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정신병자 맞나 봐

10 나의 가짜 워킹홀리데이

by 잉플

어떨 때의 감정은 완전히 침몰한 타이타닉호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탈출이 불가능한 수준의 침울함이었다. 그러다가도 조금 지나면 걸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내가 왜 신났는지 인지도 못 한 채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오빠, 나 정신병자 맞나 봐."


분리수거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나를 보고 내가 뱉은 말이었다. 나 아까는 분명 우울해서 콱 돌아 버릴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신이 나 있잖아? 가끔 나의 감정을 인지하게 될 때 나는 낯섦을 경험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십수 번씩 감정이 변하고, 어떤 날은 우울한 채로, 또 어떤 날은 기분이 괜찮은 채로 유지되는 게 어떤 근거로 내 감정의 출력값이 달라지는 건지 아직까지 잘 모를 일이었다. 지금 신이 난 이유를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일주일간 묵혀 둔 분리수거 더미를 정리하고 오는 길이라 개운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긴 했다.


"지금은 콧노래가 나오잖아? 막 신나는 아이돌 노래가 떠올라. 근데 이러다 또 이따 어떻게 될지 몰라. 감정이 막 이랬다 저랬다 해."

"그럴 수 있지."

"정신병자 맞나 봐, 진짜."


내가 나를 인정하는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는 우울증 걸린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인정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말이 웃기기도 하고, 실상 맞기도 하고, 정신병자가 정신병자임을 인정하는 상황이라니 대단하기도 했다. 분리수거를 한 날은 잠이 드는 시간까지도 기분이 괜찮았다. 바로 다음 날 내게 어떤 감정이 몰아닥칠지 모르는 상태로 푹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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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잔 것 같은데도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수면제가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것처럼 비몽사몽 한 정신을 이고 습관처럼 스트레칭을 하던 때, 눈은 거의 반쯤 감겨 있는 상태로 팔다리를 찢으면서 정신을 곱게 펴 주려고 더 노력했다. 새벽 5시를 향해 가는 시간에 해야 할 출근 준비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해야 하겠지. 나는 그냥 홀러가 아니라 워홀러인걸. 어쩔 도리가 없잖아, 나에게.


여느 때처럼 근무 시간은 바빴고, 일하다 보니 시간은 흘렀다. 특이사항 없이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멀쩡한 기분으로 새벽에 했던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어 줬다. 쉴 틈 없이 계속 몸을 움직이다 보니 근무 전후로 스트레칭을 해 주는 게 나에겐 중요한 루틴이었다. 몸이 한 번 결리기 시작하면 온 컨디션이 망가질 것 같단 생각에 스트레칭도 거의 강박이다시피 하루 2번 이상은 반드시 해 줘야 마음이 편했다. 좋은 습관인 듯하지만, 어쩌다 한 번 못 하게 되는 상황에 마음이 불안해진다는 게 문제였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 되는 그놈의 불안함. 샤워를 하고 나오니 시간은 12시 30분으로 딱 점심시간에 걸쳐 있었다. 한 끼도 먹지 않고 육체노동을 하고 오니 허기짐의 수준이 극에 달했다.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요즘은 달콤한 초콜릿이나 꿀이 들어간 디저트가 그렇게 구미가 당겼다. 밥을 챙겨 먹고 디저트까지 먹기엔 부담스러워서 오늘은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달달한 쿠키 하나와 요플레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쿠키가 굉장히 묵직한 편이라 이것만 먹어도 배가 부르긴 했는데, 묵직하다 보니 부드러운 요플레와 조합이 좋았다. 나름의 탄단지 구성이 조화로운 식사를 마치고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휘적휘적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오후 3시였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낮잠을 자도 될 듯했다. 딱 30분에서 1시간만 잤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딱 30분만 푹 잤으면 좋겠다. 피곤해.


30분은커녕 잠은 금방 들었는데, 알람도 안 울렸는데 눈이 떠졌고 겨우 15분이 지나 있었다. 낮잠조차 길게 못 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피곤하다고 느껴지는데도 왜 잠을 길게 못 자는 걸까?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날 땐 잠에 취한 기분이라 그렇게 자고 싶더니, 잠이라는 영역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의 잠, 나의 기분, 나의 마음, 내가 원하는 것, 내 두려움의 원인, 나는 참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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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원하는 만큼 못 잤지만 그게 내 기분을 망쳐 놓진 않았다. 낮잠을 잔 이후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영어 공부도 했다. 영단어를 외우는데, 집중이 안 되거나 잡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원하는 분량만큼 글을 써냈고, 원하는 만큼 영단어를 외워 놓으니 당연하게도 시간이 또 흘러 있었다. 저녁 6시 30분. 오빠가 귀가할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제 뭐를 할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뭘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그 순간부터였다. 오늘 하기로 계획했던 일들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 뭘 할지를 생각하다 보니 딱히 당기는 일이 없었다. 드라마를 보는 일도, 책을 보는 일도 오늘은 그다지 당기지가 않았다. 뭘 해야 하지를 생각하다 답을 찾지 못하고 바보같이 또 불안에 떨어야 했다. 누구라도 나를 놀아 줄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괜찮았을까? 누구라도 나랑 대화할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아무 일 없었을까? 온 집안엔 커튼이 쳐져 있고 밖은 어둑해져 있는 시간, 나는 뭐에 홀린 것처럼 거실에 켜져 있던 조명을 끄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시야가 어둡고 그곳엔 오로지 나만 존재했다. 마음의 불안함은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소파에서 일어나 컴퓨터방으로 향했다. 나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 계속해서 생각했다. 뭘 해야 하지? 나 지금 안 괜찮은 것 같아.


어두운 와중 책상 위 필통을 부랴부랴 뒤져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그냥 막, 무언가를 헤집어대고 싶었다. 뭘 해야 하지? 불안하다. 안 괜찮은 것 같아. 어떡하지? 불안하다와 같은 생각들이 뭐라도 해야 할 것처럼 나를 몰아세웠다. 사실 커터칼을 꺼내면서도 나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긴 했다. 나는 나를 해하고 싶었다. 불안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 그 감정이 괴로워서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나를 해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칼날을 꺼내어 왼쪽 팔목에 갖다 대고 날카로운 칼날을 피부로 느꼈다. 피가 날 정도로 깊게 찌르지도 않았다. 나는 죽고 싶은 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저 그 날카로운 칼날이 피부 위로 긁힐 때마다 느껴지는 따끔거림이 나의 존재를, 내가 지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줬다. 한참을 피부 위에 칼날을 대고 긁다가 이내 관뒀다. 순간 이 상황의 이상함과 기괴함, 이질감이 몰려들어 그대로 칼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자해는 하지 않기로 오빠랑 약속했는데,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자해를 할 정도의 감정. 죽고 싶진 않지만 답답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우울감과 불안함이었다. 나는 정신병자가 맞구나.


"아..."


기운이 빠졌다. 기운이 다 빠졌지만, 이 감정을 어디에 치워 버려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였다. 나는 또 자해를 시작하게 된 걸까. 이게 또 습관이 되려나. 이러한 생각들을 하는 이 상황조차 너무 짜증이 났다. 소리가 지르고 싶을 만큼, 마구 소리치며 울고 싶을 만큼 속이 상했다. 슬펐다. 방바닥에 누워 머리를 감쌌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듯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제발 나아져라. 기분이 제발 나아지길. 빌고 또 빌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손을 들어 스스로 뺨을 내리쳤다. 아팠다.


정말 아팠고, 아프다.