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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Apr 11. 2024

올해의 밈 주식은 트럼프의 SNS 트루스 소셜?

지난 3월 마지막 주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여러모로 기분 좋은 날들이었다. 우선 뉴욕주 항소법원이 트럼프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금융사기 재판의 판결에 항소하기 위해 내야 하는 공탁금의 규모를 기존 4억 5,400만 달러에서 1억 7,500만 달러로 대폭 줄여주기로 했다.

앞서 뉴욕주 레티샤 제임스(Letitia James) 법무장관(이자 검찰총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동안 (뉴욕에서) 사업을 하면서 상습적으로 금융사기를 저질렀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회사 주요 임원들을 고소했다. 트럼프가 세금을 낼 때는 손해를 부풀리거나 자산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내야 하는 액수보다 덜 냈고, 반대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을 때는 자산을 부풀려 이자 우대를 받거나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냈다. 법원은 이런 식으로 취한 부당 이득이 매우 크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트럼프에게 3억 5,500만 달러를 벌금으로 내라고 판결했다. (여기에 그동안의 이자를 계상해 트럼프가 내야 하는 돈은 4억 5,400만 달러가 됐다.) 우리돈으로 6천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트럼프는 모든 종류의 검찰 수사를 자신을 향한 마녀사냥으로 규정해 왔다. 특히 자신의 돈, 재산, 성공한 사업가라는 이미지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이번 판결에는 격렬한 적개심을 드러냈는데, 레티샤 제임스 법무장관, 또 사건의 주심 판사인 아서 엔고론(Arthur Engoron) 판사를 향해 모욕과 폭언을 멈추지 않자, 법원이 따로 사법부를 공격하지 못하게 트럼프에게 함구령(gag order)을 내리기도 했다.


아메리카노 뉴스 해설: 9화: '올해의 밈 주식'은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


트럼프는 1심 재판이 나오자마자 항소할 뜻을 밝혔다. 다만 이런 민사 재판에서는 하고 싶다고 자동으로 항소가 진행되는 게 아니다. 항소법원이 이를 각하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민사 사건 항소를 진행하는 데는 선결 조건이 있다. 앞선 판결에서 선고된 벌금이나 배상금을 법원이 인정하는 금융기관 또는 장소에 맡겨놓아야 한다. 공탁금을 내(거나 보증인을 찾)지 못하면 항소 신청 자체가 무효가 된다.

아무리 트럼프가 대단한 부자라고 해도 4억 5천만 달러 넘는 돈을 쉽게 마련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는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이고, 이를 현금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트럼프는 이미 자금 사정이 쪼들리는 상황이다. 온갖 형사 재판에 드는 변호사 비용부터 만만찮다. (선거자금 가운데 슈퍼팩이 낸 돈의 상당 부분은 변호사 비용으로 쓰이는 거로 알려졌다.) 또 금융사기 재판 전에 이진 캐럴(E. Jean Carroll)을 과거에 성폭행하고 이를 부인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 비방한 명예훼손 혐의로 8,33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있어 여기에도 공탁금을 내놓았다. 설상가상으로 선거자금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잘 모이지 않는다. (지난달에 니키 헤일리 후보가 사퇴하면서 마침내 공화당 후보 자리를 굳히고 나서 선거자금 모금이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총액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모금에 많이 못 미친다.)

그런 상황에서 법원이 공탁금을 줄여주기로 한 건 트럼프에게 분명 반가운 소식이었다. 6천억 원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시급히 마련하지 못한다고 항소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트럼프 측의 주장을 항소법원이 들어줬다. 이어 지난 1일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나이트 특수보험회사(Knight Specialty Insurance Company)라는 회사가 공탁금을 내주기로 했다. 트럼프에게 보증을 서준 셈이다.

공개기업이 아닌 만큼 베일에 싸여 있는 나이트 보험회사의 주인은 돈 행키(Don Hankey)라는 인물로, 행키는 중고차 시장에서 고리대금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억만장자다. 미국에선 차 없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많다. 땅덩이도 넓고 대중교통이 그럭저럭 갖춰진 곳은 극히 예외적인 몇몇 도시에 불과하다. 대중교통이 서울만큼 잘 갖춰진 도시는 내가 알기로 미국에는 없다. 그런 동네에서 출퇴근하려면 자가용은 생필품이다. 다만 새 차, 좋은 차가 아닌 낡은 중고차를 사는 데 필요한 돈도 마련하기 어려운 서민이 많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 부의 불평등은 한국보다 훨씬 심각하다.) 서민들은 신용 점수(credit score)가 낮아서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다. 이런 서민들에게 행키는 급전을 빌려줬다. 당연히 이자는 높고, 대출 상황 조건도 까다로웠다.

금융 당국의 규제를 받는 제도권 금융기관은 영업 정지를 당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대출을 통해 부를 쌓은 행키가 트럼프에게 ‘금전적, 정치적 빚’을 지우면 트럼프가 만약 당선됐을 때 이 빚을 어떤 식으로 돌려받으려 할지를 두고 우려 섞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트럼프는 국정을 운영할 때나 다른 나라와 외교 문제를 다룰 때도 “공짜는 없다”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철저히 앞세웠던 인물이다. 행키가 보증을 서주는 덕분에 공탁금이 인정돼 항소심이 진행되고, 올 11월 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긴다면, 행키는 당장 고리대금업과 관련한 연방 규제를 풀어달라고 로비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트럼프는 이 청탁을 아마도 거절하지 않을 거다.

일단은 레티샤 제임스 법무장관이 나이트 특수보험회사의 보증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제동을 건 상태다. 주마다 공탁금과 관련해 보증을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회사들의 목록이 있는데, 나이트 보험회사는 원래 보증을 전문으로 서는 보험회사가 아니다. 그래서 뉴욕주는 말할 것도 없고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다른 주에도 보증 업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적이 없다. 게다가 이 회사는 공개기업도 아니어서 공시 의무가 없기 때문에 지배구조나 재무제표도 베일에 싸여 있다. 레티샤 제임스 장관은 “[나이트 보험회사]가 공탁금을 조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소명이 없고, 설사 공탁금을 마련해 오더라도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돈”이라고 말했다.

데일리 비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보증을 서주기로 해놓고, “항소심에서 트럼프가 질 경우 벌금을 내는 건 나이트 보험회사가 아니라, 트럼프 본인이 될 것”이라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무늬만 보증이지 실제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며,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 셈이다.

제임스 장관의 주장대로 트럼프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 궁리만 하고 있을 뿐 패소했을 경우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 스스로 퇴로를 닫아놓은 상태에서는 법원에서 잇따라 유죄를 선고받고 올해 선거에서 만약 또 패했을 때 트럼프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지난 2021년 의사당 테러와 비슷한 폭력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 무척 우려스럽다.


어쨌든 뉴욕 민사 재판의 항소에 필요한 공탁금과 관련한 내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원래 오늘 하려던 “밈 주식 트루스 소셜” 이야기를 기다리신 분이 있다면, 공탁금을 둘러싼 트럼프의 난처한 사정이 트루스 소셜 상장 이야기를 잇는 중요한 다리였음을 곧 확인하실 수 있다. “여러모로 자금이 쪼들린 트럼프”가 2024년 4월 초 현재, 대선 후보 트럼프를 이해하는 열쇳말이다.

항소법원이 공탁금을 절반 이하로 깎아주기로 한 같은 날,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TMTG, Trump Media and Technology Group)이 나스닥에 상장한다. 이 회사의 사실상 유일한 자회사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여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이다. 공개기업이 되면 주식시장에 상장돼 거래할 때 종목코드(ticker)를 따로 쓴다. 주로 회사 이름의 약자를 쓰는데, 트루스 소셜은 회사 이름 대신 다른 약자를 썼다. DJT. Donald John Trump의 약자다. 그만큼 이 회사는 곧 트럼프라는 브랜드의 대체불가능토큰 같은 이미지로 시장에 데뷔했다.

트루스 소셜의 모회사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정식 상장한 게 아니라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우리말로 옮기면 말 그대로 특수목적합병회사와의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했다. 법을 우회한 편법은 아니고, 미국에선 엄연히 합법적인 상장 방식이다.

SPAC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오직 다른 기업과 합병을 위해 존재하는 회사다. 회사 자체는 가치를 창출하는 주력 사업이 따로 없는, 껍데기만 있는 회사라서 “shell company”라고도 불린다. 대신 그 껍데기를 다른 회사에 씌워주는 게 목표다. 성장 가능성이 큰 유망한 중소기업 가운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그렇다고 정식 기업공개 절차를 밟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회사들 중에 합병 대상을 물색한다. 전통적인 기업공개 절차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기업공개를 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 원하는 자금을 모으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어느 정도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우회 상장이 최근 10년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트루스 소셜도 디지털 월드 애퀴지션(Digital World Acquisition)이라는 특수목적합병회사와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했다. 합병 계획이 발표된 건 2021년 10월. 그런데 그 전에 트루스 소셜이 탄생한 계기, 배경, 비화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대선을 포함해 현재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2021년 1월 6일에 일어난 의사당 테러를 꼽을 것이다. 의사당 테러가 일어나는 데 영향을 끼친 더 근본적인 부조리나 문제도 물론 있겠지만, 결국 자유로운 선거로 정당하게 선출된 이가 평화롭게 권력을 넘겨받지 못하게 하려고 폭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초유의 사태는 1월 6일 의사당 테러였다. 의사당 테러에서 파생된 문제와 논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지금의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선거에서 지지 않았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여전히, 아주 많다. 민주당, 리버럴, 사회주의자, 기득권, (이들 머릿속에만 사는 괴물에 가까운) 딥스테이트가 모두 한통속으로 부정선거를 획책해 트럼프에게서 정권을 빼앗으려 한다고 믿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성난 폭도가 되어 워싱턴 D.C.의 의사당(Capitol)을 습격했다.

트럼프가 의사당 테러에 얼마나 관여했느냐는 궁극적으로는 역사가 기록할 일이고, 그 전에 법원이 판결할 문제이며, (중우정으로 흐를 위험이 있어 불안하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해 대선에서 잠정적으로 판가름 날 사안이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많은 리버럴, 진보주의자들은 트럼프가 테러를 사주했거나 사실상 부추겼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근거는 부족하다. 좀 더 확실한 건 분명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워싱턴 D.C.로 오지 말라고 당부할 수 있던 트럼프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날 워싱턴 D.C. 건너 북부 버지니아의 저렴한 호텔에 묵은 지지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포토맥강을 건너 수도로 왔는데, 트럼프는 말 그대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고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트럼프는 남북전쟁 이후 아마도 헌법기관을 유린하려 한 가장 끔찍한 폭력을 방조하고 묵인했다는 비난을 영원히 면하기 어렵다.

정치와 법, 역사가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판단하고 기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보다 발 빠르게 반응한 곳은 따로 있었다. 시장이다. 여론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시장은 트럼프와 가장 먼저 손절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는 폭력을 부추기는 글과 주장을 올린 트럼프를 플랫폼에서 추방했다. 누구보다도 능수능란하게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던 트럼프는 하루아침에 마이크를 빼앗겼다.

특히 트위터에서 추방당한 것은 정치인 트럼프에게 적잖은 타격이었다. 이때 트럼프에게 앤디 리틴스키(Andy Litinsky)와 웨스 모스(Wes Moss)라는 사람 둘이 접근한다. 둘은 트럼프가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리얼리티 예능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 출연해 트럼프와 구면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마이크를 빼앗겨 침울한 트럼프에게 대안 소셜미디어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시시콜콜한 정치적 올바름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말을 뭐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트럼프 지지자들도 거기로 모일 거라고 했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이들의 제안에 시큰둥했다. 그래도 자기 이름을 빌려주는 데는 동의했고, 그렇게 탄생한 소셜미디어가 트루스 소셜이다.

소셜미디어는 최첨단 과학과 기술력이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다. 그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면서 친구, 친구의 친구, 사돈에 팔촌까지 모여드는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트루스 소셜은 실패한 소셜미디어다. 페이스북이나 X, 틱톡 등 잘 나가는 소셜미디어가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의 조야한 수준의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에 이용자도 많지 않아서 따분하다는 평이 대부분이고, 실적도 줄곧 부진했다. 그래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예상대로 트루스 소셜의 충성스러운 고객이 돼주었다. 트럼프의,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소셜미디어를 표방한 만큼 당연한 일이다.


트루스 소셜은 트럼프라는 확실한 브랜드를 앞세웠지만, 투자처를 찾는 데도 애를 먹었다. 어쩌면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앞세웠기 때문에 월스트리트의 주요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렸다고 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트루스 소셜이 탄생한 이유가 결국, 의사당 테러를 규탄하기는커녕 사실상 부추긴 트럼프 때문인데, 그런 트럼프가 여전히 선거 결과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동업이든 투자든 트럼프와는 사업적으로 엮이지 않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상식적인 판단이었을 거다.

결국, 트루스 소셜의 모회사인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은 2021년 10월, SPAC과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을 선언한다. 목표로 하는 기업가치는 10~15억 달러였다. 트루스 소셜은 이번에도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우회상장의 장점 중 하나는 곧바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시장에서 평가받고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주가가 언젠가 오르리란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유로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빨리 상장 기업이 되는 편이 낫다. 트루스 소셜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줄 거라고 기대하고 일종의 복권을 긁었다. 이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과 합병하기로 한 특수목적합병회사 디지털 월드 애퀴지션의 주가는 합병 발표가 나기 전 주당 10달러 정도에 거래되다가 며칠 만에 주당 175달러까지 폭등했다. (물론 고공행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트루스 소셜은 2022년 초, 앱을 출시하고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트럼프를 향한 관심 때문에 가입자가 빠르게 100만 명을 넘어섰지만, 관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또한, 트럼프의 소셜미디어라고 해서 와봤는데, 처음 몇 달간은 트럼프가 아무 글도 올리지 않고, 트루스 소셜을 이용하지 않았다. 기대하고 온 초기 유저를 붙잡지 못하는 서비스는 이제 갓 출범한 소셜미디어로선 암울한 지표다. 트럼프를 퇴출했던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의 정지된 계정을 풀어주는 등 1월 6일 의사당 테러의 후폭풍이 잠잠해지면서 트럼프에게 다시 여기저기 말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끝내 X(구 트위터)에 복귀하지 않았고, 지금은 거의 모든 메시지를 트루스 소셜에만 올리고 있다.)

야심 차게 출범한 앱은 실적이 부진하고, 여기에 시장 상황도 도와주질 않았다. 2022년은 몇십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해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주식시장 자체가 한동안 부진했고,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우회상장 시도도 실패하는 경우가 잇달아 일어났다. SPAC과 합병하겠다는 계획만 발표해 놓고, 시점을 저울질하던 트루스 소셜의 상장은 그렇게 영영 없던 일이 되는 거 아니냐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달 트럼프는 마침내 올해 대선의 공화당 후보가 됐다. 이어 뉴욕주 민사 재판에서 금융사기죄로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됐다. 트럼프가 재정적인 궁지로 몰리던 순간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의 운명도 급물살을 탄다. 뉴욕주 법무부는 원래 3월 25일까지 공탁금을 내지 않으면 규정에 따라 트럼프의 재산을 압류하는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날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과 디지털 월드 애퀴지션의 합병 및 상장이 발표된 건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는 그만큼 돈이 급했고, 지지자들의 관심을 등에 업고 투자받기 가장 좋은 날을 고른 셈이다. 합병과 상장이 발표된 이튿날인 3월 26일 트루스 소셜(종목코드 DJT)은 거래되기 시작했다. 주당 50달러가 안 되는 수준에서 시작했다가 장 중 한때 주당 80달러에 육박하기도 하는 등 예상대로 주가가 치솟았다.

트럼프는 합병한 회사의 주식 7,900만 주를 소유하고 있다. 지분으로 따지면 약 60%다. 곧바로 한 주에 80달러에 7,900만 주를 곱해 트럼프의 재산이 60억 달러 가까이 불어났느니, 우회상장의 마법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느니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상장 프리미엄은 금방 걷혔다. 이어 공개기업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규정에 따라 지난해 실적이 발표됐는데, 트루스 소셜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할 만큼 아주 실망스러운 실적이었다.

아무리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내세운 회사라고 해도 어쨌든 본업이 소셜미디어인 만큼 이용자, 광고 수익, 비용 등 사업과 재무 전반을 아우르는 성적표가 받쳐주지 못하면 미국 주식시장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트루스 소셜은 지난 2년간 700만 회의 앱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광고 수익은 500만 달러 수준이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시는 분이 계신다면, 트루스 소셜보다 나흘 먼저 상장한 소셜미디어 레딧의 지난해 실적과 비교해 보면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거다. 레딧의 지난해 수익은 8억 달러, 일간 활성 사용자 수는 7천만 명으로 트루스 소셜을 압도한다. (레딧의 기업공개 가격은 주당 34달러였고, 4월 10일 현재 42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트루스 소셜의 주가는 34달러까지 내렸다.) 사실 트루스 소셜은 2023년에 수익을 전혀 내지 못했다. 비용까지 합쳐 계산하면 손실만 무려 5,800만 달러에 이르는 “돈 안 되는 비즈니스”였다.


그렇지만 이 모든 악재와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트루스 소셜의 주가를 분석할 땐 실적이나 시장 전망 등 다른 기업에 적용하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 이유는 이번에도 다시 도널드 트럼프다. 종목코드 DJT가 말해주듯, 트루스 소셜은 전형적인 밈 주식(Meme stock)이라서 그렇다.

2021년 게임스탑 사건, 다들 기억하실 거다. 밈(meme)은 원래 생물학에서 비유전적 문화 요소를 일컫는 말인데, 요즘엔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니는 “짤”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밈 주식은 “온라인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거래량이 급증, 가격이 요동치는 주식”을 말한다. 트루스 소셜도 전형적인 밈 주식의 특징을 띤다.

트루스 소셜의 주가는 소셜미디어 실적이나 전반적인 시장 전망보다도 올해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길을 걷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가 소위 “꽃길”만 걸어서 대선에서 승리,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게 된다면 트루스 소셜의 주가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이 뜻대로 잘되지 않고,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고, 자금난도 계속 심화한다면 트루스 소셜의 주가도 트럼프의 상황을 반영하듯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 언론은 일제히 트루스 소셜을 “올해의 밈 주식”으로 꼽았다. 밈 주식의 특징을 분명 갖췄지만, 조금 달리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 게임스탑이나 AMC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밈 주식은 보통 훨씬 더 좁은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해 주가가 요동치곤 한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숫자가 워낙 많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받은 약 7,422만 표 가운데 소위 극렬 지지자는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다른 밈 주식의 시세를 좌지우지한 소문의 진원지보다는 규모가 크다.

트럼프 지지 유세를 취재한 뉴스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본인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트럼프한테 힘이 될 수 있다면 세간을 팔아서라도 후원금 내고, 트럼프 굿즈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주식을 사주는 게 억울하게 마녀사냥당하고 있는 트럼프를 돕는 길이라고 알려주면, 이들은 없던 주식 거래용 계좌를 만들어서라도 주식을 사줄 사람들이다.

보통 밈 주식은 가격이 왜 오르는지, 또 왜 급락하는지 도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특징 때문에 트루스 소셜의 주가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트럼프의 대선 가도가 순탄하면 DJT의 주가는 최소한 급락하지는 않을 거다. 반대로 트럼프가 궁지에 몰릴수록, 악재가 겹칠수록 트루스 소셜의 주가에서 티가 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루스 소셜은 밈 주식보다도 2024년 선거 결과를 내다볼 수 있는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의 지표로 볼 수도 있다.

예측시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어느 정당/후보를 지지하십니까?”라고 묻는 여론조사와 달리 “어느 정당/후보가 당선될 것 같습니까?”를 묻고, 그냥 답하는 게 아니라 답에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방식이다. 개인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까지 종합해 정확한 예측을 해야 돈을 따거나 최소한 잃지 않으므로, 같은 수의 답변을 얻는다면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반영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여론조사의 단점을 메꿀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방식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방법론상에 몇 가지 한계가 있는지, 아주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도박의 특징이 있어 선관위가 예측시장 적용을 금지한 거로 알고 있다.

어쨌든 트루스 소셜의 주가는 올해 미국 대선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쓸 만한 지표가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트루스 소셜의 주가가 트럼프 개인의 처지에 따라 좌우될 거라는 내 예측이 맞을 때의 일이다. 반대로 대선과 주식이 각자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이를 지켜보는 것도 2024년 미국 정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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