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아이들의 초기 의식을 그리고 평생의 무의식을 형성한다. 또한 이야기는 삶의 구조를 아이들의 의식에 짜 넣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이들이 읽거나 듣게 되는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한 개인 개인을 이어주고 엮어주어 그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것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공통의 이야기는 무의식적으로 공통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을 만든다. 어떤 문화나 문명의 바탕에는 반드시 공통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그 이야기의 확대 재생산 그리고 재해석과 가지 뻗기를 통해 문화나 문명이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공통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은 쉽게 공감하고 서로가 같은 처지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오늘 아침에 문득 서양인들의 동화가 몇 편 생각났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두 자매, 잭과 콩나무,....
이 동화들은 주인공이 모험을 하던 중에 남의 보물을 발견하고 훔쳐와서 부자가 되는 내용이다
알리바바는 도둑의 보물을 훔쳤고(도둑의 것은 훔쳐도 괜찮다)? 잭은 하늘나라 거인의 황금알을 낳는 닭을 훔쳤고(게으르고 어리석게 살았어도 크고 무서운 거인의 보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두 자매 이야기에서 한 자매는 마녀의 보물을 훔쳤다.(착한 자매는 보물을 훔쳐내고 못된 자매는 혼나기만 하고 못 훔친다?)
내용이 너무도 그네들의 역사와 닮아있다. 그들은 상대방이 나쁘다는 규정을 할 수 있다면 세상 그 어떤 것이든 훔쳐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원주민들의 땅을 훔쳐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지금은 세상의 부와 재물을 훔치고 있다. 그들에겐 그게 부를 쌓는 방식이고 자랑스러운 특권을 누리는 삶의 방식이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주 게으르게 살다가 타인의 보물을 훔쳐 한 번에 부자가 되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
서양인들이 무의식의 기저에 흐르는 이야기는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 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본주의라는 현대 문명을 만들어 내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부자가 되고 보자는 스토리가 그네들의 무의식의 스토리였다. (돈을 잘 버는 이를 그들은 현인이라고 부른다. 워런 버핏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주식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었기에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칭해진다. 동양에는 오직 돈을 많이 잘 번다는 이유만으로 현인이라고 칭해지는 예는 거의 없다. 반면 동양의 현인은 돈이나 재물 명예를 멀리하고 검소하게 살며 집단 전체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쓰는 이를 현인이라 칭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 동화에도 그렇게 대놓고 뻔뻔하게 훔쳐 부자가 되는 동화가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우리 동화는 대개가 필요한 게 있으면 온갖 고생을 다하며 노력과 정성으로 저승까지 가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이야기다. 바리때기 이야기, 심청전, 콩쥐팥쥐, 오늘이, 자청비 등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노력하고 애쓰는 착한 마음씨에 감복한 초인이나 초월적 힘에 의해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선녀와 나무꾼이나 해님 달님 등이 그렇다.
확실히 우리나라는 이런 이야기가 민중들의 의식의 저변을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었다고 느껴진다. 고통을 참고 해법을 찾기 위한 모험과 여정 후에 해결이나 승화의 이야기다. 서양인들의 무의식에 공통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 였다면 우리 한국인의 무의식에 공통으로 흐르는 이야기는 "참고 노력으로 해결에 도달한다, "는 것이다. 대다수 민중들은 참음으로 삶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왔다. 지금도 노동시간이 전 세계에서 가장 길다든지 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잘 감수하는 이유가 그 스토리 때문이다. 한국인의 참음, 인내는 산업과 정치 그리고 집단 생활과 개인의 삶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고 노력하라'는 스토리 이전에는 "어떻게 나 한 개인이 아닌 집단을 위해 일할 것인가?" 하는 스토리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장에서 하겠다. 물론 내가 느끼고 감지하는 스토리 이외에 수많은 스토리들이 더 있을 수 있다. 스토리는 시대의 필요에 따라 변하고 새로 생성될 것이다.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현대에는 어떤 동화를 읽혀야 할까? 대놓고 좋은 게 있으면 훔쳐라!라고 가르치는 서양인들의 동화 잭과 콩나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을 아무런 생각 없이 읽혀야 할까? 이런 이야기들이 들어오면서 자본주의가 들어오고 우리 한국인의 무의식에도 점차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추구하는 스토리가 점자 커져가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동화를 쓰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삶의 얼개를 짜는 것과 같다. 새로운 동화가 필요하다. 부자가 되는 이야기나 참고 인내하는 이야기, 슬프지만 맑은 마음으로 가난을 받아 들이며 사는 것을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 줄 열매나 씨앗일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가 될까? 자본주의를 넘어서 전체 생명에 봉사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될까? (오! 이건 인디언들의 스토리 구조가 아닌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선과 악이 만나 서로 싸우는데 끝내 선이 악을 이기는 봉건시대의 이야기가 다시 돌아올까?
누가 다음 세대를 위한 동화를 쓰고 그 동화를 기꺼이 아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펼쳐 줄까?
어찌되었든 새로운 삶의 구조를 마음에 간직한사람들이 동화를 쓰고 또한 책으로 펴내야 하는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