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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07. 2019

병원에 갔던 고양이가 돌아왔다


아이가 울면 어디선가 코이가 나타난다. 이건 우리 집의 암묵적인 룰이다. 나는 아직 코이가 이걸 어기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코이가 입원해서 집에 없는 첫날, 아이가 하루 종일 울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숨을 곳도 없는 원룸에서 코이를 찾아 이불속까지 다 뒤지고는 크게 울었다. 평소 같으면 이불속에서든 신발장 밑에서든 나와주었을 코이가 아무리 울어도 나타나지 않자 아이는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가끔씩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느라 시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화들짝 놀란 듯 울며 달려왔다. 평소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거의 깨지도 않고 자던 아이가 이날은 30분도 채 잠들지 못하고 깨기를 반복했다. 할 수 없이 아이를 들쳐 매고 집 정리를 했다. 긴 하루였다. 하필이면 ㅈ이 없는 주말이었다.


병원에서는 자주, 다정하게 코이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혼자 집에서 아이를 달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 상냥함이 위안이었다. 오후에 39.8도에서 39.4도까지 내려갔던 코이의 체온은 저녁이 되자 다시 40.1도로 올라갔다. 내가 면회를 갔을 때 코이는 하얀 거품토를 입에 가득 물고 나를 보며 끙끙거렸다. 건강한 모습을 기대하며 응원을 하러 갔다가 눈물이 터진 내 등 뒤에서 의사는 오늘 코이의 경과를 설명했다. 눈물범벅이 된 나를 보고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상냥한 수의사의 말투는 그간 이런 풍경을 지겹도록 반복해온 경험에서 나오는 듯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원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의사는 혈청검사와 전염병 검사에선 아무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정말로 전염병이 아니라면 어쩌면 원인은 내가 외부에서 묻혀온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 의사도 그 이상은 답할 수 없었다.


"보호자님이 원인일 수 있어요"


집으로 걸어오는 30분, 그 말은 나를 계속 따라왔다. 거리에서 만났던 아이들 중 아픈 아이들이 있었는지 기억을 샅샅이 뒤졌으나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날은 새벽까지 빨 수 있는 모든 걸 다 세탁기에 쑤셔 넣고, 소독할 수 있는 것이면 전부 소독했다. 그래야 조금은 그 말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맹렬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아팠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최소한 억울하지는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아프던 맹렬이는 중년 정도의 강아지였고, 어쨌든 젊은 시절의 상당 부분을 건강하고 발랄했다. 그러니 고양이를 데려올 때 고작 4개월짜리 고양이가 아플 거란 예상은 내 머리에 없는 것이었다. 맹렬이가 떠난 지 겨우 1년이 지난 때였다. 비슷한 불안을 이렇게 빨리 느낄 줄은 몰랐다. 원인은 나일 수도 있다는 말을, 결국은 떨쳐내지 못해 그날 나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 이럴 때 담담하고 의연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다행히도, 코이는 그로부터 이틀을 더 병원에 머무른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체온은 부지런히 떨어져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시 해본 혈청 검사와 전염병 검사 모두 정상이었다. 혹 범백이었다 해도 고비를 넘겨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문제없을 거라며, 병원에서는 퇴원을 권했다. 서울로 다시 올라온 ㅈ까지 합류해 3일 만에 유모차에 고양이 둘을 싣고 ㅈ과 집으로 걸었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울었던 나와 아이는 그날 표현 못할 기쁨을 느끼며 돌아왔다. 아이는 오는 내내 코이를 반기느라 한 번도 울지 않았다.  


3일 동안 집에서 코이를 찾던 아이는 3일 묵힌 격한 포옹으로 코이를 환영했다. 어찌나 반갑게 따라붙던지, 화장실 갈 틈도 주지 않았다. 의사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작은 입원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지낸 3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코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장난감을 쫓으며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다시 만난 코이와 아이는 그날 최선을 다해 놀고, 최선을 다해 먹었다. 그리고 부둥켜안고 다음날까지 잠만 잤다. 코이는 낯선 병원이라서, 아이는 코이가 없는 환경이 낯설어서 3일 동안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날은 나도 3일 치 밀린 잠을 잤다. 2주 정도 더 지켜봐야 했지만 코이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드디어 코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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