한 콘퍼런스였다. 타라가 한 말 가운데 인상 깊은 것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추려서 정리했다. 특히 한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며, 또 이 선거를 무척 피상적인 차원에서 보도하는 미국 언론을 보며 들었던 궁금증에 대한 답의 실마리도 얻을 수 있었다.


"배움의 발견"은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됐으니, 이 세상에 이 책을 읽고 감명받은 사람이 나 말고도 무척 많은 게 틀림없다. 동시에 적잖은 사람에게 이 책을 읽는 건 꽤 불편하고 괴로운 독서였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설마 이런 사람이 진짜 있을까?' 싶을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신념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묘사를 꾸역꾸역, 실은 다음 장이 궁금해 못 견딜 정도로 한달음에 읽어 내려갈 수 있던 건 역설적으로 저자가 힘을 빼고 최대한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억지로 힘을 주지 않는다. 섣불리 교훈을 정리하려고 나서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준 다음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었다고 대담에서 말한다. 그 바람이 통했을까.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결말에 관해 사람들은 저마다 달리 예단한다고 한다. 누구는 "이제 부모님과 화해했죠? 그럴 줄 알았어요."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아예 연을 끊으신 거죠? 잘하셨어요!"라고 하기도 한다고... 이거야 말로 열린 결말의 전형이랄까. 자신의 졸업사진 한 장을 제외하곤 그 어떤 사진도 없이 글로만 채운 책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 자기도 아직 찾지 못한 답을 책에 억지로 써놓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이야기에서 교훈을 끄집어내는 건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 나도 새겨둬야 할 말이다.


공교육을 악마의 기획이라고 여긴 부모 밑에서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자란 타라 웨스트오버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교육에 관한 훌륭한 통찰을 보여준다.

타라에게 배움은 말 그대로 삶의 지평을 넓혀준 기제였다. 더 좋은 학점,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정말 꿈에도 있는 줄 몰랐던 세상으로 가는 문을 교육이 열어준 것이다. 12살 때 타라가 다니던 교회—웨스트오버 가족은 독실한 몰몬교 신도였다—에서 "5년 뒤 나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타라는 이 숙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5년 뒤면 17살이잖아요. 전 당연히 결혼했을 거고, 아이도 낳았겠죠. 엄마가 하는 산파 일을 계속 배워 그때쯤이면 보조 산파가 아니라 혼자서도 아이를 받을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그게 다였어요.

그렇게 삶이란 이미 정해진 길을 밟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던 타라에게 교육은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줬다. 아버지가 경고하던 것처럼 악마의 속삭임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누군가가 끝없이 내 귓가에 길을 일러주며 나를 이끌어주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시작은 음악이었다. 친오빠 한 명이 오페라와 성가대 음악을 들려주곤 했는데, 노래를 처음 들은 7살 타라는 '날 때부터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으려면 누군가에게 배워서 열심히 연습해야 하겠구나.'라고 느꼈다. 어렴풋이 자신이 나고 자란 산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산 너머 마을에, 도시에, 학교에 무언가 배우고 경험해볼 만한 게 있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뭐를 열심히 할 만큼 좋아하는 거, 그렇다고 억지로 지어낼 수는 없는 게 있죠. 그걸 열정이라고 부른다면, 어린이의 열정은 특히 보듬고 북돋아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음악이 좋아서 대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브리검영 학부 때는 철학이 좋아서 거기 심취했고요. 그러다 보니 대학원에 가게 됐고, 가서 글쓰기를 배우고 책까지 내게 됐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무언가가 내게 어떤 기회를 열어줄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치만 좋아하는 게 없다면, 아무 데도 열정이 솟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시도조차 할 수 없겠죠.


타라가 말하는 교육은 혼자서 책을 수백 권 읽어 대단한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다른 생각에 노출되며 내가 알던 세상이 부서지고 깨지면서 넓어지고 깊어지는 과정에 가깝다. 이 과정은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매 순간 필요하다. 특히 흔히 가장 큰 버팀목인 가족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던 타라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타라는 브리검영 대학교의 몰몬교 목사님인 비숍을 비롯해 수많은 교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으로 나와 지금의 자리에 왔다.

가끔 전혀 예기치 못한 데서 도움의 손길이 오곤 해요. 우리는 사실 다른 이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데 익숙하죠. 특히 이념이나 성향의 잣대로. 어떤 사람의 단면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의 모든 걸 안다고 착각하곤 해요. 그 사람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을 분류한 잣대만으로 판단하는 건 무척 딱한 일이죠. 영영 그 사람을 모른 채 지나치는 거니까. 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기회도, 도움을 받을 기회도 없어지니까요.


잠깐 관련 있는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자면, 오늘 집 근처 우크라이나 빌리지에 있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왔다. 우크라이나 식당이 있고, 우크라이나 정교회 교회가 있어서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지도에서 보니 그 동네가 바로 우크라이나 빌리지였다. 교회 앞에선 반전 집회도 종종 열리는데, 예전에 우크라이나 명절로 추정되는 때 장이 서서 우크라이나 음식을 팔기에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발소는 아직 단골이라 하기엔 몇 번 가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해 한국에서 1년을 보내고 뉴욕에 돌아온 뒤 머리 자를 때 늘 갔던 곳이다. 미국은 사람 손이 가는 노동, 서비스가 대체로 비싸다. 머리 자르는 것도 전혀 화려하지 않은 기본 이발소에서 한 번 자르는 게 보통 $30다. 여기에 팁도 많이 주는 게 관례라 20%를 더 내면 머리 자르는 데 우리돈 4만 원이 넘는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한국에 있을 때 머리를 자르고, 한국에서 뉴욕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늘 머리를 훈련소 들어갈 때보다 조금 더 길게 자르고 오는 편이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덥수룩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예전엔 머리가 길어지면 말년 병장 같았는데, 이제는 자란 머리가 멋대로 뻗친 내 몰골을 보면 대대 주임원사처럼 보여서 슬프다. 이 또한 순리이거늘.

쑥스러워서 얀에게 같이 사진 찍자고 말을 못 했다. 그래서 이발소 인스타그램 페이지에서 사진을 하나 담아왔다. 

아무튼 오늘은 미리 예약을 하고 갔는데, 이발사 두 명 가운데 처음 보는 젊은 친구가 머리를 잘라줬다. 이름은 얀이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먼저 묻지 않고 참고 있었는데, 손님과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며 머리를 잘라주는 스타일이었다. 수다라면 환영이다. 게다가 먼저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고, 되물었다. "러시아."라는 짧은 답 뒤에 잠시 적막이 흐른다. 정확히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타지키스탄 출신인데, 자기가 갓난아이였을 때 소련이 무너지면서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 왔다고 한다.

여기서 대화가 끊겼으면 러시아 사람 한 명의 단면을 보고 얼마나 많은 오해를 했을까? 다행히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전쟁이 왜 나쁜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지 충분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머리를 자르고 있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지만, 이제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덕분에 쉴 새 없이 추임새를 넣으며 서로 맞장구를 쳤고, 거울로는 동의와 수긍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전에 여기에 썼던,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악몽에 시달리시던 우리 할머니 얘기도 해줬다. 무턱대고 러시아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서, 한 사람을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사람 그 자체를 보고 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생각해보면 우크라이나 빌리지에는 러시아 사람이 하는 식당, 이발소, 가게들이 꽤 많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두 나라는 형제의 나라가 맞으니까. 문제는 전쟁을 일으킨 쪽에 있다. 세상에 수가 틀리니 가족에게 총을 들이대는 게 과연 어느 나라의 상식이고 법도란 말인가.


자자, 다시 타라 웨스트오버 이야기로 돌아가자. 타라는 붉은 바다와 푸른 섬 양쪽에 관해 모두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생존주의자나 정부의 간섭에 저항하는 붉을 바다 사람들의 생각을 타라는 이렇게 대변한다.

당신이 보스턴—푸른 섬—에 산다고 쳐봅시다. 정부가 당신에게 해주는 걸 매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요. 길을 내고 학교를 짓고 아프면 병원 치료를 받게 보험료도 지원해주고. 제가 자란 곳에서는 그런 거 전혀 없죠. 도로는 곳곳이 움푹 파였지만 원래 그랬던 것처럼 수리되지 않아요. 학교는 너무 멀고 선생님들도 열의가 없죠. 교사들에 대한 처우를 생각하면 그걸 나무랄 수도 없어요.
시골—붉은 바다—에선 정부와 얽히는 경험이 온통 부정적인 것뿐이에요. 철 지난 농업 지원제도를 들이밀며 쓸모없는 경작법을 알려주거나 과속 딱지를 떼는 경찰 같은 게 전부죠. 그렇다고 정부를 혐오하는 건 좀 지나칠지 모르지만, 적어도 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힘든 환경이에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도움이란 걸 받을 수가 있구나 느낀 건 대학교 다닐 때 정부 장학금을 받았을 때였어요.


꼭 전하고 싶었던 인터뷰 내용 하나만 더 적고 글이 더 길어지기 전에 마무리하려 한다.

[푸른 섬] 사람들과 [붉은 바다] 사람들은 상대방에 관해 터무니없이 오해하고 있어요. 뉴욕 친구들이 "답 없는 트럼프 지지자들"이라며 시골 사람들을 한데 묶어 비난할 때 제 반응은 늘 같아요. "도대체 그런 사람이 시골 어디에 있디?"
그런데 집에 가면 또 같은 말을 하게 돼요. "아냐, 지금 엄마가 말하는 그런 이상한 사람 뉴욕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에 한 명도 없어. 다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야."라고요.
남을 설득하는 일, 생각을 바꾸는 기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어요. 제가 언젠가부터 생각을 완전히 고쳐 먹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성찰의 과정이었죠.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누군가를 나무라고 꾸짖어서는 절대로 그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거예요. 당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 사람을 설득하려면 뭐부터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처지에 공감하는 게 먼저겠죠. 그 과정이 없으면 절대로 설득에 필요한 공통분모를 찾지 못할 테니까요.


붉은 바다 해구 출신인 타라가 '배운 사람'이 되고 나서 새파란 섬에 살면서 교육과 배움에 관해 보여준 통찰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 통찰은 한국과 미국의 정치 성향을 보수, 진보라는 틀로 분류할 때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던 불편함, 또 다소 '갑툭튀'인 리버럴은 도대체 무엇인지에 관한 의문에 답을 준다. 그에 대한 해설은 다음번에...

 배움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배움이 어떤 특정 행위를 지칭하기보다는 계속 궁금한 걸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지식을 빠짐없이 나열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 '배운 사람'일까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제 기준에서 '배운 사람'은 생각이 유연한 사람이에요. 끝없이 자기가 가진 편견을 검증하고 바로잡으려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배운 사람'이죠.
 배움이란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나와 자란 환경이, 처한 환경이 달라서 생각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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