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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Apr 24. 2024

형사 재판 피고로 법정 선 도널드 트럼프

맨하탄 형사 법정에서 일어난 일

이번 주는 미국 언론사들에 소위 ‘톱 기사를 뭐로 쓸지’, ‘머리기사를 뭐로 낼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주다. (물론 그런 걱정을 요즘도 한다면…) 사상 최초로 미국 (전직) 대통령이 형사 재판의 피고로 법정에 섰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5VRU1bvYn3Q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아메리카노가 막 유튜브 채널을 론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형사 기소됐다. 아직 프린스턴으로 이사오기 전, 뉴욕에 살 때였다. 맨하탄 형사 법정에 기소 인정 여부를 다투기 위해 출두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촬영하러 기자들이 진을 치는 “대목”이 섰다. 신생 채널 주제(?)에 정치 유튜버처럼 현장에 가서 분위기도 스케치하고 시민들 인터뷰도 했다. 오랜만에 기자로 일하던 때 “뻗치기” 하던 생각이 났다.

뉴욕 맨하탄 지방검사장 알빈 브래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형사 기소했다. 대배심(grand jury)이 기소가 타당하다며 검찰 손을 들어줬고, 재판은 뉴욕주 대법원 소속 후안 머천(Juan Merchan) 판사에게 배당됐다. 지난주 12명의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절차를 마무리해 어제(22일) 첫 재판이 열렸다. 오늘 아침 업로드된 뉴욕타임스 데일리 에피소드를 뼈대로 트럼프의 “입막음용 뒷돈 지급과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을 정리했다.


사실 맨하탄 검찰이 트럼프를 재판정에 세운 혐의는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몇 번 배배 꼬인 복잡한 논리를 어지럽게 따라가다 보면, “그래서 받을 수 있는 처벌이 ‘고작’ 최대 징역 4년”이라 김이 새기도 한다. 트럼프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리버럴들이 브래그 검사장을 향해 야유를 보낸 이유도 그거였다. 이런 식이었다.

“지금 뭣이 중헌디? 트럼프가 저지른 범죄가 저거 말고 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포르노 배우와 성관계 맺은 거 덮으려고 트럼프 치고는 큰돈도 아닌 13만 달러 뒷돈 보낸 거로 ‘역사적 첫 기소’ 타이틀을 주는 게 정말 맞아?”

브래그 검사장은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이 욕을 먹거나 말거나 꿋꿋이 기소를 밀어붙였고, 어떻게든 올해 대선 전에 법원에서 유죄 판결받는 것만큼은 피하려고 중동 축구팀들 침대 축구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지연 전술을 총동원해 온 트럼프를 대선을 반년 앞둔 시점에 기어이 피고로 법정에 세웠다.

더 큰 범죄 혐의를 기소해야 한다는 비판도 물론 일리가 있지만,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방해하려 한 혐의 - 잭 스미스 특검이 기소했지만, 재판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 나, 

조지아주 선거 개입 혐의 - 풀턴 카운티 검찰이 기소했지만, 검사장과 수사관의 ‘부적절한 관계’를 물고 늘어진 트럼프 측의 작전이 통하면서 재판 전반이 차질을 빚었다 - 와 달리,

트럼프의 지연작전을 효과적으로 무산시킨 점에선 브래그 검사장의 뚝심이 통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을 때의 얘기다. 또 법원 판결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브래그의 기소가 정치적으로 어떤 여파를 미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혐의                  

아무튼 맨하탄 형사 법정에 선 피고 도널드 트럼프가 받고 있는 혐의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 벌써 여러 번 정리했지만, 꼭 떨어지지 않아서 매번 새롭고 헷갈리는 측면이 있으므로, 한 번 더 정리하려 한다. 어제 재판에서 검찰 측 변호사로 나선 매튜 콜란젤로가 설명한 내용을 토대로 했다. 키워드를 몇 개 꼽아보자면, “체크북 저널리즘(Checkbook Journalism)”, “표적 취재 및 은폐(Catch-and-Kill)”, 그리고 “퓨전”이다.  

    체크북 저널리즘  

재판의 핵심 피고는 3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마이클 코헨, 그리고 데이비드 페커란 인물이다. 코헨은 전직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이자, 이른바 오른팔(fixer, 궂은 일을 처리하는 심복) 역할을 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페커는 아메리칸 미디어라는 언론사의 CEO이자, 내셔널 인콰이어러(National Enquirer)라는 매체의 발행인이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정론지와는 거리가 멀다. 페커는 증인으로 재판정에 서서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던 내셔널 인콰이어러를 “체크북 저널리즘” 매체라고 표현했다. 온갖 스캔들을 비롯한 자극적인 내용을 취재한 다음 이를 기사로 쓴다. 그리고 기사를 바로 발행하는 대신 기사가 나갔을 때 피해를 볼 사람에게 기사를 내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을 해서 적정 수준의 돈을 받으면 기사를 내지 않고 묻어준다. 체크북(checkbook)은 수표 뭉치를 말하므로, 돈 받고 기사를 쓰거나 내리는 매체라고 보면 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디스패치 부류의 매체다.  

    표적 취재 및 은폐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기사 발행을 총괄하는 페커와 코헨, 트럼프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만났다. 페커는 트럼프에게 불리한 내용의 기사는 알아서 차단하고 그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까지 막아주기로 했다. 트럼프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셔널 인콰이어러 측에 지급하기로 했다. 이른바 표적 취재 및 은폐(Catch-and-Kill)를 모의한 것이다. 트럼프에게 해가 될 만한 이야기는 사전에 찾아서 싹을 자르고 묻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떠올려보면, 이렇게 막아야 할 스캔들이 어디 한둘이었겠나? 그야말로 “파파스(파도 파도 스캔들이 쏟아지는)”의 향연이 펼쳐진다. 처음 몇 건은 트럼프가 책정해 둔 입막음용 뒷돈(hush money)으로 감당이 됐지만,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가 트럼프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기자에게 접근했을 때는 이 기사를 사서 폐기하는 데 필요한 돈이 없었다.

마이클 코헨은 트럼프의 궂은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 답게 알아서 13만 달러를 변통해 이를 내셔널 인콰이어러에 지급했다. 그리고 나중에 트럼프에게 이 돈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처음에 셋이서 공모한 대로 대선에 해가 될 만한 정보를 돈 주고 사서 폐기한 셈이다.  

    퓨전  

그런데 트럼프는 마이클 코헨에게 입막음용 뒷돈 13만 달러를 차후에 지급하면서 이를 정상적인 변호사 비용(legal service fee)으로 기재했다. 세금 신고도 그렇게 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정상적인 변호사 비용이 아니라 선거에서 자신의 비위를 가리고 유권자를 속이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데 쓴 돈을 정상적인 비용으로 처리한 거다. 회계장부를 조작한 셈이다.

그런데 이 정도 회계장부 조작이 형사 기소될 만한 범죄가 될까? 회계장부 조작만 있었으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뉴욕주 형법은 “회계장부 조작이 다른 범죄를 숨기고 은폐하기 위해 이뤄졌을 경우 이를 중범죄로 다루고 기소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트럼프는 회계장부를 조작해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유권자를 속이려 했다. 선거법을 위반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여기에 회계장부 조작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회계장부 조작이 다른 범죄와 ‘퓨전’을 이루면 중범죄가 된다. 뉴욕주 법이 그렇다.

이번 재판에서 원고인 검찰은 트럼프가 입막음용 뒷돈을 지급한 것이 선거를 방해하려 한 행위, 즉 선거법 위반인지를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기소 여부를 결정한 대배심에서 다툰 문제로, 이미 기소가 결정돼 재판이 열린 만큼 검찰은 배심원단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면 된다.

피고인 트럼프 측 변호인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치적을 부풀리고 허물을 덮으려는 건 모든 선거에 임하는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라며, 입막음용 뒷돈 지급은 범죄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회계장부를 실수로 잘못 기재했을 수는 있지만, 다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랬다는 검찰의 주장은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마찬가지로 범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이제 와서 해봤자 소용없다. 이미 기소돼 재판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고 측 변호인도 배심원단에게 트럼프가 한 행동은 여느 선거에서 누구나 했을 일이지 (검찰 측이 몰아가는 것처럼) 대단한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소명하는 데 집중했다.


피고 트럼프                  

법정에 선 형사 사건 피고 트럼프는 민사 재판을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법정에는 전자 기기를 들고 갈 수 없고, 재판은 녹화는 물론 녹음도 되지 않는다. (대신 뉴욕주 법원은 세간의 이목이 쏠린 이번 재판에 한해 재판에서 오간 진술, 질문, 답변을 시차를 두고 공개한다고 밝혔다. 현재 4월 22일 첫날 재판 기록이 올라와 있다.)

트럼프는 이날 재판에는 물론이고, 배심원단을 선정하는 절차를 밟을 때도 내내 법정에 있어야 했다. 평생 다른 사람의 지시를 따라본 적이 없는 트럼프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진 규칙 안에서 행동해야 하는 법정은 낯설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특히 발언권을 얻어야만 말을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말보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훨씬 더 많은 상황을 참지 못한 트럼프는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브래그 검사장, 머천 판사를 비롯해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쉴 새 없이 비난하고 저주했다. 가뜩이나 수사 담당자와 판사, 그리고 재판의 핵심 증인들을 비방하고 협박한 트럼프에게 함구령(gag order)이 내려졌는데, 트럼프가 이를 계속 무시하고 “나는 마녀사냥 당하고 있는 억울한 피해자”라며 공격을 멈추지 않자, 검찰은 함구령을 어긴 트럼프에게 법정 모독죄를 적용해 가중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매기 해버만 기자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트럼프를 아주 가까이서 밀착 취재한 인물이다. 2022년에는 트럼프와 그 측근들의 생리를 자세히 짚은 책 “자신감 넘치는 사나이(Confidence Man)”를 펴내기도 했다. 트럼프에 관한 책이다. 사실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주알고주알 기사로 써내는 해버만 기자의 기사를 두고는 호오가 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 있어 해버만은 정평이 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배심원을 선정하는 절차를 밟은 금요일 법정의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배심원단 선정 절차가 다 끝난 것처럼 보이는 시점이었어요. 법정에 온 기자들이나 방청객도 이제 판사가 오늘 일정이 끝났다고 얘기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트럼프가 너무 자연스럽게 먼저 일어나서 법정을 빠져나가려는 거예요. 딱히 누구를 무시하려는 의도 같은 건 없어 보였고, 트럼프로서는 그냥 너무 자연스러웠던 행동이죠. 항상 자리에 사람을 모으는 것도, 자리를 파하는 걸 결정하는 것도 본인이었을 테니까요. ‘다 끝난 거 아냐? 그럼 가지 뭐.’ 생각했겠죠. 그러나 법정의 룰은 그렇지가 않았죠. 머천 판사는 트럼프를 향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끝났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자리로 돌아가 다시 앉아주시겠어요?”라고 말했고, 트럼프는 순순히, 그러나 다소 무기력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 앉았습니다. 생기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트럼프였어요.


배심원 제도                  

미국 형사 재판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판사가 있지만, 죄의 유무를 가리는 건 일반 시민으로 꾸려진 배심원단의 몫이라는 점이다. 배심원제의 기원과 역사, 의의에 관해서는 미국의소리(VOA)에서 정리한 기사를 참조했다.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는 건 미국 시민의 대표적인 의무다. 수정헌법 6조는 형사 사건의 피고에게 인정되는 권리 중 하나로 불편부당한 배심원의 판결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미국 시민이 법원에서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라는 고지를 받고도 무시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미루면 법정 모독죄로 기소될 수도 있다.

배심원은 법원이 관할하는 지역에 사는 18세 이상의 미국 시민이어야 하며,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한다. 이는 기본적인 요건이고, 재판마다 원고, 피고 측 변호인과 판사가 공정한 재판을 내릴 만한 자질이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 거르고 거른다.

맨하탄 형사 법정에서 진행되는 재판인 만큼 배심원도 모두 맨하탄에 사는 미국 시민이다. 미국은 지방검찰 검사장도 선거로 뽑는데, 트럼프를 기소한 알빈 브래그도 사실상 트럼프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선거에 출마했다. 그런 브래그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사람들이 맨하탄 사람들이다. 트럼프가 나를 미워하는 이들로 가득한 곳에서 배심원들도 당연히 내 편이 없을 테니 이건 불공정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배심원을 거르고 고르는 작업은 꽤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보통 원고나 피고를 사전에 아는 사람은 배심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은데, 트럼프가 누군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는 사람을 미국에서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트럼프에 대해 긍정이든 부정이든 너무 한쪽으로 의견이 치우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머천 판사와 양측 변호사들은 트럼프에 대해 ‘중립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찾는 데 너무 힘을 빼지 않기로 했다. 그 덕분에 배심원 선정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배심원단이 내린 평결(verdict)은 판사가 사실상 마음대로 바꿀 뒤집을 수 없는 구속력을 지닌다. 관할 지역에 사는 시민만 배심원이 될 수 있으므로, 이번 사건의 배심원은 맨하탄 사는, 대체로 교육 수준이 높고, 진보 성향이 강한 사람들로 구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범죄의 유무를 가리는 소배심(petit jury)은 만장일치가 원칙이다. 곧 피고 측은 배심원 12명 가운데 한 명만 설득해서 의견을 갈라놓을 수 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만장일치를 무산시키는 배심원을 불일치 배심(hung jury)이라고 하는데, 피고 측은 배심원들에게 트럼프가 한 일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 어떻게 해서든 불일치 배심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트럼프를 싫어하는 뉴요커라도 주어진 공방을 보고 트럼프가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는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다.

배심원단과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과 별개로 오는 11월 대선 결과는 트럼프에게 일종의 정치적 심판이 될 것이다. 나아가 법원 판결과 선거 결과, 그 이후 벌어질 일련의 사건을 모아 역사가 한 번 더 2024년 트럼프의 행보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특히 개별 사건을 따로따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흐름이 넓은 시각에서 길게 보면 보일 때가 있다. 맨하탄 형사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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