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 앨런 마크, Mary Ellen Mark
숨길 수 없는
세계 인구 80억 시대. 그 중 오천만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수도인 서울엔 오 분의 일인 950만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전 인류를 하나로 매듭짓는 인터넷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현대인의 필수품인 핸드폰 속엔 백 명이 훌쩍 넘는 지인의 이름이 있지만 우린 정작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때문에 이들을 직접 만나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란 더더욱 힘들다.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는 고독사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고, 사각지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신호들은 바로 옆집에도 가 닿지 못한 채 소리없이 꺼져간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어느덧 우린 이토록 가까워 질 수 있게 되었는데, 각자의 현실은 점점 외로워지는 것이 말이다.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 뼈대만 겨우 남아버린 그들의 삶의 형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매일같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생활은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에 실상이 알려지는 건 모든 게 사라지고 난 뒤이다. 잃고 난 뒤에 깨닫고, 뒤늦게라도 고치려 하지만 그것조차 잘 되지 않는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외면하려 해도 자꾸만 사건은 벌어진다.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기사들 속에서 이들의 흔적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무채색의 세상
1940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사진가 매리 앨런 마크 Mary Ellen Mark.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처럼 대부분 사회의 변두리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인간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국가의 손길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에게 집중했고 우리 사회 속 숨겨진 편한 진실을 사진이란 세련되고 명백한 방식으로 기록한다. 방치된 채 담배를 태우는 어린 소녀, 인도 매춘 업소의 미성년 매춘부들,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고전 서부 영화의 히로인 등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아슬아슬한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매리는 이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의 친밀감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 진입하고, 그 삶을 직접 보고, 듣고, 이해하며 그들을 촬영한다. 불우하다 여겨지는 이들에 대한 섣부르고 오만한 낙인을 지워내려 한 것이다.
매리의 사진은 대부분이 흑백이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선택한 피사체에는 흑백이 더 어울린다 언급했을 만큼, 한결같이 흑백 촬영을 고수한다. 이는 탁월한 선택인 듯 하다. 사진 속 인물이 겪어온 복잡한 인생사, 그로부터 비롯된 어두운 그늘과 짐작 못 할 감정들이 색을 제거함으로 인해 오히려 정제되고 축약되어 효과적으로 드러났으니.
그녀의 작품이 주는 독특한 울림의 근본은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촬영을 고집하는 이유 역시 포토샵과 트랜드가 지배적인 요즘의 작품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날 것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다. 자신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 현실 자체를 인정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순수주의자라고 선언하며, 조금은 까다롭고 번거롭지만 최대한 왜곡 없는 결과를 위해 이러한 작업 방식을 유지한다.
이야기를 뛰어넘는 이미지
매리의 사진 속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비록 대중들에겐 하찮고 평범할 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 속에선 그 어느 장면보다 강렬하고 인상적이게 포착된다. 놀라운 감각과 주저하지 않는 실행력으로 새롭게 쟁취해 낸 그녀의 유일무이한 스타일은 타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사진가란 ‘앵글 안에 들어온 인물들의 영혼 일부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는 그녀의 고결한 다짐에서 세계를 감싸는 인류애마저 느껴진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당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정신 병동에 있는 여성 수감자들이나 한센병 격리 병동의 환자들, 거리의 가출 청소년들과 마약 중독자. 화려함과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지만 매리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피사체가 되어 주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불안,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이는 나약함도 그녀의 이미지 안에선 놀랍도록 생생한 가치를 갖게 된다. 이를 통해 비로소 소외된 이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대중들은 세상을 이루는 어둡고 처절한 이면에 대해, 하지만 결코 배척 되어서는 안 될 그들의 삶의 존엄성을 목격한다.
‘나의 작업이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길 바란다.’ 그녀는 40년간의 촬영 인생 동안 다양한 삶을 마주해왔다. 그리고 그 삶들은 모두 이상도, 꿈도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시해야 할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절대 외면해선 안 될 불편한 진실들을 끝없이 세상에 드러내 주었던 매리 앨런 마크. 그녀에게 우린 어쩌면 평생 갚지 못 할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자: 주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