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스 Feb 02. 2016

천국이란 무엇인가?

2천 년 전에 이미 기본소득제를 말했던 예수

천국이란 무엇일까?

'천국이 가까웠다.'

 세례 요한은 이 외침을 외치며  등장했고(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또한 이 말씀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가르침을 시작했다. 천국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에 가장 풍부하게 나와있다.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천국에 대한 가르침"이 주된 주제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천국에 대해 내가 찾은 거의 모든 문장들을 여기 옮겨 놓았다.


천국이 어디에 있고 또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시대적 상황을 조금은 염두에 두고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침략을 당해 로마의 통치를 받은 상황에 있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서민들이었다. 예수는 귀족과 지배계급들과 친하지 않았고 반목했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 시에도 나가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 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 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 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주인을 원망하여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태복음 20장 1절)


이 부분은 천국에 대한 문장 중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인데 글의 구성상 맨 앞장으로 옮겼다. 이 글을 읽으며 정말 큰 감동이 일었다. 아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꿈꾸었던 천국이 이런 것이었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이런 천국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구나!


천국에 대한 이 비유는 보편적 복지, 나아가 현 시기에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기본소득제' 마저 떠 올리게  한다. 마침 오늘 아침(2016년 2월의  첫날) 신문에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려고 하는 핀란드와 스위스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스위스는 모든 국민이 일을 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건강하거나 병들었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자거나 월 약 300만 원씩을 받는 법안을 국민 투표에 부친다고 한다. 핀란드 역시 월 약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들에게 똑같이 주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 법안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고 찬반과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정부가 모든 국민들의 기본적인 수입을 보장하면 국민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미 2천 년 전에 이 땅에  기본소득제 같은 제도가 있어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 뿐만이 아니라 몇시간 일을 했든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인한 생존의 고통과 걱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꿈꾸었던 이 땅의 천국의 한 모습이 아닐까?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 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생략 (마태복음 25장 34절)


이 말씀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이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귀한 보석 같은 가르침이다. 성경은 이런 말씀 때문에 여전히 빛을 발하고 예수의 사랑을 이 땅에 전해주고 있다. 이 땅에 배고픈 자, 목마른 자, 나그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들을 그리스도로 보고 그리스도를 대하듯 대하는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기본소득 제처럼 사람이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삶을 쉽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고 싶지 않으셨을까?    


이 소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태복음 18장 10절 )


작고 힘없고 약한 자들을 없신 여기지 말라. 그들을 업신여긴다면 천국을 만드는 것은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다. 천국은 그런 자들이 보호받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을 돕는 천사들이 하나님을 항상 만나고 있어서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말하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 매 그가 나가서 자기 동관 중에 저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감옥에 가두거든 다른 동관들이 이를 임금에게 고하거늘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23절)


천국이란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보다 형편이 더 안 좋은 사람을 배려하고 살펴주고 용서하는 곳이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 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태복음 18장 8절: 아래 주석에는 영생이 (헬. 에)라고 되어 있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천국은 범죄가 없는 곳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된다. 그래서 만약 네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너는 그 천국에서 살 수 없게 되므로 차라리 불구자나 절뚝발이가 될지언정 단호하게 범죄를 끊어 내버리라 주석에 영생이 생이라고 되어 있는 것에 주목한다. 이 생이라는 의미는 결국 삶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땅에 천국을 만들자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 목적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이 있사옵나이다. (마태복음 6장 9절)


잘 알려진 주기도문의 일부이다. 이 기도문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땅에) 하늘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천국)가 임하게 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이땅에 하늘나라 곧 천국을 이루는것,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자 그분이 하시려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받았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의문이 조금 든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의 사람들을 죽은 다음에 천국으로 데려가고 이 땅은 심판하여 파괴되게 하려고 오셨을까? 이 땅은 그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죄란 사람이 짓는 것이지 이 세상이 짓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껏 휴거를 이야기하고 세상의 심판과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실패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본받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살도록 가르치셨을 것이다. 그것이 훨씬 더 이치와 상식에 맞지 않을까?


주 기도문의  그다음 문장들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서민들은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하느님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서로의 잘못을 용납하고 서로의 죄를 용서하여 주는 사회 그리고 악을 행하지 않고 의로움이 실현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예수는 꿈꾸고 활동했기에 그런 사회를 위해 기도하게 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천국에 대해 말하면 의로움에 대한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은 우리가 의로움으로 살아야 가능한 것으로 여기셨던 것 같다. '의'란 '의로움' 혹은 '정의' 이런 뜻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주기도문에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인해 곤궁하지 않게 해 주시고 서로를  용서하고 악을 자제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했다.


다시 한번 주기도문에서 가르쳤던  것처럼 이 땅에 살고 있는 너희는 가장 먼저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애쓰라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애쓰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들이 더해질 것이다. 이렇게 문장을 이해하면 안 되는 걸까? "구하라"는 말을 꼭 기도하라는 말로 해석해야 할까? 노력하고 애써서 가지라는 말로 이해하면  안 될까?


예수께서  의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했것을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의'는 천국을 말하는 중에 특히 반복되었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고통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의'가 죽은 때였기 때문이다. 민중은  지배 계급에게 착취당하거나 억압당하고 또 가난한 자와 병자와 약자들이 차별당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에 대해 알고 깨우쳐야 그 고통과 억압의 시대를 끝내고 그 땅에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 16장 19절)


이 땅에 천국을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씀이다. 다른 문장들을 보면 열쇠를 문에 꽂아 문을 여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등 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복음 10장 6절)


병든 자를 고치면 어디가 천국이 되는가? 바로 병든 자가 살던 곳이 천국이 되고 병들었던 사람이 천국에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를 살리면 또한 어디가 천국이 되는가? 죽은 자가 살아난 그곳이 천국이 되고 죽은 자가 천국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내쫓으면 어디가 천국이 되는 것일까? 문둥병에서 고통받고 귀신 들려 고통받던 사람들이 깨끗하게 나은  그곳이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천국에 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는 주기도문의 요지가  아닐까? 이 말은 다음 구절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장 28절)


벙어리를 고쳐 주신 후 바리새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니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 이 땅에 이미 하나님이 임하셨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시작되고 있다.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장 33절)


누룩이 가루 속에 들어가면 그 자신은 전부 사라지고 빵만 남는 것처럼 천국은 자기 자신을 다 던져 헌신해서  만들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태복음 13장 45절)


누룩의 비유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해야 천국을 가지고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천국은 착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자들이 주역이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 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태복음 5장)


이 문장은 이렇게 이해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천국은 탐욕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고 맑은 사람과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문장의 해석은 임의적 의역을 부를 수 있는 성경 특유의 문장이라 참 조심스럽다. 심령이 가난한 자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천국의 주역이 될 것이다. 나는 일단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하겠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7절)


(사람이 등불을 켜면 낮은 두지 않고 높은 곳에 두어서 방안 전체를 비추게 하는 것처럼.. 앞 문장의 요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게 아주 적극적으로 빛이 되는 행실을 하라. 즉 착한 행실을 홍보하라.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여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장 19, 20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가르치면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지배계급인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더욱 의로워야 한다고 의로움을  강조했다.  


또한 천국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예수만 자꾸 불러대며 모든 걸 다 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실제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당연하다. 행동으로 천국을 만들어야 천국에 들어가 천국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에 대해 말하는 장에서도 행동에 옮기고 실행에 옮길 것을 늘 주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은 10장 3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뺏었느니라 (마태복음 11장 12절)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요청하셨다.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들려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고 은밀하게 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고  따르고 전파하고 천국을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다. 천국을 만들기 위해 마치 침략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것이다. 어쩌면 죽은 후에 영혼들이 가는 천국이라면 빼앗기고 말고 할 천국이 아닐 것이다. 침략자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권력을 잡고 정의가 사라진 세상을 적극적으로 싸워서 찾아와 모두가 살만한 천국을 만들라는 말씀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태복음 21장 43절)


하나님 나라는 입으로만 '믿습니다. 주여' 하면서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열매를 맺는 백성' 즉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 만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 16장 19절)


이 말씀은 적극성과 능동성을 넘어서 바로 우리 자신이 천국의  주체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는 천국의 열쇠를 주셨다고 했다.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한다. 이 땅에 천국을 만들기 위한 모든 가르침 모든 방법 모든 비전을 주셨다. 하지만 그 열쇠를 넣고 돌려서 문을 열고 들어가 천국을 살거나 하지 않는 것, 즉 천국을 이루는 행동은 전적으로 너희들에게 달려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7절)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 앞에서 착한 행동과 빛이 되는 행동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천국은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헤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라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리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니 저희에게는 아니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13방 3절~)


이 땅에 천국을 만들기 위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받아 들일 때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이 땅에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마음 자세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를 신뢰하고 따르는 이들만 천국을 알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고 말하셨다. 로마인이나 로마에 협력하는 지배계급들은 그 비밀을 알면  안 된다. 그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비유를 베출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 마태복음 13장 31절)


살기 힘든 나라를 천국과 같은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 그리고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은 숫자도 너무 적고 힘도 너무 없어서 어쩌면 생각하기에 겨자씨 한알과 같이 작고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망하고 절망하지 말아라. 이 작은 씨앗에는 하나님의 의와 생명력이 들어있기에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 즉 믿는 마음으로  실천에 옮기다 보면 그것은 반드시 나고 자라 큰 나무와 같이 될것이다. 큰 나무가 되면 갈 곳 잃고 떠돌던 백성들을 모두 도와 행복하고 생동감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리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태복음 25장 1절)


이 역시 유명한 구절이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않았다. 신랑이 늦게 도착했을 때 기름이 넉넉했던 처녀들은 등불에 불을 밝혀 신랑을 맞으러 나갔지만 미련한 처녀는 등불을 밝힐 수 없어서 결혼식에 가지 못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갈았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이 땅에 만들려는 하나님 나라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고 예측하고 기대한 것보다 더 늦게  올 수 있다. 하지만 준비를 잘 해두면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이요 준비에 소홀하면 결국 실패하고 울게 될 것이다.


세상 끝은 이 땅에 천국이 만들어지는 날 가라지들이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땅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더니 쌀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 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 볶음 13장 25절~)


곡식을 심었는데 원수가 몰래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다. 이 말씀은 이 땅에 천국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그것을 원치 않는 지배세력들이 그것을 싫어하고 방해하고 엿듣고 고발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사람들 사이에 심어놓고 갔다.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질 때가 되면 그들은 뽑혀 나갈 것이다. 그들은 천국을 함께 누릴 수 없을 것이며 자기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그러니 너희들은 가라지처럼 행동하지 말아라)

이와 같은 경계의 말씀은 다른 비유에서도 또 언급된다. 예수 자신의 활동에 대해 방해하는 사람이 되거나 의미 없는 쭉정이 같은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리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마태복음 13장 47절)


이 땅에 천국이 만들어지면 그리고 예수가 말했던 의가 바로 서면 불의한 세력들에게는 그때가 바로 세상 끝날이 될 것이다.(예를 들면 우리나라 일제 36년 식민지 시절에 우리나라가 해방되는 것이 일제의 종말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그때 천국에 기여한 정도를 모두 따져서 자신이 행한 대로 상과 벌을 받게 될것이다.     


천국은 마지 차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종들을 보내 잔치에 초대하였으나 오지 않는 사람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 진멸하고 불사르고 종들이 길거리에 나가 악한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왔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와왔느냐 하되 유구무언이거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마태복음 22장 1절)

 

예수는 이 땅에 천국을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사회에 영향력 있는 지배계층의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보낸 심부름꾼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였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그 행위에 따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바로하는 일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 가난하거나 혹은 병들거나 하는 사람들이 포함된 평범한 사람들이다. 언제나 천국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어 왔다. 그런데 예복을 준비 안 한 자 즉 하나님 나라(천국)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다 된 후에 나타나서  천국의 이익만 누리려는 자는 표시가 나게 될 것이다. 그는 수족을 결박당하고 어두운 곳에 던져져 자기 행위에 대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거짓과 속임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정의로움으로  만들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 주: 이 글이 자칫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천국을 만들려 했던 한 시대의 운동가 정도로만 이해하게  할까 걱정이 된다. 단연코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현실화되길 소망했지만 그것은 제도적인 측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현실화되는 것은 개인들의 도덕성 그리고 사회의 제도를 포함하여 개인을 초월하는 영적인 면이 또한 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데서 그런 영적인 힘이 이 땅에 나타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영적인 힘이 이 땅에 나타나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는 완성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위에도 소개했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장 28절 )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은  성령이 나타나 물질적인 제약을 완전히 초월하게 될 때 완성되는 것임을 말한다.





 "따돌림, 네 잘못이 아니야" 출간과 따돌림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스토리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19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