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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26. 2018

고양이 둘은 처음이라

네가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맹렬이는 지독하게도 사회성 없는 개였다.


아는 사람, 한 번 본 사람, 낯선 사람 모두를 좋아했던 박애주의 맹렬이는 유독 다른 개와는 친해지지 못했다. 동족에게 꼬리를 흔드는 맹렬이란, 마치 상상의 동물이었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언니들과 나의 바람과 달리, 맹렬이는 14년 동안 외동견 외길인생을 걷다 그렇게 떠났다.


개가 개를 만나게 하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고양이가 고양이를 만나게 하는 건 더 큰 걱정이었다. 둘째 고양이를 들이는 집사들의 힘겨운 과정은 발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금방 찾을 수 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그게 질병으로 나타나는 첫째 고양이의 사연도. 그래도 아기 고양이들은 큰 싸움 없이 금방 친해진다는, 꽤 많은 후기들을 읽고 그것만 믿어보려고 했다.


아기들이라면 친해지는 게 별 일 아닐 수도 있지, 암. 나도 어렸을 때는 처음 보는 애들이랑 잘 어울렸으니까. 하물며 친자매라면? 집에 있는 아기 고양이가 가족과 떨어진 지 3일 만에 가족들을 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새로운 아기 고양이를 향해 바삐 걸었다. 둘을 1초라도 더 빨리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1초라도 더 어릴 때, 1초라도 더 세상에 열려있을 때.


첫 만남 때는 넷이었던 고양이 남매들은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 1과, 지인에게 입양이 확정되었다는 고양이 2를 빼고 둘이 되어 있었다. 집에 있는 고양이를 떠올리며 좀 더 잘 어울릴만한 친구를 데려가기로 했다. 보호자는 남은 두 아이 중 더 소심한 아이라고 했다. 집에 있는 고양이도 아직 집에 적응 중이니 조금 소심한 친구가 더 잘 어울릴 수 있겠다 생각했다. 보호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왠지 한껏 소심하고 조용해 보이는 것이 집에 있는 고양이와 영혼의 파트너가 될 것만 같았다. 보호자가 떠나고, 첫 번째 고양이 때는 듣지 못했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 조금은 의심스러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SRT 안, 이름이 없던 고양이들도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첫째는 코이, 둘째는 아이. 같이 태어난 형제를 다시 만나면, 코이는 얼마나 기뻐할까?


약 4시간 후, 고요한 원룸에는 긴장감만 흘렀다. 아기 고양이들은 금방 친해진다는, 그 희망에 내심 기댄 채 나는 두 아이가 빚어낼 환상의 티키타카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첫 만남



하아악-


이 집에 이미 뭔가 들어와 살고 있다는 걸 눈치챈 아이와, 이동장 안에 또 다른 생물체가 있다는 걸 눈치챈 코이는 냄새를 맡고, 몸을 부풀리더니, 서로에게 하악질을 했다. 발톱 숨기는 법은 몰라도 하루의 대부분을 우리 집 귀염둥이로 지내는 코이가 등을 구부리고 털을 바짝 세웠다.


이제와 하는 말인데, 그땐 정말 큰일이 난 줄 알았다. 고양이 소식이라면 인터넷 카페에서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는데, 활자와 현실은 달랐다. 첫 만남에 하악질을 하는 코이와 아이는 흡사 맹수로 보였다.


이동장 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대면한 두 맹수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듯하다가도 금세 원투펀치를 날리며 뒹굴고, 그러다 냄새를 맡고, 다시 뛰었다. 다음날도 비슷하게 투닥거리고 달리고, 같이 잠을 잤다. 그날 나는 회사를 쉬었다. 고양이는 처음이라, 그것도 고양이 두 마리는 처음이라, 아직 발톱 숨기는 법도 모르는 맹수들 둘만 집에 있게 할 수는 없었다. 싸우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고양이들을 보며 몇 번의 롤러코스터를 탔을까. 혹시 아직 가까워지지 못했나 싶어 널브러져 자고 있는 두 마리를 굳이 붙여서 뉘어놓고 별 저항 없이 함께 누운 고양이들을 보고 흐뭇하다가도, 잠시 후에 또 조금 떨어져 모습을 보면서 시무룩해졌다. 하루가 참 길었다. 회사에서 ㅈ이 돌아오길, 북적이는 퇴근시간이 빨리 오길 기다렸다.


ㅈ도, 나도 고양이를 잘 몰랐다. 둘이 잘 지낸다고 생각하다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아무래도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의심하다가, 붙어 앉아 잠드는 모습을 보며 둘이라 다행이라고, 하나의 행동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며칠을 보냈다. 수의사가 안심을 시켜주고 나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간 집에 늦게 온 고양이 아이는 어떤 고양이보다도 빠르게 집에 적응했다. 3일쯤 먼저 이 공간에 적응한 코이가 어찌나 격정적으로 다가갔던지, 아이는 생전 처음 와보는 집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오자마자 엉겁결에 물을 마시고 엉겁결에 사료까지 먹어버렸다. 처음엔 한 발 늦게 뛰고 한 발 늦게 먹던 아이는 하루 사이에 코이만큼 뛰고, 코이만큼 격렬하게 달렸다. 코이에 비해 100g이 가벼워 눈에 띄게 작아 보이는 아이가 코이 덕분에, 자발적이진 않지만 무난하게 집에 적응하는 걸 보며 둘을 데려오길 잘했다는 흐뭇함이 염려를 이기기 시작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만 빼면. 아이가 온 후부터 코이가 골골거리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코이는 침묵 속에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한 선택이 코이를 괴롭게 한 걸까? 나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소심하다던 보호자의 묘사와 달리 하루가 다르게 대담해져 코이의 밥그릇과 장난감을 해맑게 노리는 아이를 보고 안도했지만, 동시에 밥그릇과 장난감을 순순히 양보하고 한 걸음 물러나는 코이를 보고 한없이 미안했다. 맹렬이와 함께할 때 그랬듯, 그저 코이가 행복하길 바랐던 것뿐이었는데. 


코이가 다시 나에게 골골송을 불러주기까지는 한 달이 걸렸다. 그날이 다시 올 때까지, 괜한 욕심으로 행복한 외동묘 코이의 삶에서 뭔가를 빼앗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매일 조금씩 괴로웠다. 



좌 아이, 우 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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