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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Feb 25. 2022

지구 반대편의 전쟁

붉은 바다와 푸른 섬 이야기를 쓰고 나니 글 쓰는 데 탄력이 붙었다. 이튿날 사족이 잔뜩 달린 다음번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저러다 말았으면 좋겠다던 막연한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전쟁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거다. 그래서 호전광()이라는 단어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전쟁이 싫은 이유,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글을 쓰던 내가 하찮은 이유를 하나 더 보태자면 전쟁은 다른 이야기들을 모두 압도해버리기 때문이다. 소소한 이야기부터 평소였다면 중요한 이야기들도 전쟁이 주는 무게감에 묵살당하기 일쑤다. 수천, 수만 명이 죽어가는데 다른 이야기를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한가해 보이기 때문이다. 붉은 바다, 푸른 섬, 정치적 양극화, 불평등 다 중요한 이야기라고 믿고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전쟁은 그 모든 걸 집어삼켜버렸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진영논리에 이골이 난 사람을 많이 봤는데, 전쟁은 대화에 참여하는 모든 화자에게 어느 편에 설지를 강요한다. 실제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물리적인 폭력에 비하면 직접적인 피해가 덜할지 모르지만,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비난하는 게 좀 더 쉽게 용인되는 폭력의 일상화도 전쟁의 부수적인 나쁜 효과에 들 것 같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잘 모르니까 열심히 찾아보고 확인해가면서 조심스럽게 글을 쓰는데, 그러면서 아무 생각 없는 이들이 마구 내뱉는 말들을 보면 기가 차고 열불이 터진다.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정치인들은 트럼프 같은 강력한 대통령이었다면 전쟁을 막았을 거라고 이 와중에도 트럼프에게 구애하기 바쁘다. 정작 트럼프 본인은 푸틴을 '천재'라고 치켜세웠다. 더는 찾아보고 싶지도 않다.


실은 오늘 영사관에 가서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고 왔다. 어쨌든 시민의 권리를 행사한 뿌듯한 날이어야 하는데, 온종일 알 수 없는 무기력감에 휩싸여 있던 탓에 투표하고 왔는데도 그냥 덤덤하다.

뉴욕 지하철의 코로나19 마스크 착용 권고 광고: "마스크는 의견과 같다. 누구나 다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투표를 하고 오후에 시간을 내서 아내와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노이 갤러리(Neue Galerie)에 다녀왔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를 비롯해 현대 독일,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 미술관이다. 미술 전반에 문외한인 나마저 사로잡는 작품을 여러 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작품 자체보다도 인상 깊었던 사실은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비롯한 작품들을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경위였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했을 때 강탈했던 작품들인데, 전쟁범죄자로부터 미술품을 돌려받는 소송을 벌인 끝에 다시 원래 주인의 후손이 미술품을 되찾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사진=노이어 갤러리

지난해 국외소재 문화재재단과 함께 약탈 문화재 관련 외신 기사들을 번역, 정리한 적이 있다. 세계 2차 대전의 주요 승전국과 패전국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쟁 전에는 전 세계를 약탈하고 다닌 제국주의 열강이었다는 점이다. 패전국인 독일, 이탈리아가 훔치고 빼앗은 문화재들은 그나마 일부 환수가 됐는데,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이 가지고 있는 약탈 문화재는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는 것도 엄청 많았다. 

대영제국이 자랑스럽게 붙인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은 영국군과 자본이 365일 24시간 쉴 새 없이 어딘가를 약탈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번역한 기사 가운데 알자지라가 쓴 "영국은 어떻게 아프리카의 미술품을 약탈했나(Stealing Africa: How Britain looted the continent’s art)"라는 장문의 기사가 있다. 기사에 인용된 막스 셜룬이란 역사학자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언급한다.

승자의 관점에서 서술한 이야기만 가지고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척 위험하다. 이에 관련해 새겨둘 만한 속담이 있다. '사냥 이야기는 언제나 사냥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하지만 똑같은 사건을 사냥감이었던 사자가 들려준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냉전 시절 소련을 그리워한다는 푸틴은 승전국에 해당하는 미국과 나토가 보여온 이중잣대와 위선이 싫었던 걸까? 미국이 20년 전에 이라크에서 자행한 일을 거의 '복붙'하고 있는 셈이니, 결국은 승자가 돼 역사를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더라도 '한 몸과도 같은 형제의 나라'라는 우크라이나를 힘으로 굴복시키겠다는 주장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형제의 나라 국민 수만 명이 죽을 수도 있는 전쟁을 기어이 벌이는 자는 그냥 전쟁에 미친 미치광이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삶과 죽음의 경계로 내던져졌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우크라이나는 잘 와닿지 않는 먼 나라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70년 전 한반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결국 일어나버린 전쟁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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