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쓰기 위해 쓰는 휴가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기 위해 떠난 집필 여행의 기록입니다. [J]와 [ㅈ]가 함께 쓰는 글이라, 같은 제목의 글이 두 편씩 업로드됩니다. 에피소드 제목은 그날을 가장 잘 담은 노래이니 들으며 읽으시길 권합니다. - J
집필 여행을 가자.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 ㅈ은 이 말을 꽤 자주 한다. 본인은 이 말을 자주 쓴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보통 이 말 뒤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따라붙어 듣는 나를 무척 들뜨면서도 긴장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도 왠지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을 해봤다던' ㅈ은 집필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직 침을 꼴깍 삼키지도 못했는데.
ㅈ과 같이 가려고 며칠 전까지 열심히 찾아봤던 도쿄행 비행기표가 떠올랐다. 이번 겨울 휴가는 ㅈ과 도쿄에서 오차즈케를 먹으며 보낼 줄 알았다. 몰랐겠지만 지난번에 가보고 반해버린 조용한 오츠카(Otsuka) 역 부근에 숙소를 잡고 지낼 계획이었다. 오츠카는 조용해서 빌려둔 아파트가 내 집처럼 느껴졌다. 아마 ㅈ과 함께였다면 그도 마음에 쏙 들어했을 것이다. 그런 도쿄 여행 계획이 있는 줄도 모르고 ㅈ은 집필 여행 얘기를 꺼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마치 의견이 없는 척하며 상대방의 기호를 먼저 파악하느라 마침내 거절을 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그날도 그랬다. 마치 도쿄 여행과 집필 여행 양쪽에 마음이 50대 50으로 기운 척하면서 ㅈ은 어느 쪽을 더 원하는지 파악해보려고 했다. 내심 도쿄 여행에 ㅈ도 나만큼 미련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모르는 ㅈ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집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 나는 ㅈ의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 만큼이나 눈을 반짝거리면서 말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두 가지가 다 나왔을 때 거절하기란 정말로 힘들다.
내년 여름휴가 때에 우리는 유럽에 있을 것이다. 내년 초에는 둘 다 이사를 해야 한다. 한정된, 좀 많이 한정된 수입으로 그 두 가지를 다 하려면 겨울 휴가를 도쿄에서 보내기는 사실 꽤 많이 부담되는 일이었다. 도쿄는 고사하고 그 두 가지만 하기에도 벅찰 수도 있다. ㅈ은 그런 면에서 참 현실적이다.
현실적인 ㅈ을 보고 있자니 문득, ㅈ이 아니면 내 평생 집필 여행이라는 걸 함께 갈 수 상대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ㅈ은 성격은 좀 다르지만 글을 써서 먹고살면서 부업으로 각자의 독립출판물을 만든다. 주업이 글쓰기다 보니 적어도 나는, 부업인 독립출판물을 쓸 여력이 없다. 6편짜리 시리즈로 지금쯤 3편까지는 거뜬히 나왔어야 했을 책이 2권을 제작 중인 상태로 한참 머물러있는 건 그 때문이다. 어쩌면 진짜, 이 집필 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여름에 갈 유럽이니 이사니 하는 이유는 이것에 비하면 하찮은 핑계였다. 그리 아쉽던 도쿄는 계획한 적도 없었던 일처럼 아득하게 멀어진 후였다.
광화문 한가운데에서 보내는 일주일,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내가 사는 세상 중 가장 바삐 돌아가는 곳에서 숨어 지내기. 마침 써야 할 글은 밀려있었고, 그걸로 핑계는 충분했다. 합의에 의한 집필 여행. 휴가를 허투루 보냈다는 아쉬움도, 게으름뱅이라는 타인의 평가도 없이 일주일 은둔하기에 너무 꼭 맞는 그런 핑계. 그걸 하기에 누구보다 적합한 상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 매력적인 손길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