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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Feb 02. 2022

눈 내리면 신날 수 있는 특권

지난 글 마지막에 언급했던 눈폭풍은 진짜였다. 미국에서 보낸 10년 넘는 세월 동안 만난 두 번째로 많은 눈이었다. 예상 적설량 단위가 인치가 아니라 피트로 나올 때부터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1인치는 약 2.5cm, 1피트는 약 30cm.) 폭풍이나 홍수 등 날씨가 험할 거라는 예보가 무색하게 별 일 없이 지나간 날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폭설을 실제로 겪어본 적이 잘 없어서였을까? 안일하게 '눈 좀 오다 말겠지.' 생각했던 나는 토요일 오전 내내 그칠 줄 모르는 눈보라에 적잖이 당황했다. 

눈폭풍이란 이름을 증명이라도 하듯 엄청난 바람이 불었고, 눈은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바람을 타고 전후좌우, 사방팔방 마구 몰아쳤다. 먹을 걸 쟁여두지 않아서 '점저로 라면 끓여먹고 일찍 자고 난 다음에 내일 어떻게든 장을 봐오자'는 의지를 다질 때쯤 오후 느지막이 눈이 그쳤다. 금요일 밤부터 계속 눈이 왔지만, 맨하탄의 적설량은 센트럴 파크 기준 8인치, 약 20cm 정도에 불과(?)했다. 1피트가 되지 않았으니, 일대 다른 지역보다는 눈이 훨씬 덜 내렸다.


2013년 초에 보스턴 옆 케임브리지에 살 때 (내 기억이 맞다면) 약 70cm 적설량을 기록한 폭설을 겪은 적이 있다. 하루 넘게 눈이 내리다 그쳤을 때 나가봤더니 동계 올림픽 종목에서만 봤던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사람들이 실제로 하고 있었다. 운동 삼아 하는 게 아니라 온 세상에 눈이 쌓인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이동 수단이 스키였다. 스키 실력을 보면 누가 이 동네에서 오래 산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러니 동계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될 수 없구나 싶었다. 

찾아보니 9년 전 사진이 있었다.


눈이 그친 뒤 부랴부랴 빵이나 먹을거리를 사러 밖에 나갔다. 맨하탄 사람들은 뉴잉글랜드와 달라서인지, 아니면 눈이 덜 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거나 신나게 썰매를 타고 있었다. 내릴 때야 무시무시했지만, 쌓이고 나니 역시 아름다운 눈이었다. 눈에는 분명 동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아내와 나는 미리 알았어도 절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겠지만, 집 앞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선 한바탕 눈싸움이 벌어졌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는 아내도 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이가 든 걸까? 아니, 10년 전이었어도 저런 데 굳이 가서 즐길 성격은 우리 둘 다 아니다.

눈이 그치고 부랴부랴 빵을 사러 갈 수 있었던 건 그 사이에 누군가 길을 치워놓은 덕분이었다.


내 기준에서 선 넘는 파티 피플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썰매를 타거나 눈사람을 만드는 어린이들을 보면 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래, 눈싸움이든 썰매든 눈사람 만들기든 아름답고 평화롭지 아니한가? 그런데 썰매를 타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 옆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순간 내가 눈싸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뭐가 왜 불편했던 건지 생각이 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내와 나는 우리가 당연한 듯 누려온 수많은 특권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집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이들은 엄청난 특권을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2020년 봄, 월스트리트나 미드타운에서 일하던 사무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북적북적한 도심은 순식간에 위험한 곳의 표본이 됐다. 반대로 한적한 곳의 가치가 높아지자, 교외 지역(suburb)은 물론 교외와 시골(rural) 사이 지역을 부르는 원교외(exurb) 지역의 집값까지 올랐다. 맨하탄 살던 부자들이 원교외 지역 집값 상승에 적잖이 기여했을 거다. 교외에 별장이 있는 사람들은 더한 특권을 누렸지만, 그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니 딱히 할 말은 없다. 그저 나는 원래 집이나 카페에서 번역하고 글 쓰는 일을 했는데, 카페는 문을 닫아 아쉽게도 못 가게 됐지만 그래도 일은 계속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었다. 아내도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고 논문 쓰고 발표하는 것도 다 온라인으로 할 수 있으니 똑같이 바빴고, 외식을 할 수 없게 된 덕분에 생활비 지출은 오히려 줄었다.

반대로 실제 뉴욕이라는 도시가 굴러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재택근무가 불가능했다. '뉴욕'에 아무 도시 이름을 넣어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냥 '세상'으로 바꿔 써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지하철 기관사, 버스 운전사, 배달 노동자, 청소 노동자, 건물 경비 노동자, 경찰, 소방대원, 그리고 팬데믹 최일선 현장인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까지. 이들이 집에서 일하겠다고 하면 도시가 곧바로 멈춰버릴 거다. 직종마다 다르지만, 이들 가운데 적잖은 이들은 맨하탄의 소위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무직 노동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한다. 지하철이나 통근 열차를 타고 아침 일찍 맨하탄으로 출근해서 저녁 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언론에선 이들을 "필수 노동자(essential workers)"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필수 노동자들은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제대로 된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재택근무는 처음부터 이들의 선택지에 없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피해 도시를 떠날 수 있던 것도 대단한 특권이었다. 지도에 붉은색이 짙은 곳이 맨하탄과 브루클린 일대다. 사진=뉴욕타임스 갈무리


뉴욕시는 5개 구로 이뤄져 있다. 위 지도가 5개 구를 나타내는데, 2020년 5월 1일 기준 뉴욕시를 떠난 사람들을 표시한 거다. 붉은색이 짙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 곳이다. 가장 붉은 곳이 맨하탄, 그 오른쪽에 다음으로 붉은 곳이 브루클린이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사람이다. 한적한 별장으로 가거나 별장이 없으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에어비앤비를 해서라도 도시를 비울 수 있던 사람. 반대로 저 붉은 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대부분 옅은 곳에 산다. 이들은 뉴욕을 떠나도 갈 곳이 없었고, 하던 일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지니 어쩔 수 없이 일을 계속했다. 출퇴근길에 밀접 접촉을 피할 수 없었고, 의료보험이 없어서 병원 문턱에서 돌아서야 하는 이들도 많았기에 코로나19 확진자, 사망자 비율을 구별로 나타낸 지도를 보면 위의 지도와 정반대 색깔이 칠해진다. 맨하탄은 인구 대비 확진자가 가장 적었고, 브롱스나 퀸즈,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인구 대비 감염률은 3~4%에 이르렀다.

2년이 흘러 요즘은 어떤지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기사를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썼는데, 뉴욕시 주요 지하철역이 어떻게 변했는지만 봐도 코로나19의 영향이 얼마나 지역마다 다르게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이 기사 이야기는 언젠가 팟캐스트에서 풀어보려 한다.


코로나19 이야기는 언젠가 여기서도 더 자세히 풀어보고 싶다. 오늘은 눈 내리는 게 딱히 신나지 않을 사람들, 이름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필수 노동자'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서 신나게 눈싸움하는 사람들을 보며 괜히 불편했던 이유가 떠올라서였다. 바로 지난해 8월 말에 뉴욕 일대에 폭우가 내렸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인데, 이때 뉴욕시에서만 13명, 뉴욕과 뉴저지, 펜실배니아 일대에선 43명이 숨졌다. 뉴욕시의 사상자 13명은 대부분 위 지도에서 옅은 색이 칠해진 퀸즈 지역의 오래된 연립주택 반지하방에 있다 참변을 당한 이들이다. 배수가 잘 되지 않는 지역에 한밤중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거다.

전염병이 도는데도 일터를 떠날 수 없던 이들은 똑같은 자연재해에도 훨씬 취약한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아파트 사는 나 같은 사람은 내내 비가 쏟아져도 딱히 걱정할 일은 없었고, 번듯한 단독주택 사는 많은 사람들도 지하실에 물이 차서 퍼 내느라 고생하는 정도일 거다. 물론 그것도 나는 안 해봐서 모르는, 아주 귀찮은 일이겠지만, 적어도 갑자기 불어난 물에 집을 잃거나 목숨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분명 특권이라 부를 만하다.


지난달엔 뉴욕시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나 2살 난 아이를 포함한 17명이 숨졌는데, 이것도 브롱스였다. 마찬가지로 위 지도에서 옅은 색이 칠해진 곳이다. 

내가 유난히 예민해서 이런 사례를 열심히 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만 주욱 이어 붙였을 뿐이다. 뉴욕에 살면 이런 차이가, 내가 누리는 특권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일 때가 많다. 모른 척하고 살려고 해도 자꾸 되새겨주는 일이 터진다. 마치 크레인에서 떨어져 죽고, 작업 현장 흙더미가 무너져 깔려 죽고, 건설현장에서 건물이 붕괴해 죽는 한국의 노동자들처럼. 

다행히 이번 폭설로 인한 큰 사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안전하니 괜찮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참 괴롭고 헛헛한 일이다. 부자만, 힘 있는 사람만, 번듯한 무언가를 하는 사람만 안락하고 안전한 세상 말고, 누구나 다 안전한 세상이면 좋겠다. 가뜩이나 기후 재해는 앞으로 더 잦아질 텐데, 재해에 취약한 계층의 안전을 모두 함께 돌아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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