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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스 Nov 06. 2015

부자 아빠와 공주, 그 다음은?

동화 속에서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바로 부자 아빠를 통해서다.


신데렐라의 고통스러운 삶은 바로 왕자를 만남으로서 끝을 맺게 되는데 왕자는 곧 왕의 아들이기에 신데렐라의 구원은 부자아빠(비록 시 아버지지고 동화에 등장은 안 하지만)를 만남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구조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모든 아이들이 읽는 고전동화 속에 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백조왕자 등 모든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떠 올려 보시라.


어느 때 우리의 현실에서도 부자 아빠 열풍이 불었었다. 모두들 "부자 아빠"를 갈망했다.  아빠 스스로도 자기 아이에게 부자 아빠가 되어주고 싶어 했고, 건방진 아이들은 가난한 아빠를 대 놓고 타박했다.  "부모가 되어서 마땅히 해 주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부자 아빠에 대한 갈망이 주식열풍의 시류를 타고 한창 일어났다. 주식 투자해서 크게 돈 벌어 부자 아빠가 되게 해주겠다는 식의 책들이 나왔고 광고들이 난무했다. 저마다 부자 아빠가 되어주고 싶고, 부자 아빠를 갖고 싶을 때 였다. 물론 그 후유증으로 깡통계좌가 속출했고 평생 모은 돈을 한순간 잃어 버리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배경이 한참 익어갈 때 다음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강력한 대선 후보는 이명박,


야당에서 물론 강력한 후보가 없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온갖 비리와 정직성과 윤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이명박이 단지 대기업에서 기업을 이끌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가 자기들을 부자가 되게 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것은 사람들 마음속 단지 부자아빠에 대한 투영이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어린시절부터 축적되어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결국 무의식에 흐르고 있는 그 이야기를 건드리는 사람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이성, 합리성 옳고 그름등 중요한 가치를 판단하여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그렇다. 대선에서는 분명하게 더 강력한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이긴다.      


결국 똑똑한 사람은 바로 알고, 좀 아둔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알 것이다. 부자아빠 열풍이 주식으로 인한 깡통계좌와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모아 놓은 돈을 잃고 다시 뼈 빠지는 노동으로 되돌아 가게 했듯이 이명박 정부하에서 대다수 서민들은 얻은 게 없고 만져보지도 써보지도 못한 엄청난 국가적 부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다음 박근혜


그녀는 누구나 다 알듯 "공주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건드렸다.

동화에서 가난한 남자 주인공은 공주를 구해주고 신분 상승을 한다.

공주를 구해주고 결혼과 왕국의 계승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러나 박근혜는 신분상승에 대한 이야기보다 엄마 아빠를 비명에 잃고 왕궁을 쫓겨난 가엾은 공주에 대한 연민을 건드렸다. 수많은 아줌마들은 가엾은 공주에 대한 연민으로 표를 주었다. 아저씨들은 가엾은 공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표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궁을 쫓겨난 연약하고 아름다운 공주, 한없이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공주가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왕궁에 컴백해서는 더 이상 공주가 아님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여왕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여왕과 공주는 다르다. 공주는 권력의 희생자지만 여왕은 권력을 휘두르는 장본인이다.

많은 경우 권력을 가진 여왕은 둘 중 하나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자와 원형.

그림자 여왕은 자신을 왕궁에서 내 쫒았던 모든 시절들에 대한 원한을 되살려 복수한다.

그리하여 왕궁을 환란과 고통에 빠트리고 나라를 어둠 속에 빠트리는다


다음은 어떤 스트리가 건드려질까?

어떤 지도자가 어떤 스토리를 건드리며 나올까?

아직까진 스토리를 가진 대권후보가 없다.


문재인은 아직까지 드러내는 스토리가 없다. (문재인을 보면 나는 충실한 집사나 머슴의 모습이 겹친다.

국민들의 리더로는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이 없지만 실상 국민들은 자기들을 충실하게 섬겨줄 머슴이나 하인의

이미지를 리더로 선택하기  어렵다. 리더는 곧 지도자고 지도자는 자기들이 섬길  사람이기에.... 왕이나 여왕 공주나 왕자 혹은 영웅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봉건시대의 스토리가 아직까지 어린 시절부터 읽히는 한 이것이 어떻게 바뀔까 싶다. )

 

안철수, 잠시 구원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대선후보에 대한 상당한 지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정치에 대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정치라는 복잡한 생태계에서 자기 스토리를 드러내고 대중의 무의식의 스토리를 건드리며 그 스토리 위에 우뚝 서기엔 아직 시기가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아직 한국의 정치 구조를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정치 구조는 그의 성격이나 그의 내면에 잠재된 스토리와 사실 맞지 않다. 그는 그 내면의 스토리를 보다 웅장하게 펼쳐내기위해 필연적을 한국의 정치구조를 자기내면으로 받아 들여 소화해내야만 한다. 나는 초기의 그의 모습에서 초월적인 신성한 구원자의 스토리를 읽었다.    


노무현은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스스로 자기 스토리를 만들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비상한 노력으로 성공하여 가난하고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을 대변하고 돕는 영웅으로서의 자기 이야기를 펼쳐내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건드려졌고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반대당에서는 이 스토리가 너무도 못 마땅했고 그들은 모든 힘을 다하여 그 스토리를 깨트려 이미지를 가짜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을 비하했고 가볍다는 식으로 몰고 갔으며 등신이라든지 하는 말을 언론을 통해 흘러 내 보냈다.)  결국 그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영웅으로서의 그의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 나서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긴가 민가하고 있었다.   


참고로 말하면  훌륭한 대권 주자의 모습을 보이던 한명숙,

온화하고 합리적이며 안정적인 정치력을 보여주던 그녀에게는 타락한 범법자의 이미지를 씌웠고, 유시민같은 거대 지성에게는 "싸가지 없는, 막돼먹은," 같은 이미지를 씌워 그들의 스토리를 박살내는데 성공했다.  


이재명,

 다시 노무현과 같은 원형적 영웅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역시 앞에는 스토리가 같다. 가난한 서민의 아들로 자기 힘으로 성장해서 가난하고 억울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영웅 그리고 여기에 강력한 전사의 이미지가 더해져서 스토리가 매우매우 흥미로워지고 있다. 불의와 부정 그리고 매국노 척결이라는 강력한 스토리가 하나 더 해지고 있다. 이것은 시대적 사명이자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스토리로 나아갈 것인데 그가 대통령이 되고 이 스토리가 현실로 드러나면 그는 이는 또하나의 강력하고 멋진 역사적 스토리가 될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스토리가 스토리를 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걸까? ^^ 결국 남는것은 스토리뿐이니 스토리가 알맹이가 아니고 뭐겠는가 싶다. )   


언급 안하고 넘어가니 섭섭해서 자꾸 다시 들어와서 본문글을 수정하게 된다. 현 서울시장 박원순이다.

난 아직 그의 스토리가 뭔지 모른다. 그는 아마도 무의식적 스토리에서 깨어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선택할 리더가 아닐까 싶다.

물론 무의식적 스토리를 걷어낸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대중들이라면 그들은 심상정이나 노회찬 유시민 같은 신화를 걷어내고 오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끌어 가는 그런 이들을 선택할 것이다.(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대다수 민중은 마음속 신화, 이야기에 붙잡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다. )   

 

다음 대선에선

스토리적 측면에선 아마도 반기문이 사람들의 무의식의 스토리를 건드릴 것이다.

그 역시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의 아들로서 성장하여  모험의 여정을 통해 먼 나라에서 성공과 명예를 거머쥔 영웅적 신화로서 사람들의 무의식을 건드릴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이 영웅적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반기문이나 이재명이 혹은 또 다른 누군가를 선택 할때,

이 영웅은 누구를 위해 싸워주는 영웅인가?  원형인가? 그림자인가? 진짜 영웅인가? 간웅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림자 영웅 즉 간웅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싸우는 한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는 교활한 처세술을 활용할 것이고 서민들이 정의를 소리 칠 때 입 다물 것이고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아부할 것이고 권력과 힘을 가진 후에는  잔인해질 것이다.


간웅이란 고통과 책임은 서민들에게 분담시키고 자신들의 안보와 이익은 서민들의 희생위에 세우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서민을 위한 정책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뿐인 보이시 피싱에 걸려들지 않을수 있어야 한다.

 

원형적 영웅이야 말로 자기 자신과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이 아닌 집단 전체를 위해 나선다. 자기 자신과는 아무런 이익관계가 없는 대다수 서민을 위해 때로 오해받더라도 때로 미움 받더라도 그는 외치고 소리치며 일어난다. 그는 위험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고통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원형적 영웅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 그가 다시 오면 우리는 우리 자기 내면의 온갖 불행과 열등감을 투사하여 끝내는 그를 죽음의 골짜기로 내몰 것이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 것이다.


현재의 여당은 스토리의 위대함을 알고 있다. 야당은 스토리에 대해 무지하다 못해 멍청하다. 그들은 늘 왜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여당은 언제나 스토리를 만들고 또 장악한다. 그들은 부정부패나 청렴지수보다 더 스토리가 있는 자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정치를 위한 전문성보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고 두각을 드러낸 사람들을 영입하는데 열성이다.

이제는 여당 자체에 입당하는 것만으로 그들은 스토리를  부여받는다. 사람들은 그 당에 입당한 사람들에게 미다스의 손과 같은 스토리를 부여한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투영한다.그래서 그들에게 표를 준다.


또한 그들은 스토리를 생산하고 퍼트리는 강력한 미디어의 중요성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해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그들의 스토리 욕심은 끝이 없다. 그들은 이제 역사라는 집단의식/ 무의식과 관련된 강력하고 거대한 스토리를 장악함으로써 그 집단에서의 영생불사를 꿈꾸고 있는 것 처럼 보여진다.   



이건 무의식에 흐르는 스토리와 현실에 드러나는 이야기를 다분히 주관적으로 상상의 결합을 통하여 쓴 글이며 이 글에서 언급되는 어떤 동화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며 언급된 사람 역시 그렇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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