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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스 Jan 15. 2016

죽음의 강가에서...

인도 내 야생의 체험

인도를 여행하면 바라나시의 화장터를 빼놓지 않는다. 그곳을 찾지 않는 여행자는 거의 드물다. 특히 순례자라면 더욱 그렇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과 노천 화장터로 알려진 곳이다. 강가에서 죽은 자들의 몸을 태운 후 갠지스  강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강을 다른 말로 강가 강이라고도 한다. 나는 강고트리에서 갠지스강의 시원을 보고 나서 바라나시로  갠지스강을 보러 갔다. 


바라나시 기차역에 내렸을 때는 저물 무렵이었다. 역을 나와 광장으로 나오니 그 넓은 광장에 남자, 여자, 아기 어린아이 등 온갖 사람들이 줄을 맞춰 누워 잠을 자려고 하고 있었다. 집이 없는 이들이었다. 어떤 엄마는  갓난아기를 안고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안고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하고 그들 사이를 걸어나왔다. 그동안의 여행에서도 정말 많은 가난을 목격하곤 했지만 이렇게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자는 사람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바라나시는 갠지스 강가에 자리를 잡고 발달한 도시였다. 빽빽하게 들어찬 건물 사이로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강가로 이어져 있었다. 카페와 숙소를 겸하는 곳에 가서 숙소를 잡았다. 저녁이 되니 싸구려 스피커를 통해 아주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소리에 일제히 사람들이 강가로 쏟아져 나왔다. 알록달록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로 그 작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가득 찼다. 알고 보니 사원에서 저녁 기도시간을 알리는 음악인 것이었다.  


강가 너머에 잘 익은 홍시 같은 저녁 해가 걸려 있었다. 강가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강물로 들어갔다. 그들은 환희와 축복에 찬 표정으로 강물을 머리 위에 끼얹었다. 그들은 매일 저녁 갠지스강의 축복을 이렇게 자신에게 퍼 담았다. 그 목욕은 몸의 먼지나 때를 씻는 것이라기 보단 신과의 연결을 느끼고 신의 축복에 닿아 있음을 기억하는 목욕이었다. 


그리고 금방 저녁이 되고 어둑해졌다. 여행자들은 화장터가 잘 보이는 곳으로 옹기종기 참새처럼 모여들었다. 인도 차 짜이를 파는 친구가 다가왔다. 토기로 구운  잔에 흙탕물 같은 색의 차를 담아 주었는데 맛은 들큼했다. 어두워지자 강물 위에는 촛불을 실은 작은 나뭇잎 배들이 떠 내려갔다. 넘실거리는 물결을 따라 불꽃들이 흘러가는 광경은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촛불에  소원을 담아 강가 여신에게 그렇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가 옆에서는 화장이 이루어졌다. 주황색 옷을 입고 이마에 재를 칠하고 꽃 목걸이를 한 사두를 따라 통곡하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바위 위에 내려놓고 잠시 무릎을 꿇고 통곡함으로써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장작을 쌓았다. 장작 위에 죽은 사람을 올려놓고 간단한 의례를 치르고 짚과 나무로 죽은 사람을 덮고 불을 붙였다. 검은 연기와 함께 붉은 불꽃이 타 올랐다. 


불이 타 오르자 사람들은  울음을 그쳤다.  그의 몸이 다  타고 그 재를 강가에 밀어 넣으면 갠지스강은 죽은 이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강은 남아있는 이들에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힘을 주고 또  떠나는 이에겐 함께 살아왔던 우정과 사랑이 가득한 삶을 내려놓고 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었다.


배낭을 메고 서양인 남자가 어두운 강가로  달려들어 들어왔다. 그는 배낭을 떨구곤 모래밭 위에 몸을 던졌다.  모래밭에 뒹굴며 두 손으로 모래를 움켜쥐며 흐느꼈다. 그는 순례자였다. 그는 어떤 근원적 가르침에 닿기를 열망하여 이곳에 왔을 것이다. 이 시간 그곳에 모여든 순례자들은 적어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가르침을 소망하는 이들이 분명했다. 


 내가 가르침 받기를 소망하고 있던 것은 두려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라나시로 온 진짜 이유였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두려움을 다 가지고 있었다. 내 모든 두려움은 언제나 삶에서 태어나서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내 삶과 죽음 사이는 온갖 종류의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언제나 삶도 두려워했고 죽음도 두려워했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멀리 화장터에는 어젯밤처럼 죽은 자들의 혼을 싣고 떠나는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옆 건물 마당에서는 혼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주 경쾌한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혼례 예식을 끝낸 신부와 신랑 그리고 친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저 강 한쪽에서는 죽음으로 삶의 자리를 비워주는 불꽃이 타 올랐고  골목길 안쪽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새로운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옛 이름 베나레스, 이곳에서는 지금도 눈 앞에서 신화처럼 창조, 유지, 파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창조와 파괴 사이에 유지는 결코 평온한 게 아니었다. 그 유지는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일어나는 혼돈이었다. 창조되면서 파괴가 일어나고, 파괴되면서 동시에 창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는 한 혼돈 속에서 길을 찾아 방황하는 것이 운명인지도 몰랐다. 


 밤이 되어 다시 어두운 강가에 나가 앉았다. 그리고 시체들을 태우고 남은 물기를 핥으며 어두운 하늘로 오르는 붉은 불꽃을 바라보았다. 첫날 시체를 태우는 장작더미와 불꽃은 침울한 것이었다. 그 침울함이 곧 내 죽음과 연결지은 것을 알자 나는 감정의 유희를  걷어냈다. 감정을 걷어내고 보자  죽음이란 평화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자리를 비워주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누가 죽은 자에게 빚을 받으려 하겠는가?

누가 죽은 자에게 복수를 하려 하겠는가?

누가 죽은 자에게서 약탈을 하려 하겠는가?


죽은 자는 거기 평화롭게 누울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자리를 비워주기 때문에 

죽은 자는 또한 자기를 비우기 때문에 

죽은 자는 그 무엇도 삶을 위해 경쟁하거나 위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짧게 죽음에 대한 시를 쓰면서,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가 누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화장터에서 춤추고 노래했던 고대의 사라하를 떠 올렸다. 그는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고 했다. 


밤늦게 화장터에서 돌아왔는데 머리에 미열이 있었다. 꿈을 꾸었다. 내가 꾸는 꿈이 아니라 오랜만에 나를 찾아온 꿈이었다.  

'마치 헐크처럼 나는 산 위에서 산 위로   뛰어다녔다. 그러다 아주 높은 산 위로  뛰어올랐다. 그 산은 이 세상에 있는 산이 아니었다. 그 산은 해가 진 저녁 무렵처럼 어두컴컴했다. 나는 이 산을 둘러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누군가 나를 따라온 것을 알았다. 돌아보니 어떤 여자가 누워있었다. 그 여자는 나와 꼭 닮았다. 또 다른 나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화장터의 시체처럼 불꽃을 일으키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것은 내 껍데기였다. 나는 사그라져가는 내 껍데기를  안았다. 그 껍데기는 내 안에서 완전히 다 타서 사라졌다. '

껍데기를 벗는 것! 이것이 죽음이었다. 죽음은 끝도  아니고 영원한 망각도 아니었다. 죽음은 이 세상에 삶의 자리를 비워주고 자기 껍데기를 벗고 다음 삶의 골목을 걷는 것이었다. 


 나는 바라나시에 열흘 가까이 머물렀다. 죽은 몸을 태우는 것이 더 이상 주목할 그 어떤 것도 아니게 될 때까지, 죽은 자의 몸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가 그저 내 일상의 평범한 한 부분이 될 때까지 머물렀다. 바라나시는 비단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나는 골목 어느 상점에 들어가서 하얀 새틴 실크로 만든 긴 머플러를 사서 목에 둘렀다.  길고 검은 생머리를 내려 뜨리고  검은색 롱 드레스 위로 하얀  새틴 실크 머플러를 내려뜨리고 혼자  바라나시의 모든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창조가 내 걸음은 보다 앞서고 파괴가 내 걸음보다 뒤쳐지는 한 나는 살아서 이세상 어디든 지금처럼 안전하게 걸을 것이다. 



'따돌림, 네 잘못이 아니야!'스토리 펀딩이 진행중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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