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을 뒤집으며 산을 달려 내려온 바람.
방앗간을 다녀오는 동네 할머니 품에 와락 안겨든다.
아! 오늘은 바람이 좋구나!
그러나 바람은 담장 앞 장미꽃 앞에서
멈추어서 잠시 장미를 안아준다.
그리고 이내
처마 밑의 쇠 물고기를
딸그랑 딸그랑
허공 속에서 마구 헤엄치게 만들다가
마당을 빙빙 돌고 있다.
아무래도 할 말이 있는 듯
다시 장미 앞에 서서
장미 이파리 속에 가시를 조심조심
어루만진다.
아무리 안아 주어도
밖으로 터져 나온 가시
바람은 매년 5월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래도 ,
꽃은,
언제나
누군가를 만날게 될 때는
자기 안에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갖고
만난다.
바람조차
다 안아주지 못한
자기 안의 아픔들이
솟아 나 있어도.
그래도
장미는
언제나
자기 안에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갖고
누군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