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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r 01. 2024

미국 대선은 간접선거다?

선거인단을 이해하면 미국 대선이 보인다

세상에 똑같은 선거 제도는 없다. 모든 제도란 그 제도가 형성된 배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수입해 이식한 경우에도 제도는 그 나라와 사회의 구조와 배경에 적응해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곤 한다. 같은 품종의 포도라도 어느 밭뙈기에 심느냐, 그해 날씨가 어떻냐에 따라 작황이 같을 수 없어 와인 맛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은 한국처럼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의 수장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두 나라의 대통령제는 권력 구조부터 선거 방식까지 많은 게 다르다. 권력 구조를 제대로 다루려면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특징부터 살펴봐야 하는데, 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선거 제도에 관해 먼저 알아보자.


간접선거? 직접선거?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간접선거인가? 아니면 (우리와 같은) 직접선거인가? 아메리카노에서는 늘 이렇게 설명해 왔다.

미국 유권자들도 투표하러 가서 직접 대통령을 뽑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간접선거라고 부르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정치와 선거에 관한 다른 설명들을 보면, 대부분 "미국 대선은 간접선거"라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은 설명을 찾기 어렵다. 위키피디아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먼저 선거를 한 뒤 결과에 따라 할당받는 선거인단이 다시 선거를 하는 일명 복식 투표이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은 (대통령이 아닌) 선거인단을 뽑고, 그렇게 뽑힌 선거인단이 다시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미국 대선은 간접선거"라는 설명이다. 논리적으로는 이 설명이 맞다. 그런데도 미국 대선을 간접선거로 분류하기 어려운 이유는 미국의 대통령 선출 방식이 우리가 흔히 아는 간접선거 절차와도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간접선거는 말 그대로 유권자가 지도자를 직접 뽑지 않고, 유권자가 뽑은 누군가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짙은 암흑기였던 유신 체제하의 대통령 선출 방식이 대표적이다. 1971년 직선제로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가까스로 승리한 박정희는 유신 헌법을 강행 처리하고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는데, 선거 제도를 간선제로 바꿨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뽑고, 그 대의원이 대통령을 뽑는 방식이었다. 다만 대의원의 1/3은 정권이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임명한 다음 거수기로 쓸 수 있었고, 투표로 뽑는 대의원 2/3 가운데 절반을 여당인 공화당이 차지할 수 있도록 사실상 보장해 놓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역대 선거 제도 가운데 가장 민주적이지 않은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독재 정권이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선거 제도를 뒤튼 결과가 간선제였으므로, 한국 민주화 운동의 핵심적인 요구는 대통령 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돌려놓으라는 요구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직선제가 민주적인 제도이고 좋은 것, 반대로 간선제는 비민주적이고 나쁜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연방제 국가인 독일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치러 의회를 꾸린다. 행정부 수반인 총리는 의회가 뽑는데, 원내 과반을 차지한 당의 당수가 총리로 선출되거나 (다당제 국가인 독일에선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려우므로) 정당 간의 연립을 통해 과반을 꾸린 다수 연정의 지도자(보통 제1당의 당수)가 총리로 선출된다. 독일 국민은 선거에서 지역구 선거에 출마한 후보와 지지하는 정당에 각각 표를 던진다. 총리 후보에게 직접 표를 던지는 절차는 없다. 그래서 간접선거지만, 독일의 선거 제도를 비민주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유권자들은 독일과 달리 투표에서 대통령 후보에게 직접 투표한다. 절차상 대통령을 따로 뽑는 선거인단은 유권자들의 뜻에 따라 꾸려진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선거 전에 주별로 자기 후보가 더 많은 표를 받아 승리하면 선거인단으로 누구를 지정할지 명단을 제출한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면 민주당에서 제출한 명단으로 선거인단이 꾸려져 이듬해 1월 6일에 이 사람들이 워싱턴 D.C. 의사당에 가서 투표하고, 반대로 공화당 후보가 이기면 공화당 선거인단이 그 주를 대표하게 된다. 선거인단이 유권자의 뜻을 거스르고 다른 후보에 표를 던지지 못하게 한 장치를 법으로 마련해놓은 주도 있고, 관습에 따라 사후에 처벌하는 주도 있지만, 유권자의 뜻과 다른 표를 던지는 선거인단은 매우 드물다.

사진=게티이미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폭도로 변해 의사당을 점거한 의사당 테러가 일어난 1월 6일은 그냥 아무 날이 아니다. 주별로 선출된 선거인단이 대통령 선거 결과를 확정하는 날이다. 유권자들이 (선거인단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한 결과가 다 집계된 뒤에 진행하는 선거인단의 투표는 2021년 전까지는 큰 주목을 받는 날이 아니었다.

즉, 이 논란은 간접선거과 직접선거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의 문제, 즉 정의하기 나름의 문제다. 둘 중 하나가 더 민주적이라거나 더 좋은 제도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민주화 이전 한국의 독재 정권을 떠올리며 간선제를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간선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유권자들의 뜻을 왜곡해 여당에 유리하게 투표 결과를 바꿀 수 있게 만들어놓은 선출 방식에 있지, 간선제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민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정하게 반영하는 선거 제도이냐는 제도의 세부 사항이 작동하는 방식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문제인 만큼 미국만의 독특한 표 집계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선거인단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을 뽑는 절차에서 미국과 한국이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의 유무일 거다. 아메리카노를 제외한 많은 전문가가 미국 대선을 간접선거로 규정한 이유도 선거인단에 있다. 간접선거의 정의를 다시 써보면 이렇다.

간접선거는 말 그대로 유권자가 지도자를 직접 뽑지 않고, 유권자가 뽑은 누군가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 

유권자가 지도자에게 직접 표를 던진다는 면에서 보면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직접선거지만, 유권자가 뽑은 누군가가 다시 지도자를 뽑는다는 측면에선 간접선거인 셈이다. 현실적으로 선거가 진행되는 방식을 고려하면,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직접선거나 다름없는 간접선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선 유권자에게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아니라 선거인단 과반의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부분 유권자 전체 득표에서 앞선 후보가 선거인단도 더 많이 확보하기 마련이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긴다. (바로 그 예외적인 상황이 2016년에 극적으로 발생하면서 선거인단 제도가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선거인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건국 초기 미국에서 실제로 직선제와 간선제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선거인단은 직선제와 간선제 사이의 중재안으로 도입된 제도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한 것이 1776년, 헌법을 제정한 것이 1787년, 새 헌법에 따라 선출된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것이 1789년이다. 이후 군주가 아니라 임기를 정해 둔 연방제 국가 미국의 대통령을 어떻게 뽑을지를 두고 미국은 치열한 논쟁과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아직 노예제가 버젓이 존재했고,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기까지는 거의 한 세기 반을 기다려야 할 만큼 옛날이야기다. 전제군주나 왕의 압제(tyranny)가 아니라 시민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정치 지도자를 뽑아야 했던 건국 초기 미국은 자격을 갖춘 시민(대부분 백인 남성 성인)의 뜻을 모으는 과정으로 선거를 기획했다. (오늘날에는 유권자가 직접 정치 지도자를 뽑는 게 당연하지만, 18세기 말에 전 세계에 그런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동시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 정치 제도의 근간으로 삼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을 경계했으며, 특히 파당(faction)이 특정 지역이나 주 선거를 장악해 시민들의 뜻을 왜곡, 중우정이 출현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시민들의 표를 직접 합산하는 대신 정치 과정을 더 잘 아는 "선거인단"이 시민들의 뜻을 한 차례 걸러 투표하는 제도를 고안했다.


* 선거인단의 기원, 제도의 작동 방식에 관해선 아메리카노와 언더스코어가 함께 만든 영상을 참조하세요!


미국의 선거인단은 538명이다. 538명을 나누는 계산식은 간단하다. 주별로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의석수를 더하면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수를 알 수 있다. 미국 상원 의석은 총 100석이고, 50개 주에서 각각 2명씩 상원의원을 뽑는다. 하원 의석은 435석인데, 인구에 비례해 의석이 배정된다.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는 하원 의석이 52석, 인구가 적은 와이오밍이나 델라웨어는 하원 의석이 1석이다. 그럼, 캘리포니아의 선거인단은 54명, 와이오밍이나 델라웨어는 3명이 된다. 상, 하원 의석을 더한 535명에 의회에 대표자를 보내진 않는 특별시 워싱턴 D.C. 주민들도 대통령 선거에서는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인구가 가장 적은 주와 같은 수의 선거인단 3명을 배정받아 총 선거인단이 538명이다. (그래서 워싱턴 D.C.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이라고 쓰여 있다. "대표자를 의회에 보내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지만, 납세의 의무는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선거인단의 투표 절차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승자독식(winner takes it all)"이다. 사실 선거인단이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에 관해선 헌법에 아무것도 언급돼 있지 않다. 선거 국면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싶던 주들이 선거에 끼치는 영향력을 극대화하고자 "우리 주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이 받는 후보가 우리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확보한다"는 방식을 채택했고, 이게 관습으로 굳어졌다. 

자연히 후보들은 한쪽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뚜렷해 뚜껑을 열어볼 필요도 없는 주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대신 조금만 더 공을 들이고 품을 팔면 승리할 수 있는, 반대로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빼앗길 수 있는 주들에 자원을 집중한다. 

내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는 민주당 성향이 확실한 주(Blue States)다. 하루 종일 TV를 틀어놓고 있어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어디에도 대통령 후보 정치 광고는 거의 없다. 대신 차를 타고 40분만 가면 나오는 필라델피아가 있는 펜실배니아주는 대표적인 경합주(Swing State)로, 트럼프와 바이든이 치열하게 맞붙는 격전지다. 선거인단도 19명이나 배정된 큰 주인 펜실배니아의 선거 결과는 이번 대선의 향배를 가를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하다. 필라델피아에 가서 카페에 잠깐 들렀는데, 바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앱에 온갖 정치 광고가 떴다. 경합주와 선거인단, 승자독식의 원리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펜실배니아 사람들은 올해 내내 이런 정치 광고에 끝없이 노출될 것이다. 


올해 대선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바쁘신 분들은 지금 여기서 짚어드리는 6개 경합주가 어디인지만 기억하고 주목하시면 된다. 

펜실배니아(PA), 조지아(GA), 미시건(MI), 애리조나(AR), 위스콘신(WI), 네바다(NV)다. 

이 가운데 네바다를 제외한 다섯 개 주는 2016년에 트럼프가 승리했지만, 2020년에 바이든이 빼앗아 온 주다. 6개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더하면 77명. 538명의 과반인 270명만 확보하면 이기는 선거인단 싸움에서 77명은 절대적인 숫자다. 나머지 44개 주와 워싱턴 D.C.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므로, 위의 6개 경합주 가운데 세 군데 이상을 승리하는 후보가 2024년 대선의 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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