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디가 거목 나무 위로 올라온 이후로 날씨는 매일 점점 더 추워졌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숲은 나뭇잎을 자꾸 떨구어 냈다. 나무 위에서 빨강, 주황, 노랑, 초록의 나뭇잎들이 떨어져 바닥에 쌓이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웠다. 땅위로 내려가 떨어진 나뭇잎을 들춰보면 나뭇잎을 덮고 겨울잠에 들려는 벌레들이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람이 쌓인 낙엽을 하늘로 말아 올려서 햇빛에 그 예쁜 색깔들이 반짝거리며 떨어지게 할 때도 있었다. 짧지만 가을은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숲은 아름답게 되려고 노력하고 애쓰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롭구나!'
통디는 아름답고 우아한 생활을 몸에 익히려고 노력하던 백조 유치원 때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숲은 휑하니 비어 버렸고,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구고 알몸으로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질수록 통디의 몸에선 더욱 많은 깃털이 생겨서 꼼꼼하게 통디의 몸을 감싸주었다.
통디가 보금자리로 삼은 거대한 거목 나무도 나뭇잎을 모두 떨구어 냈다.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에 예쁘게 쌓여 있던 통디의 보금자리도 휑하니 드러났다. 이전에 땅위의 덤불숲에서 잘 땐 너구리나 승냥이, 여우 같은 사냥꾼이 있었지만 나무 위에 있을 때는 올빼미나 매 같은 사냥꾼이 또 있었다. 그래서 자기 잠자리가 드러나자 통디는 불안했다.
통디는 부지런히 땅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와 보금자리 위에 둥그렇게 덤불처럼 보이도록 겹쳐 쌓았다.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에 마른 나뭇잎을 물어다 끼워 넣었다. 그러자 아주 아늑하고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통디는 처음으로 직접 만든 자신의 보금자리를 보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첫새벽의 말이 생각났다.
“너에게 필요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아. 네가 보고 걷고 들을 수 있는 곳들을 살펴봐. 언제나 그곳에서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게 될 거야. “
통디는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근처를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전에 백조들이 살던 곳으로 날아가 보았다. 숲 속 유치원도 텅 비어 있었고 엄마, 아빠가 살던 둥지도 모두 텅 비어 있었다. 그리우면서도 애틋하고 아픈 기억들이 있는 장소였다. 통디는 엄마, 아빠의 빈 둥지로 갔다. 엄마, 아빠의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았다. 잠시 엄마, 아빠를 생각했다. 눈물이 또 한 방울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디는 빈 둥지에 작별 인사를 고했다.
“엄마, 아빠 안녕!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저를 키워주셔서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저에게 잘 못한다고 꾸짖을 때도 있었지만 저에겐 제일 좋은 엄마, 아빠였어요. “
통디는 그 숲 근처를 날아다니며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커다란 강을 보았다. 어쩌면 겨울에도 얼지 않을 만큼 큰 강이었다. 강 주변에 몇 개의 작은 오두막집도 있었다. 그리고 숲 한가운데에서는 따뜻한 물이 솟아나며 하얀 증기가 나오는 작은 호수도 보았다.
통디는 또 작은 나무 상자 같은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마을에도 가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통디를 보더니 집에서 긴 막대를 가지고 나와 벼락 치는 소리를 냈다. 엄청나게 빠른 물체가 막대에서 나와 통디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에서 생겨나는 바람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만약 직접 맞았다면 몸이 두 동강 났을 것 같았다. 깜짝 놀란 통디는 얼른 그곳을 벗어났다.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혹여 첫새벽 일행을 볼 수 있을까 하며 다시 마을의 다른 집들 사이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첫새벽 일행을 보지는 못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통디가 둥지에서 눈을 뜨자 하늘에서 뭔가 하얀 꽃잎같이 나풀거리는 것들이 계속 쏟아져 내렸다. 뭘까? 통디는 허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들은 나폴 거리며 허공을 내려오다 나뭇가지나 땅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점점 두텁게 쌓이며 세상을 하얗게 바꾸어 갔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쌓인 그것을 한입 먹자 입안에서 달콤한 물로 변했다.
“신기하다. 꽃이 물로 변하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의 모든 것들이 통디를 설레게 했다. 겨울의 추위는 통디를 비롯하여 숲의 모든 동물들의 목숨을 위협했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품고 있었다.
날씨가 매일매일 추위를 더해 가며 온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통디는 매일 흙과 마른 나뭇잎을 조금씩 먹고 강에 가서 물을 먹고 강가에 쌓인 나뭇잎과 썩은 나무 등치로 숨어든 작은 벌레들을 찾아 먹었다. 하지만 눈이 내리고 땅과 강이 얼어붙으면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아, 영리한 생쥐 예쁜 눈은 그래서 음식을 굴속에 저장해 두고 있었구나!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겨울을 맞는 통디는 음식을 저장해 두는 법을 알 수 없었다. 또한 통디는 예쁜 눈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기 때문에 저장해 두는 것이 사실 가능하지도 않았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겨울의 혹한을 견뎌낼 힘도 부족했다. 통디는 왜 백조들이 모두 따뜻한 나라로 떠나야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나는 법을 배웠더라면 엄마, 아빠를 따라 함께 갈 수 있었을까?'
'아니야! 나에게는 나만의 삶이 있어. 누구나 언젠가는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통디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겨울 숲에서 혼자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갔다.
낮에는 힘을 내서 숲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전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호수를 보았던 생각이 났다. 통디는 날아서 그 호수로 갔다. 따뜻한 물이 땅에서 솟아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통디는 물도 마실 수 있었고 목욕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잠수해서 흙과 작은 곤충도 조금 먹을 수 있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따뜻한 작은 호수만 있으면 겨울을 어떻게든 버티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은 통디가 그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먹이를 먹고 나오는데 너구리 한 마리가 호숫가에 서 있었다.
“너 배가 많이 고프겠구나!”
너구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통디는 숲에서 밤의 사냥꾼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친절하고 다정한 동물들만 만난 탓에 너구리에게 별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지내니?”
통디도 너구리에게 물었다.
“나는 여름에 이 숲에 있는 벌레들을 잔뜩 잡아 내가 사는 굴 속에 가득 저장해 놓아서 먹을 건 걱정 없어. 물론 여름보다 못하긴 하지만.”
“너도 생쥐 예쁜 눈처럼 영리하구나!”
통디가 말했다.
“너 아무래도 살이 토실토실 오른 벌레 같은 영양가 있는 음식은 먹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내가 지내는 굴에 함께 가면 내가 잔뜩 잡아놓은 벌레를 먹게 해줄게. 오랜만에 힘이 나도록 먹을 수 있을 거야!”
말은 친절하게 하고 있지만 너구리도 썩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털은 빛이 바랬고 배는 홀쭉했으며 표정은 불안함을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통디는 의심 없이 그의 초대에 응했다.
“네가 사는 굴이 여기서 얼마나 멀리 있니?”
“멀지 않아. 조금만 걸으면 돼. 아주 가까이에 있어. 내 굴은 아주 따뜻하고 작은 벌레들과 곤충들도 아주 많아. 내가 아침에 이 호수에서 잡아 둔 개구리도 있단다.”
통디는 호수에서 나와 너구리를 따라나섰다. 너구리는 어디가 아픈 건지 비틀거렸고 힘이 없어 작은 나뭇가지에 걸려 나동그라지기도 했다. 통디는 그런 너구리를 붙잡아 주며 함께 너구리의 굴까지 걸어갔다. 굴 앞에서 너구리가 말했다.
“여기야. 다 왔어. 누추하지만 들어와.‘
하지만 굴속은 캄캄했고 안에서는 너구리 새끼들이 작은 소리로 가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통디는 굴속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통디가 굴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자, 너구리는 이빨을 드러내고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통디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순순히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너구리는 통디의 목을 물기 위해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순간 통디는 머릿속이 깜깜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있는 힘껏 두 날개를 펴서 퍼덕거렸다. 그리고 너구리 앞에서 보기 좋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너구리는 하늘로 날아가는 통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잡을 수 있었는데 놓친 게 아까워서 투덜대며 굴속으로 들어갔다.
용기를 내 간신히 너구리에게서 벗어나 날아가던 통디는 찬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렸다.
"아아! 겉모습만 보고 친구를 사귈순 없는거구나! 나는 또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했구나!" 통디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렷하게 알아차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한겨울의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쳤다. 앞을 보기도 힘들었고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맞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때면 제대로 날아갈 수가 없었다.
이런 날 하늘을 나는 새들은 거의 없다. 통디는 눈보라를 이기고 둥지까지 날아가려다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통디는 서둘러 둥지로 돌아가려고 날개를 펼치고 퍼덕거려 보았지만 날개가 너무 아파서 그만 비명을 질렀다. 조금 전 떨어질 때 다친 듯했다. 통디는 근처 덤불숲을 찾아 기어들어 가 엎드렸다. 좀 쉬어야 했다. 기진맥진했기 때문이다.
통디는 자신이 충분히 조심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너구리는 친절을 가장한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통디가 덤불숲에 있는 동안 날은 벌써 저물어 가고 있었다. 사냥꾼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면 날개를 다친 상태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통디는 덤불숲에서 나와 가만히 하늘을 관찰했다. 그러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조금 약해졌을 때를 틈타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저어 날아올랐다. 날개에 엄청난 통증이 왔지만 통디는 오직 둥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날개 짓을 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는 거야! 이게 내가 봄꽃 그리고 첫새벽과 약속한 거야!”
통디는 언젠가 첫새벽 수탉 대장이 들려준 말을 곱씹으며 힘을 냈다. 날개가 부러진다면 한순간 균형을 잃고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견뎌낸 통디는 마침내 자신이 둥지를 튼 거목 나무에 내려앉았다.
둥지를 찾아 기어 들어오자 날개가 부어오르면서 엄청나게 아파왔다. 그래도 다행히 둥지로 돌아와 날개에 머리를 묻고 쉴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곧 통증이 더 강해졌고 몸살이 와서 끙끙 소리를 내며 앓았다. 이토록 추운 날씨에 오히려 몸속에는 열이 나서 더워 죽을 지경이었다. 통디는 헉헉거리며 숨을 내쉬었다.
밤이 되었다. 잠시 잠이 들었던 통디는 꿈속에서 자신을 속여 굴로 데려가던 너구리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너구리는 통디의 날개를 물고 컴컴한 굴속으로 끌어들였다. 통디는 두 발로 힘껏 저항하며 굴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굴 안쪽에서는 머리에 뿔이 달린 작은 악마 같은 너구리 새끼들이 아빠 너구리가 사냥을 해 오기를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렇게 악몽에 놀라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를 밤새 반복했다.
새벽이 왔다. 통디는 멀리서 꼬깨요~ 하는 대장과 그 일행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장 첫새벽은 겨울에도 이렇게 통디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통디는 첫새벽을 생각하니 외롭지 않았다. 그 무리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따뜻함이 떠올랐다. 통디는 힘을 냈다.
통디는 며칠 동안 나무 위 둥지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목이 마를 때는 가지에 쌓인 눈을 조금씩 먹어서 목을 축였다. 또 가끔씩 예쁜 눈이 나뭇가지에 통디를 위해 가져다 놓은 작은 음식들로 간신히 버텨 낼 수 있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것에도 관심 가져 주세요.
# "따돌림, 네 잘못이 아니야" 출간과 따돌림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스토리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19
작가의 말: 아이의 성장과 치유에 초점을 맞추어 쓴 힐링 동화입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면 자연스럽게 성장에 필요한 마음들이 내재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성장하면서 아이들은 동화의 스토리를 삶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동화는 아이들이 필요한 때에 힘과 지혜와 통찰을 줄 것입니다. 엄마 아빠들이 읽어도 좋은 동화랍니다.
당부말씀: 이 동화에 사용된 그림은 무료 배포 가능한 그림이 아닙니다. 저작권이 있으니 무단 사용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