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단단 Dec 04. 2023

뮤직비디오의 반란

크리스 커닝햄 

뮤직비디오의 반란


뮤직비디오(이하 뮤비)엔 음악과 영상이 공존한다. 오직 음악으로만 소통하던 시대를 지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영상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들이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뮤비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겪는다. 비록 시작은 뮤지션과 음원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함 이었지만, 점차 많은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장으로 이 뮤비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길지 않은 러닝 타임이니 부담도 없고 엄격하고 특정한 규칙도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1980년대, 디지털 영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난다. 여러 아티스트들은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 게임 그리고 비디오 아트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다. 뮤비 역시 그 중 하나다. 음악 자체, 즉 청각적 접근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을 자유롭게 다룬다는 점, 또한 대중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즉각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들이 매력이었다. 디렉터의 직관적인 판단과 해석으로 형성되는, 아티스트만의 소우주나 다름없었다고 보면 된다. 




크리스 커닝햄 Chris Cunningham (1970 - ) - 신체로부터의 탈주




스타일리시한 악몽. 영국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에이펙스 트윈 Aphex Twin의 곡 ‘컴 투 대디 Come to Daddy (1997)’ 뮤비는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장 기괴한 영상으로 음악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몰아치는 드럼, 섬뜩하고 강렬한 보이스로 구성된 음악도 인상적이지만, 이에 더해진 커닝햄의 영상은 가히 충격적. 에이펙스 트윈과 커닝햄을 지상 최고의 괴짜 듀엣으로 만든 기특한 작품이다. 


음산하고 컴컴한 배경, 모두 같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떼를 지어 달려가는 모습, 마지막엔 정체모를 괴생명체의 등장까지.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은 이미지의 향연은 감독이 대체 왜 이러한 연출을 시도했는지 의문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들에게 대중들의 이해는 필수가 아니었으니.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영감을 따라 직관적으로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 그들의 작업 방식이었다. 이 뮤비가 얼마나 엽기적이었냐 하면, 심지어 제작자인 커닝햄 자신도 이 정도의 성공을 예상치 못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음지에서 탄탄한 매니아층을 확보하게 된 그는 이후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한다.



<Come to daddy>가 수록된 Aphex Twin의 앨범 


https://youtu.be/TZ827lkktYs?si=HkShev6_8Yu1Uumb

<Come to daddy> 뮤비



커닝햄의 작품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바로 신체에 대한 재해석이다. 획일화된 미의식에 갇혀있던 신체는 그의 시선으로 붕괴되고, 변형되며, 때론 확장된다. 초기 작품들에서 목격되는 유달리 왜곡된 신체는 자연의 산물로만 인식되었던 신체가 환경과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더 이상 주어진 신체에 만족하지 않고, 외부의 기술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여기는 현대 문명의 오만함을 조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얼굴들, 미보다는 추에 가까운 신체의 모습은 과도한 욕망이 불러일으킬 대참사의 예지몽이나 다름없어 보이니까. 


이러한 신체의 변형은 그의 단편 ‘러버 조니 Rubber johnny (2005)’에서 극에 달한다. 관객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할 정도로 기괴한 영상은 단숨에 화제가 된다. 과도하게 부풀어 있는 머리, 앙상한 몸, 휠체어에 앉아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돌연변이 조니. 그가 창조해 낸 이 괴상한 캐릭터는 유명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 Supreme의 티셔츠에도 등장하며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에 보답하게 된다.



https://youtu.be/eRvfxWRi6qQ?si=GzC6ujyIh2_GfZix

단편 <러버 조니 Rubber johnny, 2005>


러버 조니 X Supreme


자신의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는 커닝햄.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작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를 파고들기 보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작업을 진행한다. 함께 협업할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절대’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단칼에 선을 긋는 나름의 신념도 있다. 이처럼 그는 금전적인 이익이나 인기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여러 아티스트들은 그의 비범한 재능을 탐내기 시작했고,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 Madonna와 아이슬란드의 보물 비요크 Bjork와의 작업으로 더 큰 성장을 이뤄낸다.  



마돈나 <Frozen> 뮤비 중 한 장면



붕괴와 변형을 지나, 확장의 영역에 도달하게 된 커닝햄의 신체들. 비요크의 ‘올 이즈 풀 오브 러브 All is Full of Love (1997)’의 뮤비엔 마치 인간처럼 사랑을 나누는 로봇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매끈한 금속 재질의 기계 신체들이 조립되고, 움직이며, 서로를 쓰다듬다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유한한 신체를 벗어나 영원한 삶을 꿈꾸는 인간들의 욕망을 색다른 시선으로 표현한다. 각종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정체되고 변질될 수 밖에 없는 육체적 한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 

나이와 외모, 성별을 초월한 이러한 로봇의 사랑은 어쩌면 모든 조건이 소거된 채 이루어지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MTV, Pitchfork 등에서 최고의 뮤직 비디오로 선정되었고 연출, 촬영, 특수 효과 부문 등에서 많은 상을 거머 쥐었다. 나아가 베니스 비엔날레와 뉴욕 현대 미술관에도 전시되며 뮤비도 엄연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비요크의 <All is Full of Love> 뮤비 중 한 장면



하지만 커닝햄은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의 작업에 확신을 갖기 어렵다 고백한다. 참여했던 작품 수에 비해 DVD로 출시된 작품 수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자신의 작업물이 DVD로 박제되는 것도, 인터넷에 떠도는 것도 전부 괴로운 일이었음을 실토한다. 

이 모든 고민은 그의 우상인 영화계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과의 협업 경험에서 증폭된다. AI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두 아티스트의 만남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지만, 당시 23살이었던 커닝햄은 이 과정에서 한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발전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상대의 영향력과 스타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 말로는 쉽지만 예술가들 사이에선 민감히 다뤄지는 이러한 문제를 그는 정면으로 마주하로 한다. 그리고 이후 여러 광고와 아티스트들의 영상 작업에 참여하며 더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GUCCI의 향수 FLORA AD 중 한 장면



나는 음악 한 곡을 듣고, 그 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우주를 제안합니다. (크리스 커닝햄)   


현재 그는 오랜 공백기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팬들은 이젠 ‘비디오 아티스트’인 커닝햄의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만나면 환상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는 세기의 만남들. 뮤직 + 비디오는 그 명칭처럼 이러한 결합의 장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이미지 출처: obscurmagazine.co.uk 

                     interviewmagazine.com

                     the-m-magazine.com 

                     filmaffinity.com 

                     dazeddigital.com 

                     hypebeast.com  




필자: 주단단

작가의 이전글 무용성의 유용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