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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스 Jan 20. 2016

유혹과 사랑

인도 내 야생의 경험 

야생에는 유혹과 사랑이 있다. 야생에서는 서로의 본질에 더 쉽게 닿을 수 있다. 자신을 꾸미고 가리고 하는 것이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사랑이 다가오기도 한다. 야생의 가장 큰 선물은 젊음의 때에 걸맞은 강렬한 이성의 유혹이다. 그런데 이 유혹은 사랑일 수도 있고 그저 유혹일 수도 있다. 자신의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힘, 이것을 키울 수  있는 데가 또한 야생이 아닌가 한다. 


인도에 내려서 맨  처음 찾아간 도시가 경유지로서 마린 드라이브 비취라는 바닷가였다. 이곳에서 사나흘을 머물렀던 것 같다. 첫날 숙소로 찾아 들어간 곳이 어느 작은 호텔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여관 정도 되는 곳이다. 

체크인을 할 때 프런트에 앉아있는 인도인 남성이 정말 기가 막히게 생겼다. 아~신의 골상이 있다면 이런 골상이구나~ 아니 왕의 골상이 있다면 이런 골상일 거야~ 이 사람은 틀림없이 전생에 왕족이었을 거야~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인도는 남성도 잘생긴 사람이 많고 여성들은 전부 여신에 가까울 만큼 예쁘게 생겼다. 그런데 아무리 잘생겨도  내가 친구를 사귀거나  남자 친구를 사귈 때의 기준은 절대로 외모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의 사고방식과 사고 방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 내 이성은 여우에게 홀리듯 이 남성에게 홀려버렸다. 옛날 우리나라 배우중 잘생겼던 김주승이나 최수종 장동건의 실물을 모두 봤지만 그 남자에 비하면 이들은 평민의 외모였다. 뒤통수로 보나 옆통수로 보나 앞 얼굴을 보나 어디든 고귀한 품격의 아름다움이  넘쳐흘렀다. 

내 방에 들어와 있으면 그 남자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프런트에 앉아있는 그 남자 얼굴을 보려고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를 하룻밤에 서너 번씩 했다. 나중에는 그 남자가 일을 마치면 함께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바닷가도 거닐고 싶었다. 세상에~ 이런 욕망이 바람 일어나듯 이렇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 너무도 생소한 것이었다. 이건 정말 웃기는 충동이었다. 그가 나와 만나주기만 한다면 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어떤 남자인지 아는 것은 나중 문제였다. 나는 오직 그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아~ 사람이 외모에 이렇게 홀릴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고는 다음날 그 호텔을 체크아웃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내 싱싱한 이성이 나를 지켜준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생긴 얼굴은 보지 못했다. 


 어느 도시의  YMCA호텔에 머물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러 내려갔는데 그 식당의 지배인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식사는 할 만하냐 이 도시에 얼마나 머물 거냐 등을 묻더니 잠깐 자기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사무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식당으로 들어오는 복도 쪽에 있다고 했다. 내가 망설이자 그는 걱정하지 말라며 복도 쪽으로 난 문을 열어놓고 이야기만 잠시 하자고 했다. 여행 와서 너무 폐쇄적으로 구는 것도  재미없어서 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무실은 식재료가 선반에 가득 쌓여 있었고 달랑 책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는 약속대로 복도문을 열어놓고 나를 문이 있는 쪽에 앉으라고 한 후 자기가 안쪽으로 앉았다. 그는 아주 정중했고 나를 존중하고 나름대로 배려해 주었다. 할 말이 무엇이냐고 곧바로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가 저녁에 일을 마친후에 자기가 잘 아는 식당이 있는데 그곳에 함께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저녁을 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 마치는 시간을 물었더니 어두워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면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이 내 여행규칙이라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 호텔을 떠나기 전까지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할 말이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는 아주 우아하고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내 손을 잡아 앉혔다. 그리고 얼른 무례하게 느끼지는 않았는지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너는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니? 하고 물었다. 으악~ 이 남자 나를 꼬시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도 정색을 하고 그 남자를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손가락에 두툼한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흠~ 유부남이구나~알겠다. 어디 한번 꼬시려면 꼬셔보든지... 나는  마음속으로 단단하게 경계를 치고 그에게 시간을 좀 할애하기로 했다.  

남자는 노골적으로 유혹을 시작했다. '너의 이 길고 검은 머리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마 비단결같이 부드러울 거야 아~ 네 머리카락의 느낌 알고 싶어 잠시 만져봐도 될까? 아니 네가 싫다면 괜찮아 귀찮게 하지 않을게' 

나는  오호 이것 보셔~ 수작이 너무 뻔하시지 않은가? 하고 속으로 더욱 단단하게 경계를 하고 있었다. 

'너의 작은 눈(인도인들은 눈이 모두 왕방울이라 내 눈이 작지는 않은데도 그들에게는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맑게 빛나는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눈빛을 난 본 적이 없어! 언제까지나 네 눈빛을 보고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아 내 모든 번뇌가 네 눈빛 속에서 사라질 거야!   

그리고는 '이렇게 작지만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 너무나 부드럽고 따듯하구나!' 그가 내손 위에 슬쩍 자기 손을 얻었다. 나는 얼른 손을 뺐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불쾌했다면 일어나서 저 문으로 나가도 괜찮아. 하지만 잠시 네 손을 잡아볼 수만 있다면 아마 난 오랫동안 너에게 감사하게 될 거야 너를 결코 잊지 못하겠지'

이런 식으로 칭찬이 이어진 것이 언제까지였는지 그 시간은 블랙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뻔한 말 뻔한 의도의 수작에 단단히 경계를 하고 있었음에도 어느새 그 경계가 모두 풀려버렸다. 언제든지 일어나서 나갈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오히려 일어나 나가지 않고 그 말을 다 듣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망상이 내 두뇌를 지배하게 만들었다. '정말~ 어쩌면 이 사람은 인도인이니까 이 사람의 눈에는 내가 공주처럼 보일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화끈거렸다. 그는 정말 끈기 있게 그리고 창의성을 가지고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칭찬해 나갔다. 그리고 그 칭찬은 (비록 뻔한 말일지라도 ) 어느새 내 경계를 허물어 뜨리고 나를 황홀경으로 빠트리고는 망상 속에서 헤엄치게 했다. 말의 위력을 잊을 때면 나는 언제나 이때의 기억을 떠 올리곤 한다. 역시 여행자이고 순례자라는 내 스스로 부여한 내 정체성을 붙들고 간신히 이성을 발동시켜서 다 풀린 다리를 간신히 추슬러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내가 그곳을 나가는 날까지 언제나 정중하게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보내주었다. 인도의 저녁은 어둡고 치안문제가 있고 게다가 지리도 모르기 때문에 끝까지 함께 나가지 않았지만 그는 내가 배낭을 메고 나오는 그날 그 시간까지 정중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그토록 오랜 시간 그토록 세세하게 정성 들인 칭찬세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다시 인도를 가면 나는 그 남자에게 큰 선물을  가져다주고 싶은데 아직 가지 못했다. 하하 ~ 고맙다.   


네팔에서 라이브를 하는 어느 맥주집에서였다. 한국인 여행자들 서넛을 만났는데 그들이 그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헌팅 장소인 듯했다. 술을 마시고 테이블 사이에서 춤도 추고 하는 자유로운 곳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트인 곳에 가면 순식간에 자기 스타일의 남성이나 여성이 어디에 있는지 훑어보게 마련이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또 나를 보는 남자들의 눈길도 느낄 수 있다. 한 서양인 긴 머리의 남성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미국인 남자 몇 명이 우리 테이블에 와서 말을 걸었다.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이성친구를 찾는 노력이 바빠진다. 미국인 애들은 모두 퇴짜를 맞고 다른 테이블의 여성들에게 가서 또 집 쩍 대고 있었다. 나와 함께 한 여성 친구들은 모두 사귀는 남성이 있었다. 나는 물론 순례자였고, 

가게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갈 즈음 내 친구들은 모두들 남자친구와 와서 데려가고 나 혼자 가게문을 걸어나와서 숙소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문 밖에 고전적인 문양으로 장식한 자전거 릭샤가 한대 서 있었고 그 옆에 아까 보았던 그 긴 머리의 외국인이 서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숙소로 데려다 줄 테니 타라고 했다. 처음 보는 남자지만 자전거 릭샤 정도는 위험하지 않다.  달릴 때  뛰어내릴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숙소가 어디인지 물었고 그러고 나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 이름은 무엇이고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냐 등등을 묻기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남자였다. 아~ 이탈리아 남자의 로맨틱함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는 왕궁의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골목길을 천천히 돌아서 가능한 아주 먼  거리로 내가 묵는 호텔로 자전거를 몰았다. 뒤에서는 릭샤 주인이 뛰거나 걸으며 따라왔다 이탈리아인 친구는 그 짧은 시간에 내 마음을 잡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 드디어 내 숙소가 다가오자 본심을 털어놓았다. '자기 숙소에 가서 이야기 좀 더  할래?'였다. 그때까지 남자의 마음에 대해 순진했던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 남자가 정말 이야기만 더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다른 무엇을 원하는 거야? 이야기만 원하는 거라면 나는 그와 함께 밤새 이야기할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것 뿐일까? 나는 판단해야 했다. 결론은 이야기만 원하는 게 아닐 것이다로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 로맨틱 한 프러포즈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사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언제까지 네팔에 머무는지, 언제 떠날 예정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내일 아침! 이었다. 나는 사귈걸 생각했지만 그는 단지 하룻밤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데려다 줘서 고맙다. 나는 많은 이야를 하고 싶어 하룻밤은 너무 짧아  안 되겠어!' 하고  웃으며 말하고는 릭샤에서 내려 숙소로 돌아왔다. 그는 빌린 릭샤 값으로 얼마를 지불했을까?   

어찌 되었든 이런 몇 번의 유혹 때문에 나는 한국 남자들에 대한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국 남자들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이런 투자와 노력을 하지 않는다. 만나면 술자리로 데려가 술이나 잔뜩 먹여서 얼떨결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시작하는 그이상을 하지 못하는 거. 한국 남자들은 여성의 마음을 사기 위해 좀 더 노력하고 에너지를 쓰고 마음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여성이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선택하게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나? 여성이 자신의 매력을 보고 이끌리도록 다양한 프러포즈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가정불화 문제로 상담하는 부부에게 언제나 더 많은 칭찬과 사랑의 말을 들려주라고 하면 다들 화들짝 놀라면서 못 할 일을 시킨다는 듯이 정색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 남편들 중에는 그게 무슨 남자의 품격이나 자존심을 저버리는 일처럼 생각하는 남성도 많다. 남성들의 정성 들인 프러포즈는 여성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품위 있게 해 준다. 또 여성을 행복하게 한다. 또한 여성의 마음을 열고  사랑이 흐르도록 한다. 행복한 여성은 결국 남성을 행복하게 한다. 

이런 강렬한 프러포즈 경험은 그 후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덕분에 나는 아주 지적이고 열린 사고를 가진 멋진 내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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