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집단무의식:집단의 부정적 에너지 분출구.

집단 무의식을 통해 보는 따돌림 2

by 이시스

따돌림은 집단에 오랫동안 쌓여 왔던 부정적 에너지의 분출구이다.


따돌림은 집단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희생자로 지목된 한 개체를 함께 고립시켜 점차적으로 그 생명 현상을 말살시켜 가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는다. 그 한 개인의 잘못이나 실수와는 관계없이 희생자로 지목된 자를 그 집단에서 없애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따돌림은 그 한 개체의 고유한 모든 권한을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부수며 부정적 에너지를 쏟아 붓고 또한 가능하면 희생자 안에서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내려 애쓴다.

집단의식과 집단 무의식의 방향성에 강력한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진 몇몇의 의도에 의해 집단은 한 사람을 도태 내지 살해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게 되는 것이다.


가해자와 그 그룹 구성원들은 무의식적으로 더 크고 더 어두운 힘에 접속되어 어둠의 부정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진다. 이는 마치 자신의 발로 늪으로 걸어 들어갔지만 들어간 후에는 늪이 그를 끌어들이는 것과 같다. 개개인에게는 억눌려왔던 부정적 에너지가 있고 스트레스와 열등감과 상처가 있다. 그 부정적 에너지가 침전된 집단 무의식은 그 집단에 가장 취약한 곳이나 만만한 곳을 출구 삼아 분출되어 나오려 한다. 그때 가해자들은 그 에너지를 희생자에게 쏟도록 유도하고 길을 터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따돌림은 집단이나 그 그룹에 오랫동안 쌓여 왔던 부정적 에너지의 분출구로서 희생자를 사용하게 된다.


2015년 7월에 경기도 모 대학교수가 제자를 폭행하고 가혹행위를 일삼고 인분을 먹인 사건이 보도되었다. 그는 후에 자신이 악마에 씌운 것 같다는 변명을 내놓아 빈축을 샀는데 어떤 의미로 보면 그것은 사실이다. 그는 교수임에도 폭력이란 우월한 힘에 도취되어 다른 제자 2명과 함께 힘과 권력으로 희생자를 압도하고 마음껏 폭력의 쾌감을 분출했다. 그는 부정적 힘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이는 흡사 고대 원시문명에 있었던 야만적인 인신공양(집단의 안위를 빌기 위해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제사)이 현대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그 자신 안의 불행한 부정적 에너지의 분출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돌림은 그 자신 안의 부정성 해소를 위해 타인을 대신 희생시킨다는 측면에서 고대의 집단 처형과 인신공양의 현대판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땅속에 마그마가 움직이고 맨틀이 움직이며 지각이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어떤 압력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 마그마가 산줄기를 타고 올라와 화산을 터트리게 된다. 이는 오랫동안 땅속에 서 크고 작게 쌓인 압력을 분출하는 것이다. 화산은 인간과 그 주변 환경에는 재앙이지만 더 큰 의미로 보면 이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비록 화산이 터지는 그 주변에는 재앙이 된다 하더라도 그 분출로 인해 지구의 지각 자체가 안정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에서 일어나는 따돌림 역시 그와 같은 성격으로 일어난다. 가족에는 가족의 내력을 통해 쌓여오고 왜곡되어 온 에너지 즉 스트레스가 있다. 학교에는 학교대로, 직장은 직장대로, 군대는 군대대로 모두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축적된다. 개인의 생각과 의식 그리고 인지력이 억눌러지면 더욱 강력한 규율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축적하는 곳에서는 더욱 강력한 사건이 일어난다.


인류 문명사에서는 고대로부터 집단적으로 드러나는 이런 부정적 집단의식의 정화의식으로서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제사나, 잔치, 굿 종교 의식, 단합을 위한 놀이 문화나 축제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의식들이 많이 있었던 시절에 사람들의 성정은 순했다. 타인을 해침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오늘날에도 국가적으로 많은 축제와 의식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가난해도 행복지수가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학교단위 마을 단위 등의 이런 정화의 기회를 주는 축제나 놀이 등은 거의 다 사라지고 거의 무대나 영화 속에서 관람만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집단에서 부정적 의식의 정화를 위한 장치들은 거의 다 뿌리 뽑히고 사라졌다. 아이들 조차도 공부에 내 몰리며 놀이의 기회를 잃고 있다.


집단에 쌓인 부정적 에너지가 건강한 의식을 통해 배출될 때 그것은 사회 운동이 되고 문화운동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극도로 억눌러지거나 깨어있지 못한 무의식적 행동을 통해 나타나게 될 때는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희생하는 희생제의로 간다.


2002년 월드컵 때 세계를 놀라게 하고 또 한국을 놀라게 했던 것은 응원의 열기였다. 거리마다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두건을 두른 사람들이 넘쳐났고 골목 곳곳마다 삼삼오오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으며 장난기가 심한 사람들은 지나가는 얌전한 얼굴의 사람들을 붙잡고는 그가 함께할 때까지 두손을 높이 들고 대한민국! 을 외쳤다. 인사동을 지나가다가 나와 함께 가던 점잖은 선생님도 어떤 아가씨에게 붙들려서는 한동안 대한 민국을 따라 외치고 가야 했다. 오픈카에서 맨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행진하는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행렬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때 대한민국은 해방구였다. 해방의 기운이 거리 골목 집집마다 넘쳐났다. 어른들은 이 현상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겨우 월드컵 4강이라는 것 때문에 이 정도로 나가라 들썩 거리는 것이냐! 고 했다. 그런 응원 열기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응원 열기가 아니었다. 축제와 잔치 제례 등 집단정화의식을 잃어버린 한국인들에게는 그 무의식에 쌓여왔던 에너지 분출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 단순한 축구 경기를 그렇게 사람들은 축제로 승화시켰다. 다시 그와 같은 축제가 최소 1년에 한 번씩은 전국적으로 개최되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에너지 배출에 대해 정부와 어른들은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것이라고 느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막아댄다.


우리의 월드컵 응원은 무의식에 쌓여온 스트레스를 좋은 기회를 통해 건강한 의식으로 건강하게 배출한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의 부정적 에너지 배출의 역사로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인류사에 있다. 이 또한 희생제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 사건은 아직도 온전히 해석되어지지 못한 채 온 인류 의식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거대한 집단의식이 순수한 한 사람을 표적으로, 그 집단과 나라에 쌓인 부정적인 에너지를 해소한 사건. 그리고 개인적 측면으로 보면 민족, 국가가 한 인간을 따돌림 한 사건이다. 나는 이 사건을 따돌림의 한 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에는 따돌림에서 일어나는 주요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나는데 바로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의 사건이다.


왜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죄를 대속했다고 주장하는 걸까? 바로 예수라는 순수의식에게 그들의 집단 무의식의 부정성을 분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류는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 이 부분은 4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는 따돌림 편에서 자세하게 해석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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