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단단 Jan 09. 2024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로부터

페트릭 마르티네즈 Patrick Martinez 



거리를 캔버스로, 스트리트 아트 


일상 속 은은하게 풍겨오는 예술의 향기. 공공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스트리트 아트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예술의 한 장르다. 텅 빈 회색 빛깔의 벽과 터널, 계단들이 어느새 형형색색의 빛깔을 입고 있는 풍경을 마주할 때면 기분까지 화사해진다. 실제로 이러한 장점들을 노후된 주택가나 범죄가 잦은 후미진 곳에 적용시켜 여러 문제점들을 극복한 사례들도 많았다. 아름답게 변한 골목을 구경하러 온 이들 덕분에 상권이 살아나고 침체되었던 분위기도 환기되는 긍정적 효과를 누리게 된 것이다.  



(출처: www.albrightknox.org)



이런 스트리트 아트가 하나의 장르로 굳어지기까지는 여러 해프닝을 겪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공공 기물을 대상으로 한 행위이다 보니 주인의 동의 없이 실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원치 않는 그림들은 낙서나 테러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허나 각종 탄압과 규제 속에서도 아티스트들은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들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자유와 저항이라는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실천이었다. 관습화된 체계에 맞서는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바스키아, 키스 해링, 뱅크시 등 스트리트 아트 계보를 따르는 유명 아티스트들이 탄생한다. 강렬한 색감과 감각적이면서도 친숙한 이미지들. 그 뒤편엔 자유와 평등, 공생과 차별 금지라는 인본주의적 선언들이 가득했고 이는 눈과 마음까지 사로잡는 작품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출처: www.juxtapoz.com)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네온사인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패트릭 마르티네즈 Patrick Martinez의 작품은 이러한 스트리트 아트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도시를 치밀하게 관찰하고,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모습들 속에서 자신만이 발견한 아름다움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회색의 거리를 물들인 네온사인과 간판, 그래피티는 패트릭에겐 로스앤젤레스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유년 시절부터 자주 동료들과 함께 공사장과 건물들을 맴돌며 그래피티를 남기곤 했던 그는 그림을 그릴 공간을 찾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여야만 했다. 도시를 향한 섬세한 시선은 바로 이 시절부터 품게 된 것이었다. 벽이 서 있는 구도, 색상, 표면의 질감... 빛에 따라 어떻게 그림자가 생기는지 까지. 그는 마치 캔버스를 대하는 듯한 진중한 태도로 거리의 구조물들을 분석한다. 자연광이 사라진 어두운 도시를 밝히는 네온사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아무도 없는 삭막한 도시 밤 풍경 속에서 유일한 빛은 가게에 달린 간판들 뿐이었고, 짙은 어둠을 밝히는 메시지들이 주는 소소한 위안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게 된다. 



(출처: www.booooooom.com)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들은 모든 편견과 그로부터 시작된 차별에 대항한다. 멕시코와 필리핀, 아메리카 원주민의 핏줄을 이어받은 그에게 인종에 대한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와도 같았다. 모든 갈등과 폭력, 흑인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들은 뉴스에서만 보도되는 일이 아닌, 패트릭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사건들이었다. 


LA 폭동 사건을 비롯해 평등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 놓여있던 그의 유년 시절은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체감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수면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사회 현상들을 포착하는 것은 패트릭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예술로서 세상과 소통하며 다양한 종류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Color Allowed, 2020 (출처: contemporaryartreview.la)




잊혀진 이들의 역사 


패트릭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인종차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이상향이나 환상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려고 했다는 그의 말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작품 속에 담으려 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경찰의 유색인종을 향한 만행들을 고발하는 작업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이러한 사건들은 도시의 소음처럼 금방 잊혀져 버릴 것이기에, 그는 고인들을 애도함과 동시에 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그림으로 기록하였다.



(출처: www.kcet.org)



그렇다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이는 패트릭에겐 특별히 고심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스트리트 아트가 가진 힘은 그 실행력에 있었고,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피티는 그에게 도시가 가진 숨겨진 역동성을 보여주는 보물과도 같았다. 또한 캔버스의 크기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본보기이기도 하였다. 제한 대신 용기를, 규제 대신 실행을 알려준 것이다. 언어와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과감한 색을 사용하여 눈을 즐겁게 하는 그의 작품들은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 속에서도 관객에게 미적 유희를 선사한다.  




(출처: www.kcet.org)



평등과 자유. 이 두 단어는 한 개인의 삶에 있어 최우선이 되어야 할 영역이지만, 언제나 침해당할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민감한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에 있어선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흔한 주제이면서도 또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거론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모두가 바라는 평화는 아직 멀리 있지만, 멈추지 않는 이러한 노력들은 세상을 점점 나아지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패트릭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희망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필자: 주단단



작가의 이전글 뮤직비디오의 반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