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치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스 Jul 14. 2016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받아야 할 상처가 있다

길가메시의 서사시를 읽으며 알아보는 자아의 성장단계와  상처들

<길가메시의 서사시>를 통해 한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어야만 하는 자아의 발달단계와 함께 상처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상처와 삶의 원형과 그길에 대해 수년전에 출간한 '상처와 아름다움'이란 책에서 미숙하나마 이미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받아야 할 상처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제 받는 상처보다 상처에 대한 기억과 또 상처를 피하려는 마음이 강박, 피해망상, 고통 및 상실 등 더 많은 질병과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주: '길가메시의 서사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로 수메르 남부의 도시 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Gilgaméš)의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이다.)


나는 근래 다시 이 이야기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내 직접적인 경험과 논리들이 아니라 <길가메시의 서사시>를 따라가며 알아보려 한다. 이것은 현실감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이야기란 본디 인간의 삶의 원형의 틀을 가지고 있다. 오래도록 전승되고 축적되어 온 이야기는 지혜롭고 핵심이 되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들이 덧붙여지면서 우리에게 삶의 길을 제시하는 지혜와 메시지들의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그것을 우리 삶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눈만 있으면 우리는 책과 이야기를 통해 얼마든지 삶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받는 상처란 아이를 죽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정신이 탄생되게 하는 자궁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고대에는 이런 개념들이 있어서 어린아이에게 행했던 할례라든지 성인 입문식이나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적 절차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주로 아이가 상처를 받고 고통을 견디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이 미개하고 잔인한 풍습 같은 것이지만 그때의 시각으로 지금을 보면 어린이들을 너무도 나약하게 키워서 험한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내보내는 것이 더 잔인할 수도 있다. 견디어 낼 수 있는 상처, 자아의 발달 단계에 맞춘 단계적인 상처들로 단련이 된 아이는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상처에 대해 대응능력이 생기고, 상처를 넘어설 힘을 갖추게 되고, 그 상처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알게 되고,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 내며, 새로운 생명을 출산할 뿐만 아니라 실로 위대한 일을 이루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 스스로 내적인 두려움을 이겨내고 덧없는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고 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을수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기도 하겠다.    


 '길가메시의 서사시'(범우사 출간)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부터 길가메시의 행적을 알리노라! 그는 모든 것을 알았으며 세상 모든 나라를 알았던 왕이다. 슬기로웠으며 신비로운 사실을 보았고 신들만 알던 비밀을 알아내었고 홍수전에 있었던 세상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었도다 그는 긴 여행 끝에 피곤하고 힘든 일에 지쳐 돌아와 쉬는 중에 이 모든 이야기를 돌 위에 새겼노라.'


어찌하여 길가메시가 모든 것을 알았으며 신비로운 사실을 보았고 신들만 알던 비밀을 알았다고 한 것일까? 단순히 이야기의 과장일까? 나는 길가메시의 상징을 따라 읽으며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았다. 이 서사시에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중요한 인간과 삶에 대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길가메시는 신들로부터 완벽한 몸을 선사받았다. '신들은 길가메시를 창조할 때 그에게 완전한 육체를 주었으니, 즉 위대한 태양의 신 샤마시는 그에게 아름다움을 주었고 폭풍의 신 아닷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그 외의 많은 신들이 그에게 거대한 들소처럼 강한 힘을 주어 보통 사람들을 능가하게 하였도다, 3분의 2는 신이요, 3분의 1은 인간으로 만들었도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길가메시는 우륵에 거대한 성벽과 담을 쌓고 대지의 신 아누와 사랑의 여신 시 타르를 위해 신선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가 있었다. 그의 강한 힘은 당해 낼 상대가 없었다. 그의 방종은 극에 달해 있었다. 우륵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길가메시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종을 울린다. 그의 방자함은 밤낮으로 끝이 없구나. 그가 아이들까지 모두 빼앗아 가니 아들이 아버지 곁에 나마 있질 못한다. 왕은 그 백성들의 목자여야 하건만 군인의 딸이건, 대신의 아내 건 가리지 않고 빼아 자기의색욕으 만족시키니 처녀들이 애인의 곁에 남아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바로 슬기롭고 관대하고 단호한 도시의 목자란다.'

 

신들은 이 호소를 들었고 하늘에서 신들은 길가메시에게 제2의 자아를 주자고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길가메시를 창조했던 창조의 여신 아루루에게 그의 제2의 자아의 창조를 부탁했다.


'오! 아루루여! 그대가 그를 창조하였으니 이제 그의 짝을 만들라!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그의 두 번째 자아가 되게 하라. 폭풍 같은 가슴엔 폭풍 같은 가슴으로 맞서게 하라 그들이 서로 만족하여 우륵을 조용하게 두도록.'


창조의 여신 아루루가 마음속에 아누의 형상을 그리고 진흙을 움켜쥐고 광야에 뿌리니 거기서 엔키두가 태어나게 되었다. 엔키두는 전쟁의 신 니루르타의 거친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거친 몸뚱이에 여자처럼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온 몸은 곱슬곱슬한 털로 덮여 있었는데 그는 순진한 인간으로서 문명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는 영양 떼와 함께 언덕에서 풀을 뜯어먹고 짐승들과 함께 물웅덩이에 숨어 지내며 짐승들과 장난치며 지냈다.

한 사냥꾼이 물가에서 며칠간 계속해서 엔키두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엔키두의 엄청난 모습과 힘을 보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엔키두는 사냥꾼이 동물을 잡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를 모두 메꾸어 버렸고 올무를 부수고 걸린 동물들을 놓아주었다. 사냥꾼은 길가메시에게 가서 엔키두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길가메시는 사랑의 신전에서 일하는 여성(책에서는 창녀라 나오지만 결코 창녀만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을 데려다가 함께 동침하게 하라고 했다. 그러면 동물들이 더 이상 엔키두를 가까이 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냥꾼은 여성을 데려다 엔키두와 함께 잠을 자게 했다. 엔키두는 여성과 함께 7일 밤낮을  함께 잤다. 그리고 엔키두는 동물들에게 돌아가려 했으나 동물들이 엔키두로부터 도망쳤다. 엔키두는 여인과 함께 있으면서 점차 인간의 삶과 문명에 대해 배웠다. 엔키두가 여성의 속삭임에 이끌려 도시로 향하면서 그는 점차 짐승 같은 모습을 벗고 멋진 남성의 모습으로 변모해갔고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목자들을 위해 사자와 늑대들을 잡아 죽여주기도 했다. 그때에도 길가메시는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를 먼저 겁탈하는 등 자신의 욕망과 힘을 마음껏 휘두르며 개망나니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앞에 엔키두가 나타났다. 그는 신부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길가메시를 가로막고 버티어 섰다. 둘은 힘을 겨루었다. 몸도 힘도 형태도 두 사람은 아주 비슷했다. 승부가 나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그리고 여인보다도 더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   


제1의 자아, '자존감'


길가메시는 강력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자아감은 너무 크고 강해서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여성들을 납치하고 제 맘대로 강간하고 있었다. 엔키두와 길가메시는 한 사람의 두 개의 자아적 측면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래서 엔키두를 두 번째 자아라고 번역된 책에서 언급했기에 편의상 길가메시의 강력한 자아를 제1의 자아라고 부르겠다.


아이는 태어나서 일정 기간 동안 기거나 걷거나 혹은 단어를 내뱉거나 숟가락을 쥐거나 혼자 손을 씻거나 걷기만 해도 "오냐, 오냐. 잘한다, 잘한다"며 보호받고 칭찬만 받으며 성장하는 시기가 있다. 이때 제1의 자아가 처음으로 형성된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잘 난 줄 알고, 그 무엇이든 해도 다 괜찮은 것 같다. 아이는 긍정적인 자아감을 바탕으로 마음껏 욕망을 키우고 호기심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조금씩 나에 대한 느낌을 구축해 가고 엮어가고 그리고 외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에 대한 느낌을 탐험한다.  사람들이 나를 어디까지 받아 주는지, 내가 어디까지 세상에 먹혀드는지 시험을 하며,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감을 튼튼하고 강력하게 형성해간다.

이런 자아감이 강력하게 형성되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때가 다르다. 어떤 이들은 아이 때에 형성이 되고 어떤 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미 형성된 채 남아 있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도 이런 자아감이 탄탄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갈등을 겪거나 고통을 받게 된다. 그래서 보통은 아이가 태어나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가기 전 까지는 최소한 자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되는 환경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의 자아감은 나약하거나 왜곡되거나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부정적으로 형성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아이의 자아감을 키워주는 이런 환경이 평생 바뀌지 않거나 너무 늦은 나이까지 이런 환경이 유지되는 가정 또한 큰 문제가 된다. 어떤 부모들은 이런 아이의 성격을 지켜주기 위해 온통 아이의 친구관계와 유치원, 학교를 헤집고 치마바람을 일으키며 다니는 경우도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을 괴롭히고 돈을 빼앗고 심지어는 은밀히 여성을 겁탈해도 오직 그것을 지켜주고 무마하기에 급급한 부모들이 있다. 이런 환경은 결국 아이를 성숙하게 변화하기 전의 길가메시처럼 괴물로 만들게 된다. 그 아이의 거대한 자아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세상을 파괴하고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첫 번째 상처, '자아의 제한'



모든 아이들이 받아야 할 첫 번째 상처가 바로 '자아의 제한'이다. 올바른 방향을 향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자아감을 제한당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길가메시는 왕으로서 강력하고 거대한 자아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우리 일상에서 아이를 키울 때 역시 드러나는 것은 크나 작으나 거의 같다.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에게 '힘의 절제와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교육이 무조건 주어지면 아이는 자아감 형성이 미약해진다. 그러나 아이가 나이가 많을 때에는 매우 힘들고 쉽지 않게 된다. 언제 어떻게 이런 힘의 절제와 욕망을 다스리도록 가르쳐야 할지 참으로 때를 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필요가 있을 때, 아이와 타인 혹은 집단 간에 그런 요구가 발생될 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강력한 자아감은 이 세상에 사실 대적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누구의 자아감이든 한번 형성되면 자기가 왕이고 신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강해진 자아감은 더더욱 강해지고 커지려는 관성을 갖게 된다. 이 자아감은 쉽게 오만에 빠지고 쉽게 길을 잃는다. 이것이 정말 적당한 때에 그 힘의 고삐를 쥐지 못하면 큰 문제가 된다.


제 1의 자아인 자아감은 1차원적이다. 모든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며, 자기의 욕망의 발현과 충족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이런 자아감에만 붙잡혀 있게 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거나,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중요한 자리에 있으려고 하거나 대중의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언제나 그 한 몸에 다 받으려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을 통제하려 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전혀 느끼거나 배려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온 세상 사람들을 희생시키려 할 수도 있다.  제 1의 자아감만 발달하게 되면 지나치게 이기적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우울한 사람이나 명랑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어린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모두 이 자아감으로 가득 차서 여유 공간이 거의 없게 된다는 것이 특성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렇게 자신과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수많은 왕들과 지도자들을 보아왔다. 왕이란 강력한 자아감의 상징이다. 정치나 경제계에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강력한 자아감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자아감은 리더십을 발휘하게 해서 힘을 모으고 이끌어가고 성과를 내는 데는 매우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신들은 모여 회의를 하고는 길가메시의 날뛰는 자아를 길들이기 위하여 너무도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그것은 길가메시의 제2의 자아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제2의 자아는 특성상 자아감보다 뒤에 발달한다. 그래서 엔키두 또한 나중에 창조되는 것이다. 제2의 자아는 제멋대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자아감에 제동을 걸고,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하고 자아감에 충천한 에너지를 올바른 목표로 향하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신들이 내린 결정이라고 하는데 실로 완벽하다. 자신 안의 에너지와 자아감을 올바로 제어하기 위해 신들은 그 안에 또 다른 제2의 자아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길가메시의 서사시가 세상 모든 비밀을 밝히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것으로 끝나기 때문이 아니다. 제2의 자아를 넘어서 인간의 자아가 계속해서 출현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자아의 출현이지만 그것은 본래 자아와 하나이고 또 다양하게 분화 발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신들만이 알던 신비로운 지식이며 세상의 모든 비밀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느 날 길가메시는 늘 그래 왔듯이 혼인 후 첫날밤에 신랑을 기다리는 방에 먼저 들어가 신부를 취하려 하고 있었다. 자기가 왕이기 때문에 그게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는 힘으로나 권력으로나 재력으로나 그 누구도 자기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자아감이 쉽게 저지르는 폭력이다. 그런데 이때 제2의 자아를 상징하는 엔키두가 나타나 그를 가로막고 선다. 이렇게 제1의 자아감이 꺾이고, 가로 막히고, 작아지는 것이 삶의 큰 흐름 속에서는 첫 번째 상처이다. 이 상처를 통해 내면에서 성숙한 두 번째 자아가 그 상처의 찢어진 곳을 자궁 삼아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제2의 자아의  출현.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특성'


제2의 자아는 자기 자신을 단독으로 잘난 존재가 아닌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제2의 자아는 제1의 자아보다 시야가 훨씬 넓다. 그것은 관계와 관계의 영향을 보고 흐름을 본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나와 타자의 얽힘을 본다. 그래서 제2의 자아는 타인의 아픔을 느끼고 공감하고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자아는 집단에서 선하게 드러나게 되고 보다 지혜롭게 된다.


엔키두가 동물들과 함께 지내던 원초적으로 순수하던 시절에 그는 이러한 제2의 자아로서의 특성들을 일깨웠다. 동물들과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적인 모습과 문명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깨우쳤다.엔키두는 무엇보다더 처음부터 관계와 관계속에서 배워나갔던 것이다. 또한 모험을 하게 되면서 그는 길가메시의 꿈들을 풀이해주고 중요한 조언을 하고 하늘황소를 죽일 정도로 지혜로움을 드러낸다.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의 두 번째 자아는 부모와의 관계나 성장 환경과의 관계에서 주로 자라게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읽기를 통해서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몇 살에서부터 몇 살까지 제1의 자아가 자라고 그다음 몇 살에서부터 몇 살까지 제2의 자아가 자라는 식으로 구별이 되면 참 좋고 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사실 함께 자란다. 다만 어떤 자아가 주가 되는 시기는 분명히 있다. 물론 모든 아이마다, 그리고 모든 성장 환경마다 차이가 있고 변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자란 사람과 어린 시절 책을 읽고 자라지 않은 사람은 금방 구별이 된다. 어려움이 생겼을때 대처방식과 이겨내는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책은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통해 가장 중요한 제1의 자아감을 형성해준다. 그리고 또한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와 관계 그리고 갈등과 환경들 변수들을 보면서 제2의 자아감의 특질을 형성해준다. 그래서 어린 시절 책을 읽은 아이들은 논리적 사고에 훨씬 강하고 다양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또한 나이 때마다 맞는 또래 관계들을 통해 아이들은 제2의 자아감이 형성된다. 또래 관계들의 놀이 때에는 제 1의 자아감은 조금 작아지지만 오히려 내면으로 이동하여 단단하게 중심이 되고 드러나는 주된 자아 감이 제2의 자아감이 된다. 그때 그들은 친구를 위해 물러설 줄도 알고, 함께 아파할 줄도 알며, 자기 것을 내어줄 줄도 알게 되고, 상처를 받을 줄도 알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2의 자아감을 공부나 수행 명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나간다. 제2의 자아감이 부족할 때는 사회성 또한 매우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제2의 자아가 미 발달되고 자아감만 강한 사람들은 쉽게 괴물이 되거나 사회적 관계를 잃어버리고 결국 자기 안에 고립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자아감에 붙잡혀 사는 존재다. 수많은 명상 수행자들은 이 자아감을 벗어놓고 내려놓기 위한 수행을 해왔고 이 자아감이 벗어질수록 더 차원 높은 시야가 열리고 자기해방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또 이야기가 말해주는 그대로 우리는 한가지 메세지를 더 얻을수 있다. 길가메시에게 엔키두가 제2의 자아였듯이 우리가 만나는 친구 혹은 경쟁자 등 함께 하는 타자는 우리의 제 2의 자아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우리의 자아감은 조정받는다. 자아가 거대해질때 어떤 타자는 우리의 자아를 제한하거나 혹은 때리기도하고, 자아가 약해질 때 어떤 타자는 우리의 약한 자아에 힘을 불어넣어 세워주고, 자아가 길을 몰라 헤멜 때 어떤 타자는 삶의 실마리를 던져주거나 혹은 위기를 함께 하기도 한다. 실로 이야기 그대로 타자는 우리의 제 2의 자아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이것은 이 길가메시의 서사시가 말해주는 위대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ps. 1편은 여기서 마칩니다. 2편과 3편이 계속됩니다. 2편에서는 제 3의 통합자아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     

[추천 서적]   

'자기 미움'  

-가장 가깝기에 가장 버거운,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 책은 바로 자아감에 대한 책입니다. 나약한 자아, 연약한 자아, 우울한 자아, 고통스러운 자아, 미발달 한 자아, 아직 온전히 자신을 펼쳐내고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자아를 작가는 빛나는 눈으로 통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아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따듯한 자아로 성장하게 하는 마법을 부립니다. 심리서적에 관한 한 가장 빛나는 통찰과 실제적인 도움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 이경희님]




[추천서적 2]

재투성이에서 꽃피다. [저자 이시스]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성은 어떻게 성장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게 되는지 여성적인 삶의 원형의 길을 밝혀 놓은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06493 




 

       



매거진의 이전글 평화롭고 발전적인 관계 맺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