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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스 Dec 26. 2015

갠지스강의 시원을 찾아 갔던 길..

인도. 내 야생의 경험 3 

지금 생각해 보면 야생이란 인류 공통의 정신과 같은 것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문명생활이 삶에서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알려면 야생으로 가야 한다. 야생에서는 모든 화장과 겉치레를 벗고 생명이란 있는 그대로의 것에 가능한 가깝게 되기 때문이다. 야생은 삶의 원형적인 것들과 마주하게 한다. 사랑. 신비체험, 자기 자신과의 만남, 자기탐구, 동지애 혹은 인류애, 조건 없는 생명에의 사랑, 생명에의 용기, 죽음과 상실의 두려움 그리고 각종 속임과 거짓을 통한 진실에 눈뜨기  등... 이런 것들과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게 된다.     


20대의 내가 인도라는 야생을 여행하면서 그런 모든 것들을 마주 했었던 것 같다. 그것들은 학교나 학교 선생님은 결코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학교를 벗어나서 정말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학교에서는 오히려 이 배움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알파벳을 배우는 곳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의 배움은 결코 삶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는 전부일 수  없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 모든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 이렇게 그 여행을 다시 바라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것은 여행 후 20여 년이 지난 후이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경험했던 모든 야생의 날것들이 이제 내 속에서 다 소화되고 내 것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여행 중에는 그저 여행을 왔으니 움직였다. 해야만 하는 의무나 책임 혹은 타인의 눈치라는 게 여행에는 없다. 그래서 어느 장소에서든 그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고달프고 지갑이 점점 얄팍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가만히 머무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나는 자력으로, 스스로 내면에서 동기를 만들어 아주 천천히 느리게 움직였다.(동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가면 글이 너무 길어지지므로 다른 장에서 다시 하겠다.)  


이제야 나는 여행이란 진실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여행이란 진실로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고 동시에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공유하고 그로부터 삶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인도 델리에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힌두의 성지인 하르드와르 그리고  비틀스가 다녀갔다는 리시케시를 지나 히말라야까지 가는 길이었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는 물이 갠지스강의 시원이 된다는 강고트리까지 올라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기억 속에서는  델리에서부터 강고트리까지 버스로 약 9박 10일쯤은 간 것 같다.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달리고 저녁이 되면 숙소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또 그 버스를 타고 달리기를 몇 날  며칠을 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버스로 하루면 다 도착한다. 버스로 이렇게 길고 먼 거리를 가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가니 두뇌에 지금까지 설정되어있던 거리감에 대한 한계가 깨졌다. 나는 도시로부터 너무너무 멀리, 어쩌면 세상 끝까지 가고 있는 것이어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 오르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한국에서 작은 거리를 다녔고 그 작은 거리에 만족했고 그것도 위험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해서 움츠리고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버스는 점점 높고 까마득한 산길로 올라갔다. 버스는 앞 유리창이 깨지고 백미러가 없고 앞자리에는 운전석에서 튀는 기름이 얼굴에 묻기도 했다. 길은 외길이어서 마주오는 차가 있으면 비켜갈 수 있는 공터가 나올 때까지 후진을 해야 했는데  백미러가 없음으로 차장이 서서 뒤를 보며 손으로 차를 두들겨 운전사에게 신호를 했다. 길 아래로는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강이 보이는 까마득한 천 길 낭떠러지가 보였다. 


그렇게 어느덧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다. 산에서 눈 녹은 강물이 흘러내리고 강 건너에는 몇 개의 로지가 있었다. 그리고 강고트리를 가는 여행객들이 내렸다. 오후의 햇살은 화사하고 따뜻했고 로지들은 아늑해 보였다. 나는 강가 근처 로지로 가서 방 있냐고 물었다. 빈방을 얻어서 값을 치르고 배낭을 방안에 내려놓고 강가로 나왔다.


 강가에는 간혹 명상 수행하는 요기들의 움막이 보였다. 요기들은 오렌지색 승복을 입고 몇 년간 기른 머리를 배배 꼬아 묶거나 풀어놓고 이마에는 재를 바르고 나사처럼 빙글빙글 돌며 자라난 긴 손톱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떤 요기가 용케 그 손톱 아래에 과도를 쥐고 사과를 깎아서는 지나가는 나에게 한쪽을 내밀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거절했다. 히말라야에서 요기들이 내미는 음식이나 차를 마시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특정한 약초에 대한 비법들이 있어서 그 약초들을 넣거나 우려낸 물로 사람을 며칠간 잠들게 할 수도 있고 가사상태에서 명령대로 움직이게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간혹 보면 요기들의 움막에서 요기와 함께 담배 같은 (어쩌면 마약일지도 모를) 그런 것을 피우는 일본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거기까지 넘어갈 용기는 없었다. 


강가에 앉아서 차고 맑은 물로 얼굴과 손발을 씻고 저녁 햇살을 즐겼다. 그런데 깊은 산속이라 금세  해가 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어둑어둑해졌다. 나는 로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벌써 어두웠다. 불을 켜려고 스위치를 찾았는데 스위치가 없었다. 순간 허걱! 하고 마음이 기우뚱했다. 불이 없으면 일단 문이라도 잠가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문 근처에 고리를 더듬으니  문고리도  잠금장치도 없없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까마득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소리쳐 불러서 촛불이라도 달라고 하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곳은  델리에서 10일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이고 경찰은 물론 그 어떤 보안도 없는 곳이다. 누가 나를 죽여서 땅에 묻으면 아무도 찾을 수 없고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없는 곳이다. 외국 여행자들이 여행 경비로 가지고 다니는 돈은 인도 서민들이 수년은 쓸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 내가 혼자서 불도 없고 잠금장치도 없는 방에서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게 하는 것이 더욱 위험한 일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잠금장치도 안 되는 어두운 방에서 그냥 혼자 견디기로  마음먹었다. 초저녁인데 벌써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사방은 쥐 죽은 듯 적막하고 고요했다. 강 건너 다른 로지를 보니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 자가발전으로 전기를 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묵는 로지는 아예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처음 인도 여행을 왔을 때는 가이드에 따라 온갖 준비물을 다 가지고 다녔다. 모기장부터 랜턴 촛불 등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안전했고 도시에서는 언제든지 그런 것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배낭이 무거워서 그만 어느 때부터 그런 것들을 버리고 다녔다. 필요하면  사면되지 뭐! 하고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허를 찔렸던 것이다. 


나는 촛불 조각 하나, 라이터나 성냥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어둠이 점점 더 짙어져 오는 방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기를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너무나 두려워서 명상을 할 수도 없었다. 12시나 넘어야 잠을 자던 버릇 때문에  초저녁부터 잠을 자지도 못했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분간이 안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그저 머릿속에 어지럽게 생각만 맴돌았다. 


누가 와서 나를 강간하고 죽이고 도둑질을 해도 그놈 얼굴도 알아보는 게 불가능하겠군! 하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곤혹스러운 것은 두려움과 공포에 꽉 잡혀서 잠을 잘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잠이라도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잠이란 그 시간에 결코 나를 위해 찾아와 줄 것 같지 않았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손으로 만져봐야  알 수 있는  그런 어둠,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목과 몸통을 죄어오는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서 혼자 문답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 묻고 대답하기를 하는 것이다. 

'무섭고 두렵지? '

'응, 무섭고 두려워'! 


'뭐가 제일 두려원 거야?'

'응, 누군가 방문을 열고, (이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지도 몰라. 혼자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는 아주 취약하다는 걸, 그리고 방에 잠금쇠도 없고 불도 없다는 걸,) 들어와 강도짓이나 뭐 나쁜 짓을 할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워'


'그래, 그게 두렵구나 맞아!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확률은 반반이지 뭐 안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일어날 확률 반 안 일어날 확률 반이네? 그런데 왜 너는 그게 꼭 일어날 확률만 생각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거지?'

'아하! 그래 맞아! 그런 일이 안 일어날 확률도 반이잖아! 그렇다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날 확률을 생각하면 되겠네'


순식간에 마음이 두려움이란 굴레를 벗어버렸다. 나는 사방이 꽉 막혀 탈 줄 할 수 없다고 여기던 곳에서, 문이 반쯤이나 열려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문으로  나가던지 아니면 방 안에 앉아서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던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린 일이었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 '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다. 그 힘은 순식간에 두려움을 걷어내게 만들었고 내 안에서 용기와 침착함과 에너지가 솟아 나오도록 만들었다.  


두려움을 벗어버리자 명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명상은 스스로 깊이를 더해갔다. 명상을 통해 만나는  어둠은 결코 두렵지 않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 아니다. 그 어둠은 언제나 빛을 품고 있는 어둠이며 알 수 없었던 수많은 깨우침과 통찰의 눈을 품고 있는 어둠이다. 내가 명상으로 만나는 내 안의 어둠과 위험이 숨어있다고 여기는 바깥의 어둠은 서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을 기점으로 안과 밖으로 내가 나눌 뿐 안과 밖도 없는 것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나는 벽에 기댄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대로 잠이 들었던 건지 정신이 어느 우주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돌아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상쾌한 기운이 온 전신에  흘러넘쳤다. 나는 창문에 비치는 햇살을 보고 바깥으로 나갔다. 온 천지가 밝은 해님의  품속에 안겨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 생에 가장 찬란하고 가장 밝고 가장 따듯한 아침 햇살이었다. 


강고트리는 그곳에서 이틀을 더 걸어 올라가야 했다. 배낭을 메고 로지를 나와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다가 러시아인 이고르와 또 다른 캐나다인 음악가를 만나 셋이 동행했다. 그 둘은 나보다 이틀쯤 먼저 도탁 해서 다른 로지에서 문명의 혜택인 전깃불의 축복을 누리며 지냈다고  했다. 물론 발전기였지만, 정보력이 뛰어난 그들은 저녁에는 일기도 쓰고 낮에는 요기도 찾아다니고 가르침도 들으며 히말라야의 공기를 충분히 즐겼다. 그런데 나같이 어설픈 초보자는 혼자 밤새 지옥을 다녀오고 악마와 싸우고 그리고 아침에 찬란한 태양을 되찾은 것이었다. 


올라가면서 어젯밤 일을 다시 생각해 보면 마음에 다시 햇살이 비쳐 들었다. 두려움이란 언제나 나를 그렇게 꽉 붙들고 결코 빠져나갈 구멍을 주지 않은 것 같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이 아닌 허상이었다. 그게 두려움의 실체였다. 엄청나게 거대하게 생각되고 어떤 작은 실마리도 없는 듯이 보이고, 막다른 길목에 다다라 결코 빠져 나갈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거나 부정적 예측이거나 느낌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그것에 사로 잡혀서 그것 앞에 무릎을 꿇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닥뜨렸고 그리고 그 두려움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 실체를 보았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넘어서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상쾌하고 기분 좋은 승리였다. 어쩌면 내 생에 첫 승리였다. 나 자신을 상대로 한 스스로의 싸움에서의 승리였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일어서지 못하던 아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벽을 붙들고 일어선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가 되자 마음속에 비 쳐들던 황금빛 햇살은 점점 엷어져서 어느덧 평범해졌다. 그리고 히말라야의 얼음 산을 향한 무겁고 힘든 발걸음을 계속 옮겨놓아야 했다.  


그리고 이틀 후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녹아서 물 웅덩이를 이루는 샘에 도착했다. 그곳이 인도의 그 유명한 갠지스강의 시원이 되는 성스러운 샘이었다. 이고르는 샘 아래쪽으로 들어가 몸을 적셨다. 나는 그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다. 그리고 물속에 있던 작은 돌멩이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까지 오면서 받은 그 선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그 돌에 대고 맹세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되든지 서둘러 그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안달하지 않겠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여정이 주는 선물을 충분히 찾아내겠다"고 생각했다. 

갠지스강 자체가 엄청난 축복을 가진 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 강의 시원이 되는 강고트리의 이 샘물은 신성한 축복의 힘을 지닌 물로 수많은 사람들을 순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대의  젊은 순례자였던 나는 샘이 가진 축복을 얻는 것 보다도, 샘을 찾아오는 과정이 진정한 축복이란 것을 알았다. 아마도 내 삶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쩌면 이 여행에서 돌아가면 뭔가에 성공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만 성공보다는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이 진정한 내 삶이 될 것이다. 신은 나에게 삶을 주고 또 어떤 성공을 주실지 몰라도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내가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내 선택에 달린 일이다. 나는 이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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