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지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오늘은 자세히 설명한 적도 없으면서 자꾸 마치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것처럼 불쑥 꺼내곤 했던 "붉은 바다, 푸른 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앞으로도 자주 우리고 또 우려낼 진한 사골 같은 소재가 될 것이다. 그때마다 어렸을 때 사회과부도 부록을 찾아보거나 게임 공략집 훑어보던 마음으로 이 글을 찾거나 떠올려주시면 되겠다.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음 지도를 보면 단번에 무얼 묘사했는지 곧바로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20년 미국 대선 결과를 투표소별로 집계해 자세히 그린 지도다. 미국 본토와 떨어진 두 주 알래스카(AK), 하와이(HI)는 제외했다. 사실 알래스카는 늘 공화당이니까 붉은색, 하와이는 늘 민주당이니까 푸른색이다. 뉴욕타임스가 데이터를 시각화해 만든 지도인데, 빈칸으로 돼 있는 지역은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한 주들이다. 모든 투표소의 데이터를 구할 수 있던 2016년 지도(아래)를 보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공화당이 이긴 곳은 붉은색, 민주당이 이긴 곳은 푸른색으로 지도를 칠해놓고 보면, "붉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푸른 섬들"처럼 보인다.
2020년 미국 대선은 전체 득표와 선거인단 득표에서 모두 조 바이든이 이겼다. 지금껏 250년 가까이 4년마다 한 번씩 꼬박꼬박 대통령 선거를 해온 미국에서 전체 득표와 선거인단 득표 결과가 달랐던 선거는 딱 5번 있었다. 그 가운데 세 번은 19세기에 있던 일이라 너무 까마득하다. 나머지 두 번이 최근에 있었는데, 2000년과 2016년 대통령 선거가 그랬다. 주 단위로 투표 결과를 집계해 한 표라도 더 받은 후보가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상원 의석수 + 하원 의석수)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 제도 때문에 이런 일이 드물게나마 일어나는데, 자세한 설명은 아메리카노 팟캐스트를 참조하시면 된다. 선거인단에 대해 설명하는 에피소드를 녹음할 때는 집에서 싸구려 마이크에다 대고 녹음한 탓에 음질이 들어주기 불편한 수준이다. 링크를 진짜 눌러서 동굴에서 대화를 나눈 듯한 초창기 아메리카노를 들어주시는 고마운 분들께는 미리 음질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2016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보다 전체 유권자의 표를 300만 표 가까이 더 받았다. 그런데 보다시피 지도 속 미국은 온통 빨갛다. 인구밀도를 고려하지 않고 그린 지도라서 그렇다. 서울 면적의 8배가 되는 강원도 속초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선거구에 국회의원이 1명인 것과 비슷하다. 서울의 지역구 의원 정수는 48명이니 서울이 강원도 해당 지역보다 인구밀도가 약 380배 높은 셈이다. 땅덩어리가 워낙 큰 미국의 인구밀도도 마찬가지로 도시와 시골이 다르고, 주마다, 지역마다 차이도 크다.
미시간대학교 물리학과의 마크 뉴만 교수가 그린 지도는 이런 착시를 제거해준다. 워싱턴포스트가 이에 관해 쓴 기사의 설명을 빌리면 (인구 밀도가 반영된) 선거인단 수에 따라 다시 그린 지도가 선거 결과를 한눈에 보기에는 훨씬 더 직관적이다.
끝내 자기가 진 2020년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트럼프는 초유의 의사당 점거 테러를 사실상 방조한 뒤 밉든 곱든 후임자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전통을 내팽개치고, '트럼프답게' 백악관을 떠났다. 아마도 트럼프는 위의 지도, 그러니까 미국 대부분이 새빨간 지도만 보고 ‘내가 졌을 리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남긴 촌평처럼 “투표는 땅이 하는 게 아니라 거기 사는 사람들이 하는 거다.”
다시 원래 지도로 돌아가 보자. 거칠게 요약하면 인구밀도 높은 도시 사람들은 민주당을,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공화당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선거에서는 이런 양극화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아시아계 미국인은 대다수가 도시에 산다. 또 한국 사람들 중에 미국에 있는 친척들이 사는 곳, 미국 가봤다는 친구가 가서 본 곳들도 열에 아홉, 아니 옐로스톤 국립공원 같은 자연경관 보러 갈 때를 빼면 백에 아흔아홉이 도시다.
여기서 도시의 기준은 인구 5만 명이다. 한국에선 인구 5만 명이면 도시라고 부르기에 사람이 너무 적지만, 미국에는 인구가 몇백 명에 불과한 마을도 정말 많다. 한국 유학생이 많은 큰 대학교가 있는 도시는 대개 공화당이 우세한 주(붉은 바다)에 있더라도 민주당이 우세한 곳(푸른 섬)이다. 즉 우리가 주변에서 (건너) 듣는 미국은 민주당을 찍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일 가능성이 크다. 바꿔 말하면, 트럼프를 찍은 사람은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곳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도를 뒤덮은 붉은 바다는 어쩌면 우리에겐 달의 뒷면처럼 제대로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지난 11년간 나는 미국에서 4군데 다른 곳에 살았다.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89%), 버지니아주 샬로츠빌(75%), 테네시주 내쉬빌(62%), 뉴욕주 뉴욕(89%). 괄호 안의 숫자는 내가 살던 집이 속한 투표소에서 나온 2016년 클린턴 후보의 득표율이다. (2020년 선거는 버지니아주 결과가 없어서 2016년으로 통일했다)
대표적인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s, 민주당 지지가 높은 주)인 뉴욕과 매사추세츠에서도 특히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집중적으로 포진한 뉴욕시, 하버드대학교가 있는 캠브리지시에서의 표 쏠림 현상은 놀랍지 않다. 아내와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뉴욕이나 보스턴 사는 새는 왼쪽 날개만 있어도 잘만 나나 봐.”
그러나 대표적인 레드 스테이트(Red States, 공화당 지지가 높은 주)인 테네시주에서도 내가 살았던 내쉬빌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이변이 없는 한 안정적으로 과반을 득표하는 곳이다. 하원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 (내쉬빌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로 한 석만 주고 주변 지역을 석권하려는 공화당의 제리맨더링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물론 내쉬빌에서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 보면, 집집이 마당에 세워둔 지지 후보 팻말에 트럼프가 클린턴이나 바이든을 압도하는 동네들이 나온다. 거기서 또 차를 타고 한 15분 정도 더 가면 남부 전통 비스킷을 파는 유명한 가게가 있다. 한 번은 그 가게에 갔다가 아마도 아시아 사람을 처음 본 것으로 보이는 백인 어린이 남매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내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해서 무안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붉은 바다 테네시주에는 파란 섬이 세 군데 있는데, 하나가 주도인 내쉬빌, 또 하나는 블루스와 BBQ로 유명한 멤피스, 그리고 가장 큰 주립대학교가 있는 녹스빌이다. 테네시주의 도시 이름이나 지명을 들어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많지는 않겠지만, 아마 있다면 대부분 저 세 도시와 관련된 이름이 대부분일 것이다.
샬롯츠빌의 투표 결과도 놀랍다.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명인 토마스 제퍼슨이 살았던 샬롯츠빌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주립대 가운데 하나인 버지니아대학교(UVA, University of Virginia)가 있다. 학생들을 제외하고, 주소지가 샬롯츠빌로 돼 있는 인구만 따지면 5만 명 남짓한 작은 도시다. (미성년자를 제외하면 유권자는 더 적다.) 밤길에 운전할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슴을 조심해야 하고, 집 앞에 둔 쓰레기통을 뒤지는 동물이 길고양이인가 하고 보면 여우나 코요테인데도 샬롯츠빌은 엄연히 도시다. 높은 민주당 지지율이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트럼프를 뽑기엔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나 할까? 트럼프 임기 중에 샬롯츠빌은 KKK 같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과 극우 테러리스트들이 총기와 횃불을 들고 무력시위를 벌인 집결 장소로 선택받기도 했다. 남북전쟁 때 노예제를 찬성한 남부주를 진두지휘한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의 동상이 샬롯츠빌 다운타운에 버젓이 서있었는데, 극우 성향 인종주의자들은 2017년 횃불집회 때 리 장군 동상을 구심점으로 삼아 모였다. 동상은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을 계기로 촉발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M) 시위의 파고를 버티지 못하고 철거됐다.
언론에 등장하는 지명들도 대부분 뉴욕타임스 지도에서 보면 파란 점으로 보이는 도시다. 프로 스포츠 팀의 홈구장이 있거나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곳도 거의 다 도시다. 그러니까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 있어도 “거기 아마 빨간 망망대해에 떠 있는 파란 섬일 걸?”이라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저 지도를 보여주면, 어디 가서 ‘미국 정치 도사’ 행세를 할 수 있다. 내가 살아보진 못했지만, 가본 적이 있거나 언론에 등장하는 곳 몇 군데만 더 살펴보자. 네브라스카주 링컨, 텍사스주 알링턴,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코넬리우스다.
나는 여자배구 팬이다.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라는 국가대표 팀들이 겨루는 대회가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국제대회가 취소되기 전인 2019년에는 예전 ‘월드리그’와 비슷한 VNL이 열렸다. 16개국 대표팀이 전 세계를 돌며 풀리그를 치르는 일정인데, 선수들은 힘들지만, 전 세계 배구 팬들에겐 김연경 선수 같은 슈퍼스타를 직관 가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배구가 축구나 농구처럼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세계배구연맹에 돈이 없던 모양이다. 뉴욕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경기를 치르면 대관료 등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지방 소도시에서 경기를 치러달라고 각국 협회에 부탁했다. 방방곡곡의 배구 열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며. 그래서 우리나라도 2019년 VNL 대회를 서울이나 대전이 아닌 충남 보령에서 치렀는데, 2019 VNL 미국 시리즈가 열린 도시가 바로 네브라스카주의 주도 링컨이었다.
미국에 오는 팀 가운데 대한민국 대표팀이 있었다. 여자배구 팬으로서, 내가 사는 나라에 경기하러 오는 ‘국대즈’를 보러 가는 건 당연한 도리였다. 일정을 확인하고, 개최지를 찾아봤다. 어라? 어디지? 네브라스카주가 어디에 있는지 그때 미국 지도를 펼쳐놓고 처음 알았다.
‘네브라스카? 워런 버핏을 부르는 ‘오마하의 현인'에서 그 오마하(Omaha)가 네브라스카에 있는 거 아닌가?’
다행히 유일하게 쥐어짜 낸 지식 한 줄은 사실이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의장, 투자의 귀재, 가치투자로 유명한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사는 오마하가 네브라스카에 있었다. 그런데 그거 말곤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워런 버핏이 사는 곳으로 잘 알려진 오마하를 꺾은(?) 네브라스카주의 주도가 바로 VNL 대회가 열리는 링컨이었다. 그런데 링컨까지는 뉴욕에서 가는 비행기 직항 노선도 없었다. 세상에.
샬롯츠빌 공항에도 뉴욕 직항은 있었다. 공항 터미널 건물이 예전에 친구 훈련소 보내줄 때 갔던 논산 시외버스 터미널만큼 아담했지만, 6개밖에 안 되는 게이트 중 2개가 뉴욕을 오가는 비행기 전용이었다. 그런데 링컨에 가려면 뉴욕에서 오마하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들어가야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청 소재지인데, 서울에서 가는 직통 버스가 없는 도시라고 할까? 다행히 링컨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미국 치고는 바로 옆 동네라 할 수 있는 아이오와에서 유학 중인 스포츠팬 후배와 시간이 맞아서 사흘 동안 국가대표팀 경기를 세 경기 다 잘 보고 돌아올 수 있었다.
배구 얘기는 그만하고, 그렇게 외딴 동네였던 네브라스카주 링컨에서 2016년에 트럼프와 클린턴이 몇 표씩 얻었는지 결과를 보자. 네브라스카주 전체는 아주 빨간데, 주 전체에 섬이 두 개 있다. 하나가 오마하, 다른 하나가 링컨이다. 사람도 많고,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 더 크고 짙푸른 오마하가 울릉도라면, 링컨은 그보다 작고 옅은 하늘색을 띤 독도 같다. 네브라스카주 전체로 보면 트럼프 후보가 56%의 지지를 얻어 손쉽게 클린턴 후보를 꺾었는데, VNL 경기가 열린 체육관이 있는 링컨의 투표소에서는 반대로 클린턴 후보가 56%의 지지를 받았다. 링컨도 엄연한 도시였다.
이번에는 추신수 선수가 활약했던 메이저리그 야구팀 텍사스 레인저스 홈구장이 있는 텍사스주 알링턴이다. 텍사스 하면 흔히들 카우보이를 떠올리고, 텍사스 중질유와 석유와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을 떠올린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가문을 생각하며 보수적인 공화당이 득세하는 전형적인 남부 주를 연상한다. 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아주 정확한 설명도 아니다. 당장 댈러스와 포트워스라는 대도시 사이에 있는 알링턴도 보수적인 텍사스 빨간 바다에 떠 있는 파란 섬이기 때문이다. 텍사스 레인저스 홈구장 글로브 라이프 파크가 있는 곳의 투표소에서 클린턴 후보는 68%의 지지를 얻었다. 텍사스주 전체에선 43.2%를 받아 트럼프 후보(52.2%)에게 패했지만, 주요 도시들은 이렇게 전부 다 클린턴 후보와 민주당을 찍었다. 멕시코 접경 지역에 라티노가 많은 지역에서도 클린턴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데가 많은데, 이는 도시와 시골의 차이라기보다 트럼프 후보의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 라티노를 범죄자 취급한 태도 때문으로 보인다.
텍사스는 땅덩어리도 넓고 인구도 많아 선거인단이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많다. 2010년 인구총조사 결과 캘리포니아의 선거인단 수가 55, 텍사스는 38이었는데, 2020년 인구총조사 결과 캘리포니아는 하원 의석 한 석을 잃어 선거인단 54명이 됐고, 텍사스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하원 의석 두 석을 얻으며 선거인단 40명을 갖게 됐다. (인구가 10년 사이 400만 명이나 늘어난 결과다.) 주마다 누가 이겼는지만 보면, 텍사스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의 득표율 차이가 5%P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기 쉽다. 또 주도인 오스틴(Austin)을 포함해 휴스턴(Houston), 댈러스(Dallas), 샌안토니오(San Antonio), 엘 파소(El Paso) 등 흔히 프로스포츠 팀이 있는 주요 도시는 전부 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 푸른색이 선명한 섬들이다. 네브라스카의 오마하, 링컨이 울릉도, 독도라면, 텍사스의 파란 섬들은 거제도나 강화도, 아니면 제주도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인구가 많은 대도시들이다. 라티노 인구와 젊은 유권자들이 계속 늘어나면 이 섬들이 점점 더 커져서 텍사스도 머지않아 민주당이 과반을 득표하는 블루 스테이트가 될 거란 전망도 있다. (2020년 선거를 앞두고는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가 너무 없어서 바이든이 텍사스마저 이기는 거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코넬리우스라는 작은 도시다. 이 도시를 고른 이유는 '농알못'인 나도 국뽕으로 농구 보게 만드는 데이빗슨 칼리지 농구팀의 에이스 이현중 선수 때문이다. 레드 스테이트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가 샬롯(Charlotte)은 새파란 섬인데, 데이빗슨 칼리지는 샬롯 외곽에 인구 3만이 조금 넘는 코넬리우스라는 도시에 있다. 코넬리우스는 샬롯을 중심으로 한 파란 섬의 끝자락에 있는 해안 마을 같다.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붉은 바다가 시작된다. 지도에 학교 이름이나 도시 이름을 치면 동네를 줌인해서 투표소 단위로 표심을 보여준다. 독자 여러분도 심심할 때 미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 친구가 산다는 동네를 검색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실 수도 있다.
이처럼 미국 어디를 살펴보더라도 “붉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푸른 섬들”이 참 많다. 미국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을 때 꼭 기억해야 할 특징이다. 나도 그렇고 우리는 미국을 어느 정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파란 섬만 알고 붉은 바다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는 채로 미국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붉은 바닷물이 푸른 섬들을 집어삼킨 2016년 선거 결과가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것도 어쩌면 반쪽에 그친 이해 탓일지 모른다. 트럼프는 2020년에도 이를 재현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듯 지난 선거에선 빨간 바다의 수위가 낮아져 파란 섬들이 더 파랗게 빛났다. 그 말은 2024년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뜻이다.
레드 스테이트 텍사스에서도 민주당이 40% 넘게 득표하고, 블루 스테이트 매사추세츠에서도 공화당이 40% 넘게 득표하니, 미국을 붉은 바다, 푸른 섬으로 나누는 것보다 보랏빛 미국으로 그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붉은 바다와 푸른 섬들은 투표 성향뿐 아니라 수많은 점에서 달라졌고, 다르며, 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 접했던 미국뿐 아니라 미국에 와서 10년 넘게 살면서 내가 접한 미국조차 한쪽에 편중된 반쪽의 모습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 붉은 바다 출신 지인의 인터뷰를 소개해볼 생각이다. "배움의 발견"의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의 고향 클리프톤(Clifton)이란 마을은 붉은 바다 한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