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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ug 31. 2017

아기 고양이, 너는 시방 위험한 짐승

아기 고양이와의 3일


고양이는 혼자 잘 있는다고 그랬다. 사람한테 크게 신경을 안 쓰니, 필요한 것만 잘 챙겨주면 하루쯤 안 들어가도 문제가 없다고. 조용한 동물이라 생각보다 키우기 쉬울 거라고.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건 사실이어야 했을 거다.


일이 끝나자마자 ㅈ과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 전날 아기 고양이가 우는 소리에 한 여섯 번쯤 자다 깨기를 반복했더니 누가 눈에 모래를 끼얹은 것처럼 뻑뻑했다. 피곤해서 뒷목이 묵직했는데도, 사무실에서 시간이 어떻게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는 길이 이렇게 설레긴 처음이었다.

 

방구석 이동장에 숨어있던 아기 고양이는 아장아장 걸어와 비비고 배를 보였다. 골골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앞발로 내 손을 꾹꾹 누르고는 짧은 다리로 내 발끝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인간에게 큰 관심이 없다던 고양이가 이리도 다정하고 귀엽게 다가오니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야생 스위치가 켜진 건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내 무릎을 떠나지 않던 아기 고양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온몸이 근질근질한 듯 나와 ㅈ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ㅈ을 포함한 온 세상에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앙- 하는 소리를 내며 올라가기 버거운 침대 위로 온몸을 던져 부딪혔다. 방금 전까지 보았던 얌전한 생물체로 돌려보려는 ㅈ을 꽉 잡은 아기 고양이의 발톱이 날카로웠다. 그때 아기 고양이는, 이런 말이 좀 그렇지만 미친놈 같았다. 더 적확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아직 발톱 감추는 것을 배우지 못한 고양이는, 아기였지만 정말로 짐승 같았다. 14년간 맹렬이에게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야생의 금수. 당황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고, 곧 집으로 가야 하는 ㅈ은 애써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 ㅈ의 동공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걸 똑똑히 봤다. 집에 가는 ㅈ의 발이라도 걸고 싶었다. ㅈ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한참 잠들지 못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세상 착하게 잠든 아기 고양이가 혹시나 다시 금수 모드로 돌아가지 않을까 감시하다가 다시 눈에 모래가 낀 것처럼 뻑뻑해질 때 겨우 불을 껐다.


솔직히 말하면 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은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여는 게 조금 무서웠다. 하루 종일 잔다던 고양이는 밤이 깊어도 잠들지 않았고(오히려 더 흥이 난 듯했고), 도통 먹지도 않는 것 같았고, 그러다 딸깍- 야생의 스위치가 켜지면 온 방을 헤집고 뛰었다. 무엇 하나 내가 알던 고양이의 지식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수없이 봐왔던 아기 고양이 입양 지침 따위는 현실에서 만나니 그냥 모니터 화면 속 활자에 불과했다. 인생은 실전이었다. 왜 안 잘까? 왜 잘 안 먹지? 왜 안 조용하지? 왜 안 시크하지? 머릿 속은 수많은 물음표로 채워졌다. 좀 더 솔직하게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 싶기도 했다.


밥을 먹고 나면 금방 자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야생 스위치가 켜지고, 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스위치가 켜진다는 걸 3일 정도 체험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져 갔지만, 야행성의 금수는 아직 낯선 존재였다.


그 무렵 미리 정해져 있었던 가족과의 일정 때문에 ㅈ과 아기 고양이를 남겨두고 가야 했다. ㅈ에게 육묘에 필요한 물품들의 위치를 꼼꼼히 알려주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둘에겐 미안하지만, 서울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그리 가벼웠던 적은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초보 육묘는 내 평생 굳이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던 친척들까지 반갑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육묘에서 벗어난 나는 내려가는 길에 고양이 관련 책을 사서 읽고 가족들에게는 고양이 얘기를 했다. 서울에서 고양이와 함께 있는 ㅈ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양이 소식을 물었다. 이러려면 뭐하러 집은 떠났나 싶게, 이미 육묘에 질척이고 있었다.


이제 조금 적응해가나 싶던 육묘에 새 장을 연 건 형부였다.


어차피 데리고 올 거 두 마리를 데리고 오지 그랬냐.


갑자기 집에만 들어서면 끼양끼양 울면서 부비적거리는 아기 고양이가 생각났다. 얼마나 외로울까. 끼양끼양 우는 아기 고양이를 쓰다듬어 재우면서 "미안해. 엄마 보고 싶지." 중얼거렸던 새벽들도 떠올랐다. 역시 혼자보다 둘이 낫지 않을까.


10년 넘게 분리불안이 심한 맹렬이를 보면서 맹렬이에게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시라도 맹렬이를 집에 두고 나갈 때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맹렬이에게 우리 집이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미안했다. 맹렬이에게 친구가 있었다면, 문을 닫고 나가는 우리가 그다지 아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몇 년간 가족들의 '막내' 포지션에 익숙해진 맹렬이가 스트레스받지는 않을까 걱정이었고, 학생 혹은 백수였던 내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마침 현재 시점의 나는 돈을 벌고 있고, 집에 있는 고양이는 가족과 떨어진 지 3일밖에 안 된 아가였다. 마치 지금이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데려오기에 최적의 시간인 것만 같았다. 온 우주가 두 번째 고양이를 반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사실 아기 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 형제들 중 하나를 더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소망뿐인 그 생각은 정작 이제 와선 큰 이유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두뇌는 오로지 두 번째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야 나 스스로도 반박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미 풀가동되어버린 두뇌가 그 이유를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친척을 만나러 남쪽으로 내려가더니 별안간 고양이를 하나 더 데려오자는 메시지를 보낸 나에게 ㅈ은 급히 잃어버린 이성을 찾아주려 했지만, 너무 늦은 때였다. "고양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대의명분은 ㅈ도 이길 수 없는 것이었다. 아기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분양받기로 연락하고, ㅈ은 서울에서, 나는 남쪽에서 출발해 가운데서 만나기로 했다. 몹시 게으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 추진력은 범인이 쉬이 따라 하기 힘든 것이라고 자부한다.


서울로 올라가는 가족들에게 급히 인사를 하고, 다시 대전역이었다. 며칠 전처럼 주황색 이동장을 든 ㅈ을 만났다. 공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대전역에서 터미널로 걸어가는 동안 ㅈ은 대전 지리를 열심히 설명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무슨 얘길 들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장딴지가 당길 정도로 부지런히 걸었다. ㅈ이 꼭 쥔, 이제 곧 다시 채워질 이동장이 걸을 때마다 다리를 스치며 흔들렸다. 새롭게 데려가는 아기는 뭘 좋아할까. 둘이 만나면 알아볼까.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기 고양이에게는 헤어졌던 자매가,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랑은 별 상관없을 것 같던 내 인생에는 고양이가 곧 두 마리나 생길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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