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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27. 2018

동물병원에 가는 일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코이가 아팠다

그냥 그 개 눈빛이 너무 기억에 남아서


언니는 맹렬이를 충동적으로 샀다. 친구들과 술 마시러 가던 길, 어느 펫샵에 '진열'된 맹렬이는 그 또래 강아지들이 그러하듯 활기차게 돌아다니지도, 안아달라고 짧은 팔다리를 뻗어보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언니를 바라봤다고 했다. 술을 먹는 내내 자기를 바라보던 눈빛이 떠올라 언니는 그 자리에서 친구들의 현금까지 빌려 강아지를 데리러 갔다. 작고 하얀 강아지는 집에서도 활발하지 않았다. 의사는 파보장염이라 했다. 언니는 그제야 어린 강아지가 철없이 놀지도 않고 왜 그리 언니를 빤히 바라봤는지 이해하게 됐다. 아무리 수컷이라지만 말티즈라기엔 터무니없이 쌌던 분양가도.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죽은 듯이 앓던 강아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밥과 물을 다 치우라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갑자기 힘을 내서 살아났다. 그건 모두 언니가 혼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를 만났을 때 맹렬이는 뽀얗고 어렸고, 펫샵에서와는 달리 발랄했다.


치사율이 80%가 넘는다는 장염을 이기고 살아났지만, 그 후에도 맹렬이는 자주 병원에 갔다. 안구건조증이 있었고, 귀가 늘 안 좋았고, 어느 날은 닭뼈를 새벽 내내 다 집어삼켜 엑스레이 사진에 뼈가 가득했다. 참 슬개골 수술을 했고, 알 수 없는 종기를 떼는 수술을 했다. 다섯 살이 넘어서는 소파 위로 뛰어오르지 못했는데,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그 후로 맹렬이는 예전같이 뛰어오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디스크가 심해지면 뒷다리를 아예 쓰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언니와 나는 맹렬이를 데리고 멀리 있는 동물 종합병원과 동물 한의원에 다녔다.


맹렬이는 한약도 먹고, 봉침도 맞고, 인공눈물도 수시로 넣고, 필요하면 수술도 하고, 양약도 많이 먹었다. 이곳저곳 어딘가 늘 안 좋아서 맹렬이는 평생 최소 두 달에 한 번은 병원에 갔다. 그래도 매번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아예 걷지 못해 화장실도 못 가고 울던 때도 결국은 다시 걷고, 신이 나면 달리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맹렬이는 거의 불사조였다.  


나는 맹렬이가 아플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다가도 이번에도 다시 일어설 거라 굳게 믿었다. 맹렬이의 화려한 병원 이력 대부분을 함께 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병원 가는 일에는 꽤 담담해졌다. 맹렬이 덕분에, 나는 반려동물의 아픔에 제법 의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고양이가 아프기 전 일이다.


그날은 좀 이상했다. 회사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마중 나온 고양이가 아이밖에 없었다. 나를 반겨주지 않던 코이는 졸린 듯 식빵을 굽는 자세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주변에는 헤어볼을 뱉은 듯 사료를 토해놓은 흔적이 있었다. 고양이가, 더군다나 어린 고양이가 자고 헤어볼을 뱉는 것 모두 정상이다. 그래도 이상했다. 졸릴 순 있지만 갑자기 놀지도 않고 간식도 먹지 않고 만져주어도 내 손을 피해 구석에 다시 엎드려 있는 것이.


병원에서는 '야간진료비에는 할증이 붙으니 좀 더 지켜보라'고,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알고 보면 큰 병일 수도 있다는, 하나마나 걱정만 커지는 얘기를 했다. 초보 집사에게 믿을 건 인터넷뿐이고, 늘 그렇듯 이럴 때 인터넷은 위험하다. 그날따라 비슷한 증상의 몹쓸 병들만 눈에 들어왔다(실제로 고양이의 이상 증세는 여러 병이 비슷하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다). 글을 몇 개 읽고 나니 이미 내 마음속에서 코이는 몹쓸 병에 걸린 상태나 다름없었다. 인터넷으로 세상 몹쓸 고양이 전염병만 익힌 초보 집사에게 고양이들과 나만 남겨진 집은 지옥이었다.


맹렬이 덕에 단련되었다는 마음은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고 내가 지어낸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나는 전화를 붙잡고 큰언니에게 아무래도 코이가 아픈 것 같다고 한참 엉엉 울었다. 아픈 고양이가 있는데 왜 엄마 역할을 해야 할 네가 달려가지 않고 여기서 울고 있냐고, 언니의 말에 따귀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축 처진 코이와 영문을 모르는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24시간 동물병원으로 갔다.


고양이들의 승차감을 고려해 질주와 안전운전의 접점을 달리면서 14년이나 지난 일이 이제야 궁금했다. 4개월짜리 고양이가 아파도 이렇게 무서운데, 언니는 혼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새끼 강아지를 어떻게 품고 돌봤을까. 나에게는 맹렬이가 병을 이겨낸 또 하나의 무용담이었던 시간을 실제로 겪었을 언니의 마음을 가늠할 길이 없다.


마침 집에 다녀온 ㅈ이 병원으로 합류하고 코이는 혈액 검사를 했지만, 염증 반응이 올라갔다는 것 말고는 크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확실한 건 체온이 39.8도라 입원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뿐이었다. 코이는 작은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작은 입원실로 옮겨졌다. 내일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가 멀어지는 걸 움직이지도 못하고 빤히 바라만 봤다. 언니를 처음 본 맹렬이처럼.  

 

밤 12시가 넘은 시간, 우리는 유모차에 아이만 싣고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끊겼고, 나도 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리고 싶었다. 내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ㅈ이 말을 건네는 동안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유모차 안에서 계속 울었다. 내가 데려오기 전에 부모와 형제들, 내가 데려온 후에는 며칠 떨어져 지냈던 자매 코이와 상봉했던 터라 아이는 한 번도 가족들과 떨어져 본 일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유모차에서 꺼내 꽉 끌어안고 집으로 걸어왔다. 아이는 품에 안겨서도 슬프게 울었다. 어두운 밤이라 길에 사람이 우리뿐이라서, 불빛이 밝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코이는 괜찮을 테니 나도 괜찮다고 하면서 가끔 먼 산을 보고 눈이 가려운 척 눈물을 슥슥 닦았다. 동물병원 오가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동물병원 베테랑이라는 거, 사실 다 거짓말이다.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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