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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26. 2017

이름을 짓지 못한 아기 고양이

꿈에서 가끔 엄마 아빠 만날까?


잠자는 맹렬이는 꽤 자주 꿈을 꿨다. 입 주변을 씰룩거리기도 하고 발끝을 꼭 누가 간지럽히는 것처럼 달그락달그락 까딱이기도 했다. 아주 가끔은 짖는 것처럼 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우리가 꿈에서 소리를 지를 때 그러하듯 실제로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아주 작았다. 그래서 꼭 낑낑 우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걸 보고 맹렬이가 짖는 게 아니라 어쩌면 꿈에서도 낑낑거리고 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맹렬이도 꿈에서 가끔 엄마 아빠 만날까?


작은언니는 그 질문을 듣고 그랬다.


걔 엄마 아빠 얼굴 몰라. 걔네 엄마 아빠 공장에 있어서.


맹렬이는 태어난 지 두 달쯤 됐을 때 언니가 길에 있는 펫샵에서 데려왔다. 딱히 고급 펫샵도 아니고 그냥 길 가다 보는, 흔한 그런 펫샵에서. 그러니 언니 말은 틀린 게 없다. 아마도 맹렬이는 사람들이 '개 공장'이라고 부르는 상상하기 싫은 곳에서 번식밖에 할 수 없게 키워진 한 쌍의 개가 낳았을 거다. 그런 환경에서 맹렬이네 엄마 아빠가 맹렬이를 잘 보살펴줄 수는 없었겠지. 나는, 맹렬이가 평생 만날 수 없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울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워할 엄마 아빠의 추억도 없는 맹렬이의 삶이 좀 슬펐다. 그럴 때는 내가 맹렬이의 더 좋은 가족이 되어줘야겠다 생각했다.



그것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다음은 대학생이었다. 맹렬이의 엄마 아빠를 생각했던 나야말로 어느덧 나의 엄마 아빠를 떠나 혼자 생활을 시작했다. 다 커서, 너무 다 커서 엄마 아빠를 떠난 탓에 한번 울지도 않고 잘만 산다. 다만 혼자 산 지 한 달 사이에도 복작복작한 생활이 생각날 때는 몇 번 있었다. 그렇게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더니.


그 무렵에 회사 근처에서 하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룩이도 아닌, 고양이를 봤다. 근처에 고양이가 많은 동네라 새삼 눈에 들어올 것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유독 눈에 띄는 고양이였다. 아픈 데도 없어 보이고, 어린, 그리고 분명히 품종이 있는 고양이였다. 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종이 아니었다. 누가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누구는 흰둥이, 누구는 쪼꼬, 회사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그 고양이는 동네에 같이 사는 고양이들처럼 날쌔지도, 점프를 잘하지도 못했다. 아니, 여러모로 길에서 살기에는 좀 모자랐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그래서인지 어떤 고양이들은 눈칫밥을 주고 쫓아냈다. 그게 불쌍해서인지 다른 어떤 고양이들은 반대로 살뜰히 챙겼다.



쟤는 입양 보내야겠다.


밖에서 살기 조금 모자라 보이는 흰둥이를 회사 사람들이 신경 쓰는 건 당연했다. 이분들이 쫓겨난 흰둥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쉴 곳을 마련해주지 않았다면 흰둥이는 겨울을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흰둥이에게는 확실히 가족이 필요해 보였다. 품종이 있어서가 아니라 길에서 살기에는 뭔가 엉성하고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데려갈까?


흰둥이를 가까이서 챙겨주던 분들의 행동은 내 생각의 흐름보다 빨랐다. 폭풍 같은 논의가 필름을 빨리 감듯이 지나가고 누구는 장난감을, 누구는 간식을, 누구는 흰둥이를 잡아 안전하게 보호할 케이지를 준비했다. 나도 흰둥이를 언제든 집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이동가방을 준비해뒀다. 준비과정은 굉장히 빨랐다. 당장이라도 흰둥이를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욕은 어떻게 시킬지, 어떤 병원에 데려갈지, 고민이었다. 눈칫밥을 먹고사는 흰둥이가 안전한 내 방에 살면 굉장히 행복하겠지?


그런데 엉성하고 모자라 보였던 흰둥이를 잡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들보다 엉성하고 모자라 보여도 고양이는 고양이였다. 조심성이 아주 많은 흰둥이의 성격상 몇 번 실패를 하고 나니 아예 사람들 근처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흰둥이를 잡으려고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ㅈ의 근처에는 더더욱.


그 무렵부터 흰둥이를 잡으려고 할 때면 나타나는 흰둥이의 친구들이 보였다. 노란 줄무늬의 날쌔고 어린 고양이는 ㅈ이 흰둥이 근처에 다가가면 거의 매번 먼저 나타나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덩치가 큰 다른 노란 줄무늬 고양이는 흰둥이 뒤쪽에 앉아있었다. 흰둥이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유일하게 흰둥이를 챙겼던 까만 고양이도 주변에 있었다. 우리가 포획 시도를 하면 할수록 흰둥이는 그 친구들의 비호를 받으며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지붕 쪽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내가 어쩌면 흰둥이의 즐거운 생활을 방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흰둥이가 야생에서 살기 힘든 아이라는 건 회사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가려진 쓰레기통 구석에 흰둥이가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었고, 어떤 분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주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뺏으러 올지 모르는 공간과 음식이 최선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흰둥이에게는 자기만의 공간과 친구들이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흰둥이를 상대로 이건 포획이 아니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다. 우리 집에 가면 네 예쁜 옆구리 털을 한 움큼 뽑아간 피부병을 치료해줄게, 내 방도 맘껏 뛰어다녀도 돼. 이런 말을 할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도 그게 흰둥이가 원하는 최선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간 상상했던 풍경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내 방 안에서 즐거운 흰둥이. 흰둥이는 정말로 즐거울 수 있을까? 까만 고양이와 노란 줄무늬 고양이 두 마리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흰둥이 데려가기 프로젝트를 그만두기로 했다. 흰둥이 입장에선 아마도 큰 불만 없을 삶의 터전을 내가 망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ㅈ을 포함해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면서도 죄송했고, 왠지 흰둥이를 포기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가끔씩 흰둥이에게 맛있는 간식을 챙겨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흰둥이를 데려가기 위해 급히 사뒀던 4만 5천 원짜리 이동장은 쓸모를 잃고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다시 지붕 밑으로 내려와 지내는 흰둥이를 보니 다행이다가도, 흰둥이 옆구리의 피부병을 보면 나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밀려왔다. 좀처럼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 흰둥이를 보면 역시 나 같은 초보 집사가 무작정 데려가긴 어려웠겠다 하면서도 사나운 고양이들이 흰둥이를 쫓아내면 이게 다 데려가지 않은 내 탓같았다.


계속 자아분열을 하는 나를 보고 ㅈ은 흰둥이는 아니지만 다른 아이들을 데려오는 게 어떻겠다고 했다. 맹렬이는 키워봤어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으니, 어쩌면 내가 유난히 경계심 많은 흰둥이를 돌보기는 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고.


다시 고양이라니. 그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어찌 갔는지 모르겠다. 아가들을 어디서 데려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떠오른 건 꿈꾸던 맹렬이였다. 꿈꾸면서 우는 듯한 맹렬이를 보며, 언젠가 새로운 동물을 키우게 되면 사람들이 만든 공장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단 집에서 엄마 아빠랑 같이 지낸 아이들을 데려와야지, 했었다.


그날 퇴근을 앞두고 급히 공주로 가는 KTX 티켓을 예매했다. 동물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그다지 쉽지 않다. 그래도 직접 가서 데려오고 싶었다. 요즘은 직접 데려다주는 곳도 많지만, 웬만하면 불편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법이다. 그 정도 수고도 들이지 않고 새 가족을 데려오는 건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KTX를 타고 나란히 앉은 ㅈ과 내 옆에는 흰둥이를 데려가기 위해 사둔 이동장이 놓여있었다.



이름을 짓지 못한 고양이와 우리가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은 때였다.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던 고양이는 30분 만에 ㅈ의 배 위에서 잠이 들었다. 낯선 ㅈ의 배에 꼭 기대 잠든 고양이를 보니 문득 꿈에서 엄마 아빠를 만날까 궁금했다. 그리고 예전에 그랬듯, 내가 더 좋은 가족이 되어줘야지 했다. 다시 맹렬이가 생각나는, 얄궂은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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